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가끔 어디론가 사라진다. 워낙 숨기를 좋아하는 터라 십중팔구 어딘가 으슥한 곳을 찾아들어간 거겠지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너무 오랫동안 보이지 않으면 ‘혹시라도 집을 나간 건가?’ 싶어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스밀라 실종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정말 가슴이 철렁했다. 스밀라가 종종 들어가 숨는 종이상자도 열어 보고, 혹시 옷장이나 싱크대 문을 앞발로 열고 들어갔나 싶어 일일이 문짝을 여닫아 봤지만 어느 곳에도 고양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베란다 철망에 매달려 놀다가 추락한 건 아닐까, 아니면 쌓아둔 잡동사니 상자에 깔리기라도 했나’ 하고 온갖 상상을 하면서 베란다 쪽을 살피는데, 베란다방에 세워둔 책꽂이 세번째 칸에 하얀 털 뭉치가 보였다. 스밀라였다.

책꽂이와 책 사이의 빈 공간, 기껏해야 10cm 정도 될까 말까한 틈새에 스밀라가 몸을 납작하게 만들어 누워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폐소 공포증에 걸릴 법한 좁은 곳인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편안한 얼굴을 하고서. 반가운 마음 반, 얄미운 마음 반으로 잡아서 끄집어내니, 스밀라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우엥 하고 울어댔다. 왜 내 은신처를 습격하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고양이는 분명히 사막에 살던 족속이라고 들었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동굴을 좋아할까?

요즘도 스밀라는 으슥한 곳을 찾아 온 집안을 헤매고 다닌다. 식탁 밑 그늘진 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의자에 앉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장식장에 폴짝 뛰어올라 조선백자처럼 점잖게 앉아 있을 때도 있다. 이게 다 ‘나만의 고양이 동굴’을 마련해 달라는 무언의 시위 아니었을까.

여자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돈과 자기만의 방이라지만, 고양이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동굴이 필요한 모양이다. 결국 모양새는 그리 좋지 않지만, 스밀라를 위해 거실에 간이 동굴을 마련해 줬다. 낡은 식탁 의자에 이불을 차양처럼 둘러치고 거실 한 구석에 갖다 뒀더니, 줄곧 그 속에서 논다. 저 속에 있으면 도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해서 배를 바닥에 납작 붙이고 스밀라의 동굴로 머리를 들이밀어 봤다. 동굴 속은 어둡고, 조용하고, 따뜻하다. 내가 살아가는 번잡스런 현실과 다른 평화로운 세계가 그 조그만 그늘 속에 있다. 고양이가 동굴을 필요로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고경원 길고양이 블로거 catstory.kr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소중한 건 ‘대체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내게는 길고양이 사진이 그랬다. 비슷한 골목, 닮은 고양이를 찍을 수는 있겠지만, 길고양이를 찍으러 다녔던 그때 그 순간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시간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처럼, 길고양이 역시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사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대학에 다닐 무렵 니콘(FM2)을 장만한 것도, 포트폴리오용 슬라이드 사진을 찍으려면 수동카메라가 필요해서였을 뿐이다. 한데 2001년 2월, 밥벌이와는 도무지 상관없는 전공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니, 학원 강사 아니면 아르바이트밖에 할 일이 없었다. 취직이 안 되는 것보다, 내가 소중히 여겼던 일이 정작 세상에서는 쓸모 없는 짓으로 치부되는 게 괴로웠다. 나는 마음이 휑해지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잡념을 지워 버리는데, 그때 선택한 방법은 후자였던 모양이다. 카메라를 들고 아무 계획도 없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온갖 잡동사니를 찍어댔다. 그러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누군가 쓰던 캐비닛이 아무렇게나 뒹구는 곳, 철거 직전의 빈집 같은 냄새를 풍기는 길 한가운데, 버려진 물건처럼 무심한 얼굴의 길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그 무심함이 어쩐지 마음을 끌었다. 찰칵. 2001년 4월 어느 봄날, 125분의 1초만큼 빛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팍팍해질 때면, 6년 전에 찍었던 길고양이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 흑백사진 속에 정물처럼 반듯하게 고양이들이 앉아 있다. 그제야 내가 왜 길고양이를 찍었는지 알 것 같았다. 길고양이가 나를 빤히 바라볼 때, 그의 눈동자에는 내 모습이 담긴다. 찰칵! 나는 그 눈에 담긴 시간을 찍는다. 찰칵! 결국 내가 찍은 건 길고양이가 아니라, 하릴없이 거리를 방황하던 내 모습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연말을 맞이해, 고양이에게 애틋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기묘(己猫)한 이야기>란 전시를 준비했다. 제목처럼 나와 고양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과 사진을 전시할 예정이다. 고양이를 그리는 사람, 집고양이를 찍는 사람, 나처럼 길고양이를 따라다니며 스토커 노릇을 하는 사람 등이 참여했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12월15~19일 사이 상수역 근처 ‘갤러리 소굴’(www.sogool.net)에 한번쯤 들러보시길. 귀여운 고양이들이 벽에 오골오골 몰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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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도 허물을 벗는다. 고양이와 한 집에서 살기 전에는 미처 짐작도 못했던 일이다. 허물이라고 해서 뱀처럼 통째로 가죽을 갈아 치우는 거창한 수준은 아니고, 발톱 끝의 각질층이 통째로 훌렁 벗겨지는 정도지만, 그래도 빠지기 전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발톱을 보노라면 신기하다.

처음 고양이 발톱 껍데기를 발견했을 때는 “어떡해, 발톱 빠졌어!” 하고 호들갑을 떨다가, 고양이들은 주기적으로 발톱이 벗겨진다는 사실을 안 뒤에 멋쩍어서 무심코 버렸었다. 하지만 요즘은 거실 청소를 하다가 바닥에 나뒹구는 고양이 발톱을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이 들어 잘 챙겨둔다. 한번 모아서 뭔가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초승달을 닮은 고양이 발톱을 모아 콜라주를 해보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상상도 해 본다. 인간의 피를 얼려 만든 조각, 얇게 썬 고기를 이어 만든 드레스도 있는 판에, 고양이 발톱을 모아 만든 그림이 하나쯤 있다고 이상할 건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작품이 있다면, 고양이와 함께 한 시간을 담은 셈이니 더욱 소중할 것이다.

누군가는 “지저분하게 고양이 발톱 따위나 모으다니, 무슨 짓이냐”하고 타박할지 모르지만, 고양이 발톱은 인간의 그것처럼 구질구질하고 투박한 모양을 한 발톱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늘 발톱갈이 기둥에 앞 발톱을 갈아대니 때가 낄 새가 없다. 게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음으로 빚은 초승달처럼 투명하고 새치름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속이 텅 비었으면서도 끝이 날카로운 원형을 고스란히 유지한 모습은 마치 동물의 뿔 같다.

고양이의 덩치가 작아서 다행이지, 만약 큰 몸집이었다면 고양이 발톱을 모아 공예품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꽤나 덤벼들었음직하다. 누르면 부서질 정도로 연약하지만, 예술 작품이 꼭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그것도 결격 사유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막상 고양이 발톱을 모아 볼까 결심하니 여간해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 고양이 한 마리가 지닌 발톱이 수십 개이니, 각질도 분명 여러 개가 발견되어야 정상인데, 가뭄에 콩 나듯 한 두개씩 떨어져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혹시 우리집 고양이 스밀라가 발톱 손질을 하다가 각질이 떨어진 게 눈에 띄면 날름 먹어 버리는 건 아닐까? 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고양이의 습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래저래 걱정이니 눈에 띄는 족족 챙겨 두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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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새나 새끼 때는 사랑스럽지만, 몸에서 솜털이 빠질 무렵이면 시련이 시작된다.

사간동에서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산비둘기 새끼를 만났다. 어떤 새나 새끼 때는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 몸에서 솜털이 슬슬 빠지고 깃털이 자라나면 시련이 시작된다. 어미는 더 새끼를 돌보지 않고 매정하게 내버려둔다. 한때는 귀여웠을 솜털이 지저분하게 너덜거리는 것으로 보아, 어미에게 밥을 얻어먹고 다닐 시점은 이미 지난 청소년 비둘기인 듯했다.

한데 사람이 눈앞에 다가와도, 화분 그늘에 숨어 있던 녀석은 도무지 달아날 기색이 없다. 어딘가 불편한 듯 작은 몸을 움찔거릴 뿐이다. 새끼 비둘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마의 깃털이 성글게 빠져 있고, 눈과 눈 사이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길쭉한 상처가 있다. 상처가 꽤 깊이 팬 걸 보면, 날기 연습을 하다가 호되게 추락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아니면, 아직 제구실을 못하는 날개만 믿고 방심한 채 나다니다가, 길고양이의 날카로운 앞발에 찢긴 것이거나.

어찌됐건 몸이 성치 않은데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앉아 있으면 험한 일을 당할 것 같아 잘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옮겨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손을 가까이 가져가니, 녀석은 잔뜩 긴장해서 가슴을 부풀린다. 숨을 할딱할딱 쉬며 갈등하는가 싶더니, 무거운 제 몸 아래 깔린 두 발에 힘을 준다. 방심한 자세로 땅에 놓여 있던 발가락도, 뭔가 움켜쥐기라도 할 것처럼 잔뜩 힘줘 오그라든 모양새로 변했다.

다급하게 울거나 날개를 퍼덕이는 대신, 녀석은 침묵하며 제 앞에 선 거대한 인간을 향해 온몸으로 “나를 건드리지 마!”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공포와 불안에 떠는 발끝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그 자리에 놓아두는 게 녀석을 위하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이제 곧 겨울인데, 비둘기를 ‘닭둘기’라며 싫어하는 사람들을 피해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서울시는 지난 10월19일 “도심 비둘기를 유해 조류로 분류하고,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 벌금을 물리도록 ‘야생 동식물 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포식자가 없는 도심에서 비둘기 개체 수가 점차 늘어난 탓이다. 하지만 잇따른 법 개정이 ‘비둘기 대학살’의 명분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효과는 좀 더디지만 먹이에 불임 약을 섞어 뿌리거나, 맹금류를 닮은 야광 눈이 달린 풍선을 설치해 비둘기를 쫓아도 효과가 쏠쏠하단다. 살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비둘기의 절박함을 본 적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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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근처 헌책방 북오프에 들렀다가 재미있는 일본 문고판을 발견했다. 이름하야 고양이 발바닥 책. 고양이 발바닥에는 ‘육구’라는 말랑말랑한 살이 있는데, 고양이의 종류와 나이에 따른 발바닥의 모양을 실제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물론 고양이 발바닥이 중심을 이루기는 하지만, 발바닥의 주인인 고양이씨의 얼굴과 몸도 가끔 등장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고양이의 육구는 한때 구멍가게에서 인기리에 판매되었던 ‘곰형 젤리’라는 과자류와 비슷하다. 밝은 색 계통의 털을 가진 고양이들에게 흔한 분홍색 발바닥은 ‘딸기 젤리’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어두운 색 계열의 털을 지닌 고양이의 발바닥은 ‘초코 젤리’, ‘포도 젤리’ 등으로 부르는데, 애묘가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별칭이다.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 스밀라의 발바닥은 초코 젤리 쪽인데, 바야바처럼 털로 뒤덮여서 제대로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곰형 젤리가 뭔지 모르시는 분은 테디베어를 상상하면 된다. 물론 곰형 젤리나 테디베어나 발바닥 모양을 그냥 봐서는 안 되고, 원래 모양에서 180도 뒤집어 봐야 알아볼 수 있지만. “이게 어디 곰 모양이냐?” 하고 항의하려는 분들은 잠깐 흥분을 멈추고, 애정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시라. 얼룩으로만 보이던 매직아이 패턴에서 어느 순간 입체 그림이 떡 하니 나타나는 순간처럼, 고양이 발바닥 부분은 곰의 몸통, 발가락 부분은 곰의 팔다리로 보일 시간이 올지니.

어쨌든 이 책을 보면서 세 번 놀랐다. 첫 번째는 마니아들에게나 먹힐 법한 고양이 발바닥이라는 주제의 책이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진다는 점, 두 번째는 책을 접으면 엽서보다 작은 정도의 크기여서, 손바닥에 올려놓아도 공간이 남을 만큼 작다는 점, 세 번째는 그럼에도 책값이 아깝다는 느낌보다 깜찍하고 특이해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점. 책값은 한국 돈으로 환산해서 6천원 정도였다.

고양이 발바닥 책을 보면서 한국 출판계에서도 틈새시장을 공략해 보면 어떨까 싶었지만, 현실을 생각하곤 쓴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좁아터진 동물 책 시장이라, 팔리기는 힘들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손바닥 크기의 미니어처 북은 이문이 적고 도난 위험도 잦은데다, 서점에 진열하기도 어렵단다. 게다가 독자들은 작은 책이 왜 이리 비싸냐며 외면한다고. ‘한국판 고양이 발바닥 책’의 꿈은 이래저래 이뤄지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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