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고양이 1] 인간과 동물 사이, 몽환적인 인형들-인형작가 이재연

 

인형작가 이재연의 작품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환상동화 속에서 걸어나온 듯한 그 인형에는, 낯설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 존재들이 늘 그렇듯,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어디로든 스스럼없이 스며든다. 기묘하고 매혹적인 판타지를 인형으로 빚어내는 작가 이재연을 만났다. 

 
이재연의 일산 작업실 입구는 피규어로 쌓은 성벽 같다. 어두운 지하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유리관처럼 투명한 상자에 담긴 피규어들이 벽을 따라 빼곡히 들어찼다. 그의 작업실이 피규어 쇼핑몰의 창고도 겸한 까닭이다.

피규어 성벽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니, 그제야 작업공간이 보인다. 컴퓨터 2대와 작업책상, 인형 옷을 만들 때 쓰는 미싱, 각종 공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지하실이라 볕은 들지 않지만, 대신 한쪽 벽 전체를 푸른색으로 칠해 하늘빛을 실내로 들였다.


처음부터 인형작가를 꿈꾼 건 아니었다. 웹디자이너로 일하다 개인 작업을 하고 싶어 회사를 그만뒀고, 온라인 피규어 쇼핑몰을 차렸다. 그러면서 피규어를 팔기만 할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피규어를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 인형교실이었다.  2003년 겨울, 한국 구체관절인형작가 1세대인 정양희 인형교실을 찾아가 구체관절인형과 비스크 인형 제작법을 배웠다. 그때 만난 동기들은 지금까지도 단체전이나 기획전을 통해 교류하면서 서로 힘이 되어준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빚어 만든 인형들
“한번은 인사동에서 전시를 했는데, 조카가 ‘이모 인형은 너무 슬퍼요’ 그래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표정이 나오는 게 제 인형의 특징 같아요.” 

이재연
의 인형은, 귀여운 얼굴과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는 여느 상업인형들과 다르다그에게 인형은 예쁜 옷을 갈아입히며 노는 물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감정을 담는 그릇에 가깝다. 인형을 만들 때면, 텅 빈 웃음만 짓는 인형에 결핍된 어떤 감정을 형상화하고 싶었다. 의식 깊은 곳에서 억눌렸던 감정이, 미묘하게 비례가 비틀린 인형에 고스란히 담긴다. 작은 인형의 몸에 깃든 감정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처음에는 그런 감정을 형상화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요즘은 동물과 사람의 중간 단계를 묘사하는 데 마음이 끌려요. 이를테면 앞에서 볼 땐 토끼 머리통이었는데 뒤를 보면 사람 얼굴이 있다던가, 얼굴은 고양이인데 몸은 사람이던가 하는 식이죠.

 이재연은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면을 강조한 반인반수보다, 판타지를 가미해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데 흥미를 느낀다. 그런 인형 중에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을 재해석한 작품이 있다. 책에 수록된 원화도 아름답긴 하지만, 그저 원화를 입체로 재현하기만 하는 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약간 변화를 준 캐릭터가 조깅복을 입은 붉은 여왕이다. 탄탄한 근육, 날렵한 손날, 인간과 고양잇과 동물이 기묘하게 뒤섞인 듯한 얼굴은 마치 실제 고양이가 육상선수로 변신한 것처럼 보인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내내 달리기만 하는데, 그것도 특이하게 뒤로만 달려요. 그리고 앨리스가 꿈에서 깰 때, 붉은 여왕은 고양이로 변하게 되죠. 그런 설정이 흥미로워서 조깅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여왕으로 만들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왜 쟤가 여왕이냐고 물어요. 보통 여왕은 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쓴 모습으로 표현되니까 낯설었던 거죠.



이렇게 고양이를 모델로 한 인형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다. 러시안블루 피비와 조이, 그리고 인형공방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발견해 키운 새끼고양이 모니카, 이렇게 세 마리가 항상 작업실에 함께 한다. 한동안 즐겨 보았던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주인공들 이름인데, 모두 여섯 명이라 남은 이름 세 개는 집 근처로 밥 얻어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들에게 붙여줬단다.

 
분명 고양이가 세 마리라고 들었는데, 보이는 건 피비 뿐이다. 둘째 조이와 막내 모니카는 겁이 많아서, 낯선 사람을 보면 무작정 숨기부터 한다고 했다. 간식 캔 따는 소리로 유인해도, 모니카는 커튼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얼른 숨기만 할 뿐이다. 신경이 예민한 조이는 잠시 안겨있나 싶다가, 뒷발로 힘껏 밀치면서 뛰어내려 후다닥 달아난다. 얼마나 날쌘지 고양이가 아니라 새끼표범 같다. 유독 낯가림이 심해 평소에는 모습을 잘 볼 수 없는 ‘투명 고양이’들이 있다는데, 피비와 모니카도 그런 모양이다.


동생들이 숨거나 말거나, 피비는 개의치 않고 모니터 위로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앉는다. 높고, 넓고, 따뜻해서 피비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다. 사람을 가장 잘 따르는 피비는 잘 때도 사람 곁에 다가와 팔베개를 하고 잔다. 그러니 첫째인 데다가 유달리 살가운 피비에게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세 마리 고양이를 모델로 삼아 스탬프도 만들었다. 이재연은 인형을 주문한 사람들에게 직접 헝겊가방을 만들어 보내는데, 가방 표면에 이 스탬프를 찍어 보낸다. 그의 작업실에 머물면서 고양이의 매력을 전해준 피비, 조이, 모니카는 스탬프 도안으로 다시 태어나 이재연의 인형과 함께 낯선 곳을 여행한다.  


 “피비를 모델로 인형을 만들 때는 되도록 닮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진짜 고양이처럼 되어버려서, 인형다운 맛이 사라졌죠. 피비 말고도 고양이 세 마리가 표정이 다르니까, 하나하나 다르게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귀여운 포즈나 인상적인 상황, 표정…만들고 싶은 모습이야 너무 많죠.


이재연이 요즘 즐겨 만드는 건 비스크 인형이다. 석분점토로 만드는 구체관절인형과 달리, 비스크 인형은 일정 수량까지 복제가 가능하고, 같은 원형을 쓰더라도 채색과 의상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느낌의 인형이 된다. 점토나 비스크 모두 재료의 장단점이 있지만, 자유로운 형태를 묘사해야할 때는 점토로 빚어 만들고, 비스크는 매끄럽고 고급스런 분위기를 내야할 때 쓴다.  

 

“비스크 인형에는 안구를 넣기도 하고 손으로 그려 넣기도 하는데, 안구를 넣으면 살아있는 것 같고 정교해 보이지만 차가운 느낌이 들죠. 저는 조각에도 그림처럼 작업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안구를 그리는 쪽이 더 마음에 들어요.
 


고립된 채 작업에만 몰두하기 쉬운 인형작가에게 가장 어려운 건 작품을 알리고 안정적인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다. 인형작가 커뮤니티숍 ‘판도라돌’(www.pandoradoll.com)을 운영하는 것도, 이런 상황에서 작은 돌파구나마 마련해보려는 시도 중 하나다. 판매되는 작품들은 위주여서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인형을 팔아 큰돈을 벌기보다는 창작인형 분야를 대중에게 알리고 싶은 목적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작가들이, 인터넷을 통해 교류하는 장이 되었으면 한단다. 이재연닷컴(www.leejaeyeon.com)에서도 그가 만든 동물 인형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예술가와 고양이, 잘 어울리는 한 쌍 같죠? 아마도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하며 작업에 몰두하는 예술가의 이미지와,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고양이의 속성이 비슷하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  

2009년 1월 새롭게 연재할 인터뷰 예술가의 고양이
에서는, 예술가와 함께 살며 창작의 영감을 준 고양이의 사연들,

그 과정에서 작품으로 태어난 고양이의 매력을 만나봅니다
.

인형, 사진, 회화,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양이를 모티브로 삼아 창작활동을 하시는 분들
, 그리고 

고양이와 꼭 함께 살지 않더라도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 관련된 작품을 만드는 분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피비, 조이, 모니카' 세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사는 구체관절인형작가 재연 씨의 작업실입니.

 


사진 모델은 피비입니다. 모니터 위에 올라가 앉기를 좋아한다는군요~

[문화와 나/ 2008년 겨울호]

 

수도승처럼 파르라니 깎은 머리, 죄수복 같기도 하고 어릿광대의 무대복 같기도 한 줄무늬 셔츠를 걸친 사내들이 어두운 작업실에 줄지어 섰다. 조각가 천성명은 자신의 페르소나인 그들을 몽환적인 잔혹극 속으로 불러낸다. 누군가는 천성명의 연극적인 조각에서 상처를 읽어내고, 누군가는 어두운 내면의 투쟁을 본다. 그러나 두려워 눈을 가리고 달아나면서도 기어이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그의 작품 속에 있다.

천성명은 경기 화성시 동탄면 목리창작촌의 컨테이너 작업실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창작에 전념한다. 정오께 작업실로 왔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수원 집으로 향하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다. 2001년 무렵, 동료 작가들과 함께 맨땅에 터를 닦아 목리창작촌을 만들었고, 그의 주요 작품 대부분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내년이면 이 작업실도 철수해야 한다. 시설이 낙후되고 공간도 부족한 데다, 동탄 신도시 개발의 여파가 이곳까지 미친 까닭이다. 녹슨 컨테이너 지붕에는 2007년 개인전 때 전시했던 거인상이 올려져 있다. 워낙 덩치가 큰 작품이라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지붕 위에 뒀다고 한다.


이렇게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그가 만든 자소상들은 대개 1미터 내외의 높이다. 등신대보다는 조금 작고, 인형보다는 조금 큰 크기다. 인간과 인형의 경계선에 있는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찾아낸 적정 높이가 1미터인 셈이다. 물론 모든 작품을 처음부터 이런 크기로 제작한 것은 아니다.


“원래는 등신대였는데, 점점 머리 부분만 가면을 쓴 것처럼 커졌어요. 그러다가 머리는 그대로고 몸만 작아진 형태로 바뀌었어요. 현실 공간에 놓았을 때 아이처럼 보이지만, 얼굴은 어른의 모습으로 보이죠.”


천성명은 예술품의 권위를 상징하는 좌대를 버리고 맨바닥에 조각을 세운다. 좌대의 도움 없이 두 발로 직립한 조각들이 전시장에 들어설 때, 공간에 긴장감이 감돌고 맨바닥은 어느새 연극적인 무대로 변신한다.


경계에 갇히다

천성명의 페르소나들은 이곳과 저곳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를 맴도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끝날 줄 모르는 갈등 상황을 벗어나려 애쓰지만, 이동수단으로 선택한 탈것들은 하나같이 무용지물이다. 앞뒤로 흔들리는 요람, 빙글빙글 맴도는 회전목마, 발을 굴러야만 겨우 움직이는 장난감 말…. 잃어버린 유년기를 상징하는 이 물건들은 모두 멈춰 있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원래 있던 곳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 구원을 위한 날개조차 무용지물이 되거나, 흉기로 돌변한다.


갤러리 상에서 열린 다섯 번째 개인전 《달빛 아래 서성이다》(2005)에서, 달을 향해 날아오르던 남자가 결국 좌절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두운 하늘 한가운데 뚫린 구멍처럼 빛나는 달은 상징적인 탈출구로 기능하지만, 남자는 달을 향해 날아오르다 몸을 짓누르는 날개의 무게 때문에 추락하고 만다. 언뜻 보기엔 환상동화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인형들은 좌절과 상처로 얼룩져 있다.


천성명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묻는다. 당신의 어두움은 어디까지냐고. 그는 답한다. 20대, 30대에 학교를 갓 졸업해 대한민국에서 작가로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에겐, 밝은 일보다 어두운 일들이 더 많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내겐 어두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그런데도, 그 어둠 속에서 치유의 빛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신비한 일이다. 천성명이 만든 자소상은 그가 유독 애착을 갖는 검은 거울의 상징성과 닮았다. 은빛 거울이 빛의 세계에 속한다면, 검은 거울은 의식 깊은 곳에 가라앉은 어둠의 세계를 비춘다. 전시를 보러온 사람들은 내면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검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조심스레 마음을 열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조각들

“처음에는 저도 그런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는 과정에서 작업하는 자체가 저에게 일종의 치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인식을 갖기 시작한 게 2005년 무렵이었어요. 흥미로운 건 제가 제 얼굴을 빚은 작품으로 제 얘기를 하듯, 타인들도 제 작품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전시회 소식을 신문에서 보고 기사를 오려내 전시장까지 찾아와서는, 작품을 보니 억눌린 자기 인생을 보는 것 같다면서 저를 붙잡고 감정을 토해내는 아주머니도 계셨어요.”


여섯 번째 개인전부터는 이전 작품보다 한층 더 직설적인 세계로 접어들었다. 이전 전시에서 자기검열을 거쳤던 장면들도 스스럼없이 묘사했다. 손목을 그은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조차 푸른 눈물로 처리했던 전작과 달리, 최근 작품에서는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 스며 나온 피비린내가 물씬 풍긴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서정적인 동화 같은 면을 지녔던 그의 전작에 열광한 사람들 중 일부는, 갑자기 격하게 상처를 토해내는 천성명의 조각에 낯설어했다. 하지만 그런 변화의 배경에는 ‘나를 찾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제가 원래 모델링 작업을 잘 안 해요. 자소상을 만들어오긴 했어도, 동양화로 치면 실경산수보다 관념산수에 가까웠죠. 그러다 ‘그림자를 삼키다’ 작업을 하면서 오래간만에 작은 거울을 사서 계속 보면서 제 얼굴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얼굴이 매일 달라지는 거예요. 그때마다 고치기를 한 달 동안 매일같이 했어요. 전날 술을 마셨거나 약을 먹고 자서 얼굴이 부으면 또 다르게 보여서, 고치고 또 고치고. 결국 나중엔 거울에 비친 내 형상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나’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나는 이렇게 생겼어’ 하고 아는 것과, 남들이 아는 나는 굉장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이야기가 구체화된 것이 ‘그림자를 삼키다’의 1부 얘기죠.”


내 안의 그림자를 만나는 여정

갤러리 선컨템포러리에서 열린 여섯 번째 개인전 《그림자를 삼키다》 1부(2007)에서는 천성명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전작에서 그가 우회적으로 상처를 이야기했다면, 이제 천성명의 페르소나들은 피로 물든 사이코드라마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 속에서도 상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절대 상처를 내보이며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두려움은 거세게 충돌한다. 한 몸에서 갈라져 나온 상반된 욕망은 인질극을 벌이는 샴쌍둥이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두 욕망의 근원은 하나이니, 서로를 찌르고 베는 일은 결국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일 뿐이다. 눈을 잃고 껍데기만 남은 거인, 물고기 가면을 뒤집어쓴 소년, 풍경을 손에 든 소녀 등 그의 전시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자아를 반영하며, 서로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도록 치밀하게 계획되어 전시된다.


몸은 여럿이나 실체는 하나인 자소상들이 피를 흘리며 상처를 드러낸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이들은 작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실체인 동시에, 그의 삶을 지배하는 그림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음속의 그림자를 직시해야만, 비로소 그림자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질 힘이 생겨난다. 그런 뜻에서 줄무늬 셔츠의 아이가 뒤집어쓴 물고기 가면은 의미심장하다. 이 가면에는 눈을 부릅뜬 채 수도에 정진하기를 독려하는 사찰의 목어처럼, 내면의 각성을 향한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초기에는 모터를 달아 장난감처럼 단순동작을 반복하는 기계인형을 만들거나 음향 효과를 덧붙이면서 순간적인 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집착했어요. 하지만 이젠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내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려 해요. 초기 작업이 한 장면의 연출이었다면, 이젠 장면과 장면을 이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단계인 거죠.”


이야기로 소통하고 싶은 욕망

오는 10월 헤이리 터치아트 갤러리에서 열릴 일곱 번째 개인전 《그림자를 삼키다》 2부 전시에서는, 그가 보여주고픈 이야기의 윤곽이 좀 더 뚜렷해질 듯하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받는 상처에 대한 얘기가 1부의 주된 내용이었다면, 2부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욕망, 그로인해 입은 상처까지도 받아들이고 해소하는 내용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에는 학습화된 인간을 상징하는 아홉 명의 늑대 인간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해 이야기를 매듭짓게 된다. 전시가 끝나면 다시 보기 힘든 설치작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진 작업과 미니어처 작업, 전시 내용을 담은 단행본도 함께 구상 중이다.


천성명은 자신의 상태가 ‘흰색과 검은색의 중간에 두 발을 한 쪽씩 걸치고 선 느낌’ 같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규정짓는 경계뿐 아니라 미술계의 시스템에도 관심이 많다. 이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품만 하는 게 아니라, 전시 외의 다른 방법으로 대중과 소통을 시도해온 그의 행보와 이어진다. 천성명은 한때 자신의 이름을 건 아트숍 ‘천성명인(人)’을 열었다. 일회적 전시로 끝나는 공간이 아니라 작품도 보고,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소장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작가의 소식도 접할 수 있는 아트숍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작업실과 전시장의 중간 단계인 이 공간이 정착되기엔 시기적으로 일렀다. ‘천성명인’은 임대료가 턱없이 비싼 인사동에서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내년에 목리 창작촌을 떠나 새로운 곳에 작업실을 꾸리게 되면,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생적인 작업 공간을 만들고, 작품을 통해 사회 환원에 참여하는 게 그의 또 다른 꿈이다. 2008년 2월 오픈한 홈페이지(http://chunsungmyung.com)는 타인과의 교감을 꿈꾸는 그가 묵묵하게, 그러나 꾸준히 시도해 온 시도 중 하나다. 사이트 역시 그의 이원화된 세계관이 잘 드러난다. ‘천성명’을 클릭하면 작가로서의 그를 만날 수 있고, ‘人’을 클릭하면 인간 천성명을 만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이채롭다.


천성명 | 조각가. 1971년생. 수원대학교 조소과(1999)와 동 대학원(2001)을 졸업했다. 김세중 청년조각상(2007), 벨그라드-Micro-narratives 3등상(2007), 동아미술제 대상(2000), 경기미술대전 우수상(1998) 등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대학원과 추계예술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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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함께 있었을 뿐인데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고양이와 살아본 사람이라면 경험했을 마법 같은 순간이 있다. '고양이 화가' 이경미는 그 소중한 경험을 담아 고양이를 그린다. 그의 그림 속에서 고양이는 모델일 뿐 아니라 마음을 다독여주는 친구이고, 신비한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다. 겉으로 보이는 고양이의 모습은 하나지만, 이경미의 고양이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과 경험의 폭에 따라 여러 겹의 의미를 지닌다. 그의 네 번째 개인전 <李나나+金랑켄>전이 열리는 청담동 표갤러리와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나란히 걸린 고양이 초상화 한 쌍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이 각각 <李나나>와 <金랑켄>이다. 성격이 예민하고 때론 까칠한 10살배기 토종고양이 나나가 작가의 성격과 닮았다면, 4살배기 페르시안 친칠라 랑켄은 곧 결혼할 남자친구의 성격과 꼭 닮아서, 예비부부의 성을 붙여 제목을 지었다. 고풍스런 액자를 가린 벨벳 천을 잠시 걷고 그림을 보여준 것 같지만, 이 그림은 섬세하게 그린 눈속임 그림이다. 그림 일부를 가린 듯, 살며시 보여주는 이 천은 이경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을 앓았고 어머니가 한복집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느라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어요. 한복집도 번듯한 가게가 아니라 주문받은 일감 떼어다 만드는 그런 영세한 곳이었죠. 근데 어머니의 한복 천을 어깨너머로 보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어머니가 한복 일을 못하게 되셨을 때, 그 천을 받아다가 지금도 작품에 그리고 있어요.” 



 


 

어머니 마음처럼 상처를 감싸는 그림
지금도 그의 작업실 한 구석에는 한복천이 돌돌 말려 있다. 작가는 어머니 곁에 늘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한복감의 색과 질감, 주름이 만들어낸 세계에 마음을 빼앗겼고, 바라보기만 할뿐 가질 수 없었던 그것들을 그림 속에 그려 넣었다. 넉넉하게 주름져 그림 속에 치렁치렁 드리운 천은, 세상 모든 아픈 것들을 끌어안는 어머니의 마음과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한복 천과 더불어 이경미에게 마음의 치유를 상징하는 또 다른 대상은 고양이다. 그와 함께 사는 한국 토종고양이 나나(10)와 페르시안 친칠라 랑켄(4)에게는 아픈 사연이 있다. 나나는 방광결석으로 1년 넘게 병치레를 했고, 랑켄은 어렸을 때 목뼈와 두개골을 다친 상태로 뼈가 아물어 얼굴이 15도가량 한쪽으로 기울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비싼 병원비와 마음고생을 감수해가며 이들을 거둔 것은, 고양이도 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고단했던 20대를 함께 한 고양이

“원래부터 고학생이었기 때문에 1998년 IMF가 터졌을 때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1999년 4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제가 책임져야 했어요. 4학년이었는데 학교 다니면서 새벽까지 아르바이트 하고…. 그해 8월 길에서 5천원을 주고 나나를 데려왔어요. 집에 오면 나나가 은근하게 절 지켜봐주고 ‘냐옹’하고 반길 때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위로를 많이 받았죠.”


하지만 나나가 생후 1년쯤 되었을 때, 갑자기 방광결석이 생겨 수술해야할 상황이 됐다. 어머니는 ‘똥고양이에게 무슨 병원이냐’며 차라리 버리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나의 수술 날, 모녀는 함께 울었다. 딸은 손도 못 써보고 세상을 뜬 아버지와 아픈 나나의 모습이 교차해서 울었고, 어머니는 딸이 힘겹게 번 돈을 헛되이 써버리는 게 속상해서 울었다. 이후로 병이 재발해 한 차례 더 수술을 하고, 주사로 인한 염증이 생겨 1년 가까이 병치레를 해야 했다. 생계를 위해 바빴던 이경미 대신, 병수발을 어머니가 도맡았다. 병원비와 치료비로 수백 만원이 날아갔다. 오랜 투병 끝에 성격도 까칠해졌지만, 그래도 나나는 여전히 소중한 고양이다.

작업실의 이젤 뒤에 숨은 고양이 나나. 원래 수컷이지만 어렸을 때 성별을 몰라 나나라고 이름 붙였다.

 

소중한 것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저는 고양이를 제대로 못 돌봐줄 때도 많고…. 고양이 애호가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고양이 속에 내재된 ‘주변인’의 모습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아요. 하지만 고양이들이 버림받고 길을 돌아다니게 놓아두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도 세상의 어디선가 죽어가는 사람이 있지만, 제게는 그 ‘5천 원짜리 똥고양이’를 살리는 게 중요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고단했던 20대를 나나와 함께 보냈고, 나나가 큰 위로를 줬기 때문이에요. 모든 소중한 것의 의미는 상대적인 거예요.”


이경미가 그런 소중한 마음을 담아 나나를 캔버스에 그리기 시작하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품종고양이도 아닌 흔한 토종 고양이를 왜 그리느냐는 사람, 물감이 아깝다는 사람 등 다양했다. 하지만 이경미는 그런 반응을 접하면서 더욱 더 고양이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낯설어한다는 건, 저처럼 ‘비싼 물감 들여 고양이로 큰 화면을 채우는 짓’을 해본 사람이 지금까지 없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그림일 테니까요.”

 

 

한데 아픈 고양이와의 인연은 나나로만 그치지 않았다. 2004년 둘째로 들인 랑켄은 원래 이경미의 친구가 키우려던 고양이였다. 하지만 고양이가 생후 1개월 되던 무렵 목뼈가 부러지고 두개골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하자 친구는 키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랑켄은 그 상태로 뼈가 굳어 지금도 목을 15도쯤 기울이고 다닌다.   


“제가 나나를 키우고 그리는 걸 보면서, 주변에서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랑켄도 그중 하나였어요. 한데 사고가 생기면서 결국 친구가 랑켄을 포기한 거예요. 사람들이 품종고양이에게 기대하는 어떤 기대치가 있는데, 그걸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안락사 될 뻔했나 봐요. 결국 제가 1년 동안 데리고 있다가, 키우게 됐죠. 이름도 두개골에 상처가 있는 ‘프랑켄슈타인’에서 착안해서  ‘랑켄’이라고 지어주었어요.”

랑켄과 함께한 이경미 작가. 어릴 때 목과 머리를 다친 탓에 뼈가 잘못 붙어, 늘 저렇게 한쪽으로 목이 기운다. 

처음에는 성격 까칠한 나나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없었지만, 랑켄이 떠돌이가 되거나 안락사를 당하는 걸 볼 수는 없었다. 마음의 부담을 안고 데려왔지만 ‘개냥이’(개처럼 인간을 잘 따르는 성격의 고양이)라 부를 만큼 사람을 잘 따르는 랑켄은 금세 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래도 좀 더 정이 가는 쪽은 역시 나나다. 
“나나가 까칠하기는 하지만, 첫째의 정이란 게  있거든요.”

 


고통도 행복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이경미는 호기심 어린 고양이의 눈망울에 초월을 향한 갈망을 담고, 말없이 다정하게 위로하는 치유자의 역할을 부여한다. 고양이가 유한한 세상의 인간을 상징한다면, 그 고양이가 발 딛고 선 바다와 우주는 인간이 한없이 작아지는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세계를 상징한다. 이경미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크게 느껴지는 고통도, 거대한 인생의 흐름 속에서 보면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상대성의 원리를 믿는다.

“사물을 관찰하고, 공간이나 시간이 어떻게 변하는가 보는 걸 좋아해요. 파도, 구름, 지형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들…. 특히 바다는 저를 압도하는 면이 있어요. 오랜 시간 동안 원시 상태를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거친 움직임이 있으면서 때론 평온해지는 모습이 인생과 닮았어요.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이게 나한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저 파도처럼 어느 순간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어요. 좋은 일이 있어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교만하지 않으려 해요.” 

 

 
일상의 소중함을 수집하는 화가

작가는 부서졌나 싶다가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거센 바람에 흔들리다가도 다시 평온해지는 파도 속에 마음을 누이고 안정을 찾는다. 그렇기에 마음을 의탁할 파도를 방 안으로, 건물 속으로, 책상 위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자신에게 소중한 의미를 지닌 수집품들을 그림 속에 겹겹이 숨겨둔다. 누군가는 그 요소들을 단순히 장식적인 것으로 치부하겠지만, 그에게는 나름의 의미가 담긴 것들이다.

 


“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건, 소중한 순간을 수집한다는 의미예요. 사람들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수집한다면, 저는 ‘긍정적 가치’를 수집하죠. 나를 감싸주는 가치, 나를 위로하는 고양이, 매일매일 사랑할 가족들… 그런 일상의 소중함을요. 그림 속의 세계지도를 보세요. 이 지도 위에서 엄청난 일이 많이 일어났지만, 정작 우리가 그 위에서 찾아야할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의미 있는 가치인 거죠.”


그렇게 일상의 소중함을 수집하는 이경미는 오늘도 고양이를 그린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소설 《파랑새》에서 행복을 상징하는 파랑새가 멀리 있지 않았듯, 그에게 삶의 가치를 상징하는 동물은 바로 곁에 있는 고양이다. 그와 함께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남은 생을 함께 할 고양이들이, 그에게는 창작의 영감을 제공하고 호기심의 문을 열어줄 소중한 파랑새인 셈이다. 

작가가 만든 '나나쨈' 시리즈 중 작업실에 남아있는 세 점의 작품. 세 개 모두 손바닥에 가뿐히 올라갈 만큼 작고 앙증맞다. 작가는 일상의 오브제에 그림을 그림으로써, '소중한 대상을 수집한다'는 개념을 부여한다.

이경미의 이번 전시는 오는 10월 7일(화)까지 열린다. 청담역 9번 출구에서 도보 15분 정도 걷다가  횡단보도를 건너 좀 더 올라가면, 그 길 방향으로 오페라 갤러리가 보이는데 이 건물 지하 1층에 표갤러리가 있다. 찾아가는 길 문의는 표갤러리(02-511-5295)


* 전시 전경

 

[문화와 나 | 2007년 가을호]

 “저는 버려짐으로써 사랑을 얻은 존재이니, 버려진 것들의 원과 혼을 이끄는 이가 되겠나이다.”

김선우 시인을 만나러 강원도 원주로 가는 길에, 그가 고쳐 쓴 전래 설화 바리공주의 한 대목을 되짚는다. 핏덩이 때 자신을 버린 아비에게 피로 복수하기는커녕, 그 아비 목숨을 구하고자 저승길 떠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여인, 바리공주가 시인의 몸속에 스며든다. 그의 넋을 입은 시인이 닫힌 입술을 천천히 연다. 생명을 낳고 거두는 모태신의 자궁처럼 아득히 벌어졌다 닫히는 입술로, 아프고 슬프고 괴로운 세상의 모든 혼을 위무하는 노래를 읊는다.


김선우는 2007년 7월 펴낸 세 번째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에서 피 흘리며 죽어간 망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가 조심스레 골라낸 시어를 넋대 삼아 내밀 때, 그 넋대를 타고 파르르 흔들며 이승으로 소환된 망자들이 고통스런 기억을 토해낸다. 온몸에 폭탄을 두르고 적을 향해 뛰어든 팔레스타인 아이들,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가 생지옥을 겪은 열네 살 순애, 세상 구경 한번 해 보지도 못하고 파묻힌 어린 생명들…. 만신이 된 바리공주가 구천을 떠도는 넋을 건져내듯, 시인은 망자들을 위한 천도제를 연다.


관능과 죽음의 이중주

그가 첫 시집에서 보여 준 도발적이면서 건강한 관능미의 세계는 새 시집에서도 여전하지만, 그 사이사이 섬처럼 끼어든 일련의 시들은 다소 낯설기까지 하다. 그러나 기실 그의 시에 녹아든 타자에 대한 시선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대학 시절 학생 운동에 뛰어들어 가투 시를 쓰던 무렵, 이미 그 싹은 시작됐다.


“대학을 들어가서 광주 민주화운동 사진전을 처음으로 봤죠. 담장에 걸린 사진들을 보면서, 내가 전혀 몰랐지만 존재했던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급속도로 운동권 학생이 되기 시작했죠. 그때의 경험이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는데, 덕분에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의 의미를 고민하게 됐어요.”


김선우는 뜻 맞는 학생들과 함께 학생 운동 동아리를 조직해서 시를 썼다. 좋은 혁명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있어도, 시인으로 살겠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때였다. 하지만 학생 운동을 하던 시절에도 그의 시에서는 민중문학 특유의 투박하고 날선 언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순수 문학 동아리보다 더 치열한 의식을 담아내되, 시로 표현되는 언어는 그들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시어로서의 밀도가 있어야 한다는 자의식이 강했어요. 거친 언어로 일관하다 정작 메시지 전달에는 실패한 1980년대 민중 문학의 오류를 답습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가 학생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사회주의 이념이 몰락하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1992년 대학을 졸업할 때는 노동 현장과의 끈도 대부분 끊어져, 현장 활동을 할 길도 없었다. 절실했던 믿음의 대상이 갑자기 사라지자, 그의 마음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모든 상황이 완벽하리만큼 절망적이어서 살아야겠다는 의지조차 사라졌다. 하루는 출가를 생각했고, 그 다음날은 자살을 꿈꾸며 3년을 방황했다. 달리는 기차나 버스를 보면 무조건 올라타야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불안했던 20대 중반, 잠시 몸을 쉬러 간 운문사에서 그는 불현듯 시인이 되리라 결심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돌이켜보면, 시가 나를 살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뒤로는 2년 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습작을 했다. 하루에 두어 시간만 자면서 시를 썼고, 시를 쓰면서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돈만 벌었다. 그리고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10편의 시를 게재하며 등단했다.


시, 산문, 소설을 넘나드는 ‘전업 글쟁이’로 살기 

등단한 지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긴 요즘, 김선우는 세 번째 시집 첫머리에 중대 발표를 했다. 앞으로 청탁 받아 쓰는 시는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 지난 10년 동안 써 온 것과는 다른 형식의 발화법을 시도하고 싶다. 오래오래 그의 머릿속에서 무르익어 변화되는 시들이 새로운 언어의 옷을 입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가 필요할 것이다. 그가 완벽하게 홀로 창작하는 시간을 갈망하는 것도 그래서다. 


“산문은 어떻게든 마감 기한에 맞춰 보낼 수 있지만, 시에 마감 기한이 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거예요. 기한에 맞춰 시를 써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내 속에서 뭔가 충분히 고이고 쌓였을 때 꺼내놓는 시와, 마감에 쫓겨 억지로 끄집어내는 시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 다른 직업을 갖지 않는 대신, 김선우는 전업 시인으로 살기 위해 스스로 ‘전업 글쟁이’라 부를 만큼 다양한 글을 썼다. 산문을 쓰는 일이 생계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시와 산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삶을 다룬 시나리오를 쓰다가, 예상 외로 많은 시나리오의 제약조건에 갑갑증을 느껴 소설 쓰기에 도전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갈무리한 기초 자료를 토대로 올 4월부터 구상에 들어갔고,  8월까지 초고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누구나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기에 그만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최승희의 이야기지만, 흔한 전기 소설이 아니라, 전혀 새롭고 낯선 소설로 재구성해볼 생각이다.


“소설 쓰면서 생활 리듬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새벽 6시에 잠들었다가 오후 2시쯤 일어나요. 시는 새벽에 몰아 쓰는 게 가능한데, 소설은 정말 체력 싸움이네요.”


8월 말에는 지난 10년간 각종 지면에 쓴 칼럼 모음집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지면에 연재한 시를 모아 출간할 예정이다. 김선우의 새 책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올 가을은 풍성한 계절이 될 듯하다.


상처를 보듬는 몸과 몸

‘아무도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는 말이 문학계 곳곳에서 비명처럼 들려온다. 하지만 김선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글을 쓴다. 기도하듯 시를 쓰고, 밥을 먹듯 산문을 쓰고, 이따금 간식 먹듯 소설을 쓴다. 시를 쓰는 일이 그에게는 삶이고, 치유다.

“산다는 건 세상에서 부대끼며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는 일이에요. 하지만 문학은 그런 상처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요. 문학은 우리 영혼의 음식 중에서도 가장 질 좋은 음식 중 하나거든요.”


일상의 사물에서 글감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사랑할 구석을 찾아내는 시인의 섬세한 눈길은 따뜻하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대상과 연애하는 일이니, 사랑하지 않고서 좋은 글이 나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푹 자고 일어나 눈뜬 후에 내가 보는 건, 먹는 것, 만지는 것…. 그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진리가 있어요. 멀리서 찾을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내 속에 다 있거든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눈앞에 보이는 것, 경험하는 것들로부터 글의 영감이 찾아와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이 소중하다는 걸 잊고 살죠.”


김선우가 정제한 시어를 통해 그려낸 풍경은 그 어떤 것보다 생명 살림의 의지가 우선시되는 세계다. 파괴와 약탈, 살육의 그림자가 넘실대는 세상에서 뭇 생명의 숨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은, 몸과 몸의 연대에 있다. 김선우는 그 연대의 힘 역시 사랑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죽어가는 생명이 있을 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마음, 상처 입고 아파하는 것들을 보듬어 되살리려는 마음이 세상을 구원하는 힘의 가장 큰 원천인 것이다.


“'내 몸에서 태어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생명은 살려야 한다'는 본능적 자각이, 결국 내 몸 아닌 다른 몸도 살려 내게 하잖아요? 몸과 몸이 서로를 보살피고 서로의 상처에 손 내미는, 그런 연대가 없다면 지구의 생체 시계도 머지않아 멈추고 말 거예요.”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를 일어설 무렵, 시인이 먼저 작고 가벼운 손을 내밀어 작별인사를 건넨다. 그의 산문집에서 읽었던 한 구절, “악수를 좋아한다”던 문장이 떠올랐다. 악수를 건네면서 그가 마음속으로 ‘힘내요’ 하고 속삭인다는 것도.
어쩌면 그가 누군가와 악수를 나누는 건, 손금처럼 서로에게 뚜렷이 새겨진 상처를 모른 척 보듬는 행동이 아닐까.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생명을 노래부를 때 그러하듯이, 조심스럽게. 그 부드럽고 따뜻한 힘에 김선우 시의 핵심이 있다.


김선우 | 시인. 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강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로 등단했으며,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2000), 《도화 아래 잠들다》(2003),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2007)를 펴냈다. 이밖에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2002), 《김선우의 사물들》(2005),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2007), 동화집 《바리공주》(2003)가 있다. 현재 시힘 동인, 실천문학 편집위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