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걷기 야나카 긴자가 내려다보이는 저녁놀 계단 맨 꼭대기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손목에 끼우고 걷는 동네 사람, 목에 카메라를 맨 뜨내기 관광객들, 무심히 종종걸음을 걷는 길고양이가 각자 제 갈 길을 바삐 간다. 오가던 사람들 중에, 엄마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갓길로 올라선다. 계단은 경사가 제법 있는 편이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살짝 어질어질한데도, 심심한 계단보다 비탈진 갓길을 아슬아슬하게 걷는 게 더 재미있게 느껴진 모양이다. 왜 어렸을 때는 길을 벗어나는 게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걸까? 왜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고 싶어질까? 그렇게 가다 보면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그것도 한때뿐이지. 언젠가는 억지로 시켜도 어려운.. 2008. 4. 6. 길고양이를, '취미 삼아' 키우냐고요? 방송국이라며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왔다. "혹시 길고양이 아직도 데려와 키우세요? 몇 마리나 키우세요? 요즘도 길고양이를 취미로 키우시나 해서요. 그런 분을 섭외하는 중인데..." 함께 사는 고양이 한 마리로도 충분히 벅차다고, 그리고 길고양이를 '취미 삼아' 키우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하지만 길고양이를 데려다 돌보고 입양하는 분들을 소개해 드릴 수는 있다고 말했더니, 원하는 그림이 그려질 것 같지 않았는지 알았다며 끊는다. 무슨 의도에서 '길고양이 키우는 취미'가 있는 사람을 찾는지 모르지만, 그 '취미'란 말이 상당히 거슬렸다. 길고양이 데려다 키우는 일을 취미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그 일을 취미라고 말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전화를 걸어온 분이 단지 어휘 선택을 부적절하게 한 것일 뿐이라고 믿.. 2008. 3. 27. 명상 고양이 일본 오다이바의 '네코타마 캣츠리빙'에 살던 명상 고양이. 파라오의 무덤에 부장된 고양이 조각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운 옆선이 단아하다. 고양이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오랫동안 앉아있다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사진을 찍느라 얼쩡거리는 내 쪽을 내려다본다. '이런 부산스러운 인간을 봤나' 하고 질책이나 하듯이. 그 시선이 예리하고도 서늘해서 정신이 번쩍 들 것 같다. 눈길로 내려치는 죽비처럼, 날카롭다. 2008. 3. 26. 로드킬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 정식 개봉(3.27~) 삵 한 마리가 대로변에 누워 있다. "이제 그만 일어나, 자동차가 달려들지도 모르잖아." 귀에 대고 속삭여도, 녀석은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길을 건너다 로드킬을 당했기 때문이다. 고양이과 동물 중에서는 길고양이와 가장 많이 닮은지라 삵을 보면 친근한 마음이 들곤 했는데... 포스터 속 죽은 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아직 사체 훼손은 심하지 않지만, 누군가 치워주지 않으면 곧 차 바퀴에 짓눌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고 말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로드킬을 다룬 영화 를 상영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2007인디다큐페스티벌 상영작 중 하나로 한 달 가까이 일민미술관에서 상영했지만, 다니던 회사에서 창간할 잡지 준비로 정신없던 무렵이라 가질 못했고 내내 마음이 쓰였다. 한데 이번에 하이퍼텍나다에서 .. 2008. 3. 11. 야나카 뒷골목 고양이들 닛포리역 근처 재래시장 야나카 긴자로 가는 길에, 혹시 고양이가 있을까 골목길을 들여다보았더니 있었다. 방울이 달린 목줄을 했고, 근처에 주홍색 밥그릇도 놓인 걸 보니 집고양이다. 집고양이나 길고양이나 관계없이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듯, 방울 단 고양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집안에만 갇혀 사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는 고양이들. 그리고 고양이만큼 자주 볼 수 있었던 자전거. 교통비가 비싼 일본에서라면, 자전거가 가장 저렴한 이동 수단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찍는 동안 스르르 나타난 고등어무늬 얼룩 고양이가, 흰고양이와 카메라 사이로 끼어들어 엉덩이를 붙이면서 슬며시 내 눈치를 본다. 2008. 3. 2. 너의 맑은 눈 사람이든 동물이든 관계없이 눈을 마주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그의 눈동자에 내가 담겨 있고, 내 눈동자에 그가 담겨있다는 건, 생각해보면 경이로운 일이다. 탁구공만 한(고양이에게는 유리구슬만 한) 동그란 무언가에 온 세계가 담긴다는 것도, 두 눈이 마주보는 순간 두 세계가 이어진다는 것도 그러하다. 그러나 시선이 마주치지 않으면, 그 경이로운 순간은 금세 사라져 버린다. 열릴 뻔했을지도 모르는 한 세계가 다시 닫히는 것이다. 2008. 2. 29. 이전 1 ··· 106 107 108 109 110 111 112 ··· 14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