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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푸른빛 환상의 세계 - 마르크 샤갈전

by 야옹서가 2003. 8. 15.

Aug. 15. 2003
| 동트기 직전 어둠이 걷힐 무렵의 대기의 빛깔을 닮은 옅은 푸른빛이 지붕을 덮으면 마법이 시작된다. 무중력 상태에서처럼 허공으로 둥실 떠올라 다정하게 껴안은 두 연인, 사랑의 환희와 결실을 상징하는 풍성한 꽃다발,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탉과 암소, 서커스를 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구체화되는 곳, 바로 마르크 샤갈(1887∼1985)의 그림 속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렇듯 온통 푸른빛 환상으로 뒤덮인 샤갈의 그림을 실물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인사동 선갤러리에서 9월 30일까지 열리는 마르크 샤갈전이 그것이다. 뉴욕 메리디안 파인아트센터 협조로 열리는 본 전시에서는 샤갈의 유화·템페라·과슈 작품과 더불어 폭 4m에 달하는 대형 태피스트리 ‘다윗과 밧세바’ 등 총 20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서정적 화풍
 1887년 러시아 비테프스크의 가난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파리를 주무대로 활동해온 샤갈은 소박한 고향마을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서정적 작품세계로 유명하다. 현대 미술가 중에서도 가장 인기 높은 축에 속하는 샤갈의 그림은 흔히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분류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초현실주의 그룹의 수장 앙드레 브르통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집단에 동참하기보다 자신의 독단적인 화풍을 추구하는 데 혼신을 기울였다. 한편 샤갈은 종교화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성경 속 이야기를 형상화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1973년 프랑스 니스에 샤갈의 종교화를 모은 ‘성서미술관’이 개관되기도 했다.

전시된 작품 중에서 인상 깊은 것으로 샤갈이 사망하기 2년 전 제작한 ‘빨간 얼굴의 예술가’(1983)가 눈에 띈다. 이젤을 앞에 둔 채 붉어진 얼굴로 여인의 모습을 완성하는 데 여념이 없는 화가는 분명 작가 자신의 반영이다. 신부의 모습으로 등장한 여인의 상체는 그림 속에 붙박혀 있지만, 발 부분은 어느새 그림 밖으로 나와 자신의 창조주와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샤갈의 그림에 트레이드마크처럼 등장하는 여인은 대개 사별한 첫 번째 부인 벨라 로젠펠드이거나, 15세 연하의 두 번째 부인 발렌틴 브로드스키(애칭 바바)이다. 두 연인의 미래를 축복하듯 거대한 꽃다발이 푸르른 대기 속에 둥실 떠 있다. 이처럼 환상적이면서 목가적인 풍경, 그리고 연인에 대한 애틋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까닭에 샤갈의 그림은 사후에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리라.

깊은 신심 우러난 종교화
 4층 전시실의 종교적 태피스트리‘다윗과 밧세바’(1960)도 주목할 만하다. 화폭의 왼쪽 하단부에 누워 수심에 찬 모습으로 수금을 뜯는 다윗왕과 발가벗은 채 무기력하게 누운 밧세바 커플은, 나른한 행복감에 빠져 허공을 부유하는 다른 커플과 달리 땅에 유배된 듯 짓눌려있다. 육욕에 빠진 다윗왕이 유부녀 밧세바의 남편을 고의로 사지에 내보내고 밧세바의 몸을 탐한 불륜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선지자 나단이 금방이라도 왼손을 내리칠 듯 압도적인 자세로 내닫는 모습은 하나님의 진노를 생생하게 전한다. 그러나 화폭의 오른쪽에 번제물로 등장한 양이 그들의 죄를 대속할 것임을 암시하면서 왼쪽과 오른쪽 화폭은 각각 죄악의 결과와 그 속죄를 상징하는 대립적 구조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널리 알려진 샤갈의 대표작들을 감상할 수 없고,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샤갈의 작품세계에 매료된 열혈 애호가들이라면 샤갈의 초창기 작업부터 사망하기 1년 전 작품까지를 아우르는 본 전시를 관람해봐도 좋겠다. 부대행사로 선화랑 시청각실에서 오전10시∼오후5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사랑과 향수의 화가 샤갈’ 비디오가 상영된다. 입장료는 성인 8천원, 학생 4천원. 문의전화 02-734-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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