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집 안국동 고양이집1) 앞에 서식하는 네 마리 고양이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삼색고양이. 고양이는 차 밑 으슥한 은신처에 자리를 펴고 사람 구경을 하고, 나는 고양이 앞에 진을 치고 앉아 고양이 구경을 한다. 고양이의 눈높이는 어떤 것일까, 같이 앉아서 경험해보는 시간. 그런데 이봐, 그 자세로는 허리가 아프지 않나. ---------------------------------- 1) 안국동에서 살던 무렵, 동생과 내가 '고양이집'이라고 부르던 구멍가게가 있었다. 옛 덕성여자고등학교 도서관 자리, 지금은 아름다운가게 창고로 쓰이는 벽돌건물 바로 앞 가게였는데, 어찌나 좁은지 두 사람이 동시에 들어서지 못할 정도였다. 두루마리 휴지처럼 부피 큰 물건을 두는 창고 겸용 쪽방 안에는 고양이 한 마리와 고양이를 닮은.. 2004. 10. 20. 엄마가 된 '행운의 삼색 고양이' 한 생명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처럼 경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같은 장소에서 꾸준히 길고양이 사진을 찍다 보면, 마냥 까불며 놀기만 할 것 같던 어린 고양이가 어느새 어엿한 엄마가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밀레니엄 타워에서 만난 ‘행운의 삼색 고양이’ 역시 1년 뒤에 네 마리의 새끼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어린 고양이답게 토실토실하던 몸이 자라서 늘씬해지고, 얼굴 살도 홀쭉하게 빠져서 그런지 처음에는 행운의 삼색 고양이라는 걸 몰라볼 정도였다. 하지만 집에 와서 찍은 사진을 훑어보는데 얼룩무늬가 어쩐지 낯익어, 1년 전 사진과 대조해보니 그 녀석이 확실했다. 새끼 네 마리를 홀몸으로 건사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걸까. 하얗게 빛나던 콧잔등에도 때가 묻고, 찹쌀떡처럼 폭신하게 보이던 발등의 털도 듬성.. 2003. 8. 9. 사랑의 과녁 짧은 꼬리를 휙휙 흔들며 사라졌던 '행운의 삼색 고양이'는 이듬해 새끼를 가진 어미 고양이가 되어 나타났다.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일 때가 되면 가슴도 부풀어 오르고, 젖꼭지 근처에 동그라미를 친 것 같은 무늬가 생긴다. 꼭 과녁 같다. 털속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으니, 여길 보고 알아서 찾아먹으라는 신호일까. 새끼들에게는 달콤한 '사랑의 과녁'인 셈이다. 딱히 먹일 만한 것이 없어서, 근처 구멍가게에서 천하장사 소시지를 사다줬더니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바닥에 소시지의 잔해 한 점을 남기고, 못내 아쉬운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올려다본다. 새끼 거둬 먹이느라 다리며 얼굴은 예전보다 홀쭉해졌는데, 젖이 고여 부풀어오른 몸이 못내 무거워 보인다. 2003. 7. 8. 행운의 삼색 고양이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광화문-종각역-인사동을 왕복하는 익숙한 동선을 따라 무심코 오가던 길에서, 어린 삼색 길고양이를 발견한 것은 2002년 7월이었다. 그전에도 길에서 몇 차례 길고양이를 만난 적은 있지만, 친해지고 싶어서 손을 내밀면 녀석들은 잽싸게 내빼곤 했다. 그런데 종로의 한 빌딩가 화단 속 은신처에서 만난 삼색 고양이는, 사람을 슬금슬금 피하는 여느 길고양이와 달랐다. 검은 대리석 화단에 ‘식빵 자세’로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몸을 일으키더니, 화단 난간에 팔짱을 끼고 앉는 게 아닌가. 바에 와서 마실 것 한 잔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여유롭기까지 하다. 아직 채 한 살도 되지 않은 어린 고양이 같은데 대담하기 짝이 없었다. 이 정도면 내가 고양이를 구경하는 게 아니라, 고양이.. 2002. 7. 7. 이전 1 ··· 141 142 143 14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