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29. 2003 | 지난 6월 말 방영된 KBS 시사프로그램 ‘취재파일 4321’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문신 인구는 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문신이 의료행위로 규정되고 일반인이 시술하는 것이 불법으로 규정된 한국 현실에서라면 50만 명의 범법자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셈이다. 의료인만 문신을 할 수 있다고? 하긴 의대에선 해부학 공부를 열심히 시킬 테니 문신의 단골메뉴인 해골을 정교하게 새기는 데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진료과목에 비하면 밥벌이도 제대로 하기 힘들지 모를 문신을 전공하라고 한다면 다들 “나 의사 안 해!”하면서 병원을 뛰쳐나갈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서든 문신을 하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지만, 어디에서도 문신을 인정하는 곳은 없다. 굉장히 이상한 현실이 아닌가.
문신, 예술인가 의료행위인가?
서교동 아티누스갤러리에서 제6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구 독립예술제) 미술행사인 ‘내부공사’의 일환으로 9월 7일까지 열리는‘문신가게’전은, 문신을 표현예술의 일종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범죄행위로 취급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가상으로 만들어본 문신가게다. 문신예술가 김건원을 비롯해 김준, 윤찬, 최규식, 홍지연, 제노프릭스, 이소미, 정지인, 앤 등의 작가가 참여해, 문신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최근의 현실을 적절히 보여준다.
문신에 대한 전시답게 문신예술가 김건원의 영상 상담으로부터 전시가 시작된다. 직접 그를 만나기란 쉽지 않지만, 아쉬운 대로 테이블 위에 마련된 비디오를 통해 직접 문신상담을 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문신시술 전에 주민증을 보자고 하는 이유, 기존에 나와있는 디자인을 베껴 새기는 게 좋지 않은 이유, 평소에는 아무런 표시가 안 나지만 술을 마시면 서서히 드러난다는 전설의 ‘닭피 문신’은 없다는 이야기 등 문신과 관련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김건원도 평생 닭피 문신을 했다는 사람을 딱 한 사람 봤는데 패혈증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사람이었단다. 호기심에 닭피 문신 해달라고 조르지 말자.)
가상의 문신시술 직접 체험할 수도
이밖에도 문신 시술대와 날카로운 침이 박혀있는 문신도구, 수술장갑까지 놓여있어 문신 시술소의 분위기를 재현했다. 3천원을 내면 실제로 문신시술을 직접 해볼 수도 있다. 단, 문신이 현재 합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 피부가 아닌, 오렌지 껍질 위에만 가능하다. 아쉬운 대로 얼굴이라 생각하고 한번 문신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출품작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의 ‘대표적 문신작가’로 불리는 김준의 작업. 문신을 해보고 싶지만 부모님을 설득할 용기가 없어 캔버스에 문신을 한다는 그는, 마치 살덩어리를 잘라낸 것처럼 올록볼록 요철이 있는 변형 캔버스에 바늘로 한땀 한땀 색을 넣어 그림을 그린다. 김준의 작가노트는 문신이라는 사회적 현상 뒤에 숨겨진 억압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새기는 문신은 나의 의식 속에 각인돼 있는 강박, 지울 수 없는 과거, 하고 싶은데 현실이 용납하지 않는 것들이다.(…)내가 끔찍하게 생각하는 문신은 등짝을 도배한 용 문신이 아니라 문신이라는 문화현상을 포용하지 못하고 문신을 악용한 일부 사람들 때문에 문신 자체를 부정적으로 매도하는 분들과, 매도당하는 분들의 머릿속에 새겨진 문신이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11시∼오후 9시 30분까지다. 문의전화 02-326-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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