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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가난해도 행복했던 그 때 그 시절 - ‘추억으로…’전

by 야옹서가 2003. 8. 22.

Aug. 22. 2003 | 요즘 ‘TV쇼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이 은근히 인기를 끈다고 한다. 문화재를 충분한 검토 없이 금전적 가치로만 평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집구석 어딘가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처박혀 있던 구닥다리 물건들이 숨겨진 가치를 지닌 물건일 수 있다는 건 충분히 흥분되는 일이다. 몇 백년 전 조상들이 썼던 일상적인 물건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가치가 새로워진다는 걸 보여주니, 비록 오락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낡고 오래된 것은 무조건 버려야 할 것은 아니라는 교훈만큼은 남겨준다.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20세기 초의 물건들만 해도 이제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쥐덫, 양철로봇 장난감, 불에 달궈 쓰는 구식 다리미, 오래된 만화책과 교과서…가까운 과거의 생활을 증거하는 자료들이지만 새것을 좇아 열심히 달리다보니 정작 우리에게 남은 생활유물은 일부 수집가의 손에 남겨진 것들뿐이다. 

이처럼 과거로 남겨진 일상의 물건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전시가 열린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 9월 14일까지 열리는 ‘추억으로…역사를 모으는 사람들’전에서는 1910년대부터∼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제작된 각종 포스터, 음반 표지, 옛 태극기, 교과서와 교복, 구식 수동카메라, 한국 최초의 라디오 등 다채로운 생활유물 5천여 점을 볼 수 있다. 시각자료유물전, 역사와 함께 한 태극기전, 학교문화자료관, 내가 배운 교과서전, 생활사자료관, 가요사 자료관, 영화사자료관, 만화변천사, 애니메이션관 등 다양한 소주제로 나뉘어 어른들에게는 과거의 아련한 향수를, 아이들에겐 엄마 아빠가 살았던 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도록 마련됐다.

특히 1960년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생활사자료관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허름하지만 정겨운 이야기가 묻어나던 소박한 주점, 슬레이트로 만든 담벼락과 다이얼이 달린 빨간 공중전화, 촌스러운 포스터가 잔뜩 붙어있던 이발소 앞에 서서 추억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감회어린 표정을 짓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기란 어렵지 않다. 학교문화자료관에서는 이제 사라진 나무 책걸상과 양은 도시락이 차곡차곡 쌓인 난로 등 정겨운 교실풍경을 접할 수 있다.

지금 보면 유치찬란하지만 당시로서는 화려했을 영화포스터며 음반 표지들을 살펴보는 것도 즐겁다. 지금은 원로가 된 대배우들의 젊디젊은 모습을 포스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목없는 미녀’, 어린이 영화의 거장(?) 남기남 감독이 펭귄분장의 심형래를 주연으로 내세운 ‘소쩍궁 탐정’, 일본 만화영화 ‘건담’ 캐릭터를 그대로 베껴와 포스터에 떡 박아놓은 ‘우주 흑기사’ 등은 당대의 유행 코드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가요사자료관에서는 과거 한국가요계에서 최대 라이벌로 꼽혔던 남진·나훈아가 대결모드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자신만의 고유분야를 정해 모아온 개인수집가들의 소장품들을 살펴보는 것도 독특한 재미다. 껌종이, 장난감, 다리미, 재봉틀 등 작은 것에서부터 고가 라디오, 카메라 등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돈, 시간, 열정이 있어야만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수집가의 길. 나도 할 수 있을까? 초보자가 귀담아 들어야 할 수집의 세 가지 원칙은 이렇다. 첫째, 남들이 하지 않는 품목을 수집할 것. 둘째, 사회상이 담겨 있어 10년 후에도 가치 있을 물건을 수집할 것. 셋째. 과욕을 부리지 말 것. 물론 보다 깊이 파고든다면 더 자세한 지침이 나오겠지만, 아마추어 수집가들에게는 이 정도 선에서 시작해도 즐거운 취미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람시간 오전10시∼오후7시까지. 입장료는 20∼64세 9천원, 13∼16세 7천원, 5∼12세 6천원, 가족권(성인 2명, 학생 2명) 2만원이다. 티켓파크를 통해 예매하면 최고 2천원 할인된 가격에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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