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소심파 길고양이 2인방

by 야옹서가 2009. 2. 14.
길고양이에게도 저마다 타고난 성격이 있습니다. 세분화하면 끝도 없겠지만, 일단 크게 '대범파'와 '소심파'로 나뉩니다. 고양이 은신처에서 가끔 보는 회색냥과 딱지냥, 두 녀석은 소심파 고양이 중에서도 왕소심파라 할 수 있습니다.

밥을 갖다줘도 가장 늦게 나타나고(사진의 노랑냥), 조금만 움직일 것 같으면 밥을 먹다가도 얼른 뒤로 물러나며, 심지어는 제가 갈 때까지 코빼기도 안 비치는 경우가 허다한 녀석(사진의 회색냥)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범한 냥이는 대범한 대로, 소심한 냥이는 소심한 대로 매력이 있습니다. 소심냥은 어쩐지 수줍어하는 거 같아서 귀엽잖아요^^

오늘은 어쩐 일인지 소심파 두 녀석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여차하면 도망갈 기세로 나무 뒤에 숨어 눈치를 봅니다. 노랑냥은 콧잔등에 딱지인지 때인지 모를 뭔가가 늘 붙어있어, 딱지냥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힐끔, 힐끔. 쳐다봅니다. '저 인간이 왜 안 가고 아직 저기 있지, 불편하게시리...'하고 불평하는 얼굴입니다.


소심한 사람이 두 명 모이면 그 중에 덜 소심한 사람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처럼, 소심파 중에서도 회색냥이 좀 더 당당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는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눈동자만 살짝 들어 힐끔거리며 보기만 하더니...
하지만 이것도 둘 사이에서만 통하는 거죠. 다른 고양이들 앞에 가면 회색냥도 똑같은 소심파.


그래도, 비슷한 성격의 친구가 있어서 회색냥은 외롭지 않을 거 같네요. 고양이 세계에서도 성격 차이란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집에 혼자 있는 고양이가 외로워 보여서 둘째 고양이를 데려왔는데, 둘이 성격이 맞지 않아 첫째에게도 미안해지고, 둘째로 들인 고양이를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어 고민하는 고양이 집사님들의 사연을 가끔 듣습니다. 그나마 적응하면 다행이지만, 둘이 평생 사이가 좋지 않으면 그것 참 난감하죠. 사람으로 치면, 정말 싫은 반려자와 평생 억지결혼을 유지해야하는 상황이랄까.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서로를 의지하는 소심파 2인방. 어느 정도 안심이 됐는지, 나란히 식빵을 구우며 자는군요.

둘이 함께 걸어온 숲길의 끝에서, 잠시 휴식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찍혔네요. 회색냥과 딱지냥, 이 소심커플이 언제나 함께 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를,  거친 세상에서도 당당하게 자기 몫을 챙기며 건강히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길고양이 통신] 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