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관련된 작가분의 인터뷰를 갔다가, 고양이 초상화가


있다고 해서 보여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마침 책상 위로

폴짝 뛰어올라온 녀석이 있어서, 초상화를 슬쩍 디밀어 봅니다.

바닥에 놓으면 보기 불편할 것 같아서 세워줬더니 물끄러미 봅니다.

고양이가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친 주변 모습을 인식하는 것을 본

경험이 있는지라, 초상화를 보는 고양이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그림 속 자기 얼굴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는데 거울 보듯 가만히 보고만 있네요.
 
 
'다른 고양이들의 초상화는 모델과 많이 닮았지만 그 그림은

모델과 조금 안 닮았다'고 하는 작가분의 그림 설명을 듣는데,

갑자기 고양이가 샐쭉한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립니다.

'아니, 그럼 나만 안 닮게 그려줬다는 거야?' 하고

삐친 것 같아 귀여웠어요. 제 눈에는 많이 닮은 것 같은데,

지금보다 약간 더 어릴 때 그린 그림이라, 그때의 모습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어요.


인터뷰한 고양이의 인상착의와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 마지막에

모아놓고 찍은 사진인데, 각각의 고양이 특성이
잘 드러나 재미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스밀라의 초상사진은 수없이 찍어줬어도, 정작

초상화는 그려주지 않았네요. 미대생이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초상화 그려달라는 말이라는데^^; 학생 시절엔 그런 부탁을 받으면

부담스럽기도 하고 멋쩍기만 했는데, 그림을 놓은 지 오래됐지만

이렇게 고양이 초상화를 보니 갑자기 스밀라 그림이 그리고 싶어집니다. 

'그리다'의 어원이 '그리워하다'에서 온 거라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그리는 그림이라면 흡족하게

완성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소심한 길고양이와 눈을 맞출 기회란 드물다. 한밤중에 짝을 찾아 헤매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거나, 옆구리가 터진 채 널브러진 쓰레기 봉투를 목격하고서야 그들이 가까이 있음을 알 뿐이다. 이 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길고양이가 살고 있을까? 인간을 피해 숨던 길고양이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선다면 어떤 모습일까?


내가 상상으로만 그려보았던 순간을, 김경화는 대규모 설치작업으로 구현해낸다. 전시장 바닥에 머무는 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는지 계단, 담벼락, 심지어 뒤뜰까지 차지한 길고양이와 비둘기의 기세는 압도적이다. 혹시 발로 건드릴까 싶어 조심조심 아래를 살피며 걷다 보면, 조각 사이로 지뢰처럼 촘촘히 심어둔 작가의 의중이 밟힌다.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의 동물들과 가까이 마주할 때, 내가 발 딛고 선 땅에 인간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는 작가가 수많은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우리 곁으로 불러낼 때 의도했던 효과이기도 하다.

한번 전시를 열 때마다 적게는 수십 마리, 많게는 수백 마리의 동물 조각을 선보이지만,  극적인 효과를 낼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선보이고 싶다. 2008년 대안공간 반디에서 열린 개인전 <굿모닝>에서는 전시장 뒤뜰에 무려 길고양이 100마리와 비둘기 200마리를 설치했다. 김경화의 조각은 좌대에 올라 있을 때보다 바닥에 놓일 때, 전시장 안에 있을 때보다 거리로 우르르 몰려나왔을 때 생생한 생명력을 얻는다.
 
김경화는 부산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의 1기 입주 작가로 있다. 여러 작가와 한 건물을 쓰지만, 2층 창가에 놓인 길고양이와 비둘기 덕분에 그의 작업공간이 어딘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지금은 사람이 도시를 점령했지만, 원래는 동물들이 먼저 여기 살고 있었잖아요. 숨어서 안 보이는 것뿐이지. 만약 그들이 다 세상 밖으로 나온다면 정말 많을 것 같아요. 그런 존재감을 전할 수 있게 최대한 많이 만들고 싶어요.” 

모든 것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볼 뿐,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외면해버린다. 보이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고, 존재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애써 고민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나 김경화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내세우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끔 한다. 웅성웅성 모여든 동물들을 보며 “어, 쟤들이 왜 저기 있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하고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일, 무심코 지나치던 일에 질문하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므로. 


“시멘트를 굳혀 보면 표면이 거칠게도 나왔다가, 어떤 때는 되게 매끈하게도 나오고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런 흔적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려 한 건 아니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면 자연스럽게 놔두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고양이의 상처 많은 모습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작가는 자신이 만든 시멘트 고양이가 예쁘장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기보다는, 거리에서 마주친 길고양이처럼 오랜 시간을 견디며 세월의 때가 묻은 모습이길 바랐다. 그러나 속성 건축자재인 시멘트로는 아무리 오래 비바람을 맞히고 햇빛에 노출시켜도 새 것에서 느껴지는 ‘쌩한 느낌’이 났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재개발 지역의 허물어진 건물에서 나온 폐콘크리트를 넣기 시작했어요. 버려진 콘크리트에는 그 건물이 견뎌 온 몇 십 년이란 시간이 들어 있잖아요. 제가 인위적으로 조각에 담으려 했던 몇 개월 혹은 1년, 이런 시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긴 시간이죠. 그걸 넣어 만들면 자연스럽게 시간이란 요소가 들어갈 거라 생각했어요.”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쓰고, 리어카 끌고 공사장을 다니면서 버려진 콘크리트 조각을 모았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공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악구에는 그가 찾던 시간의 조각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와 작업할 때는 집 근처 연지동 재개발 지역에서 콘크리트 조각을 주워 담았다. 덕분에 시멘트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시간을 담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김경화의 작품 속에서 낡고 오래된 건물의 파편은 더 이상 폐자재가 아니다. 조각 하나하나마다 생명을 불어넣어줄, 돌로 만든 심장이다. 재개발로 부서지기 전에 그 건물에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 한 조각, 오래된 기억이 그 심장 속에 잠들어 있다. 작가가 시멘트 동물들에게 불어넣길 바랐던 시간이, 몰드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시멘트와 함께 스며든다.

햇볕과 얼음, 바람과 시간이 만들어낸 얼룩이 딱딱하게 굳은 시멘트 살갗 위로 켜켜이 내려앉는다. 그렇게 긴 시간을 견뎌낸 길고양이와 비둘기가 무리지어 선 사이로 걸어보는 일은, 기이하면서도 강렬한 체험이다.


인간에겐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는 건 당연하지만,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길고양이와 비둘기에겐 내일이란 ‘영영 오지 않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매일 아침 무심코 던지는 “굿모닝!”이란 인사가, 거리의 동물들에겐 절박한 생존 확인이다. 그래서 김경화는 거리의 동물들이 무사히 내일을 맞이하도록, 작품을 통해 염원 섞인 인사를 건넨다.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또한 자신의 자소상이기도 한 그들을 향해서. 굿모닝! 부디, 매일 아침 당신들이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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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주말에 글을 못 올렸네요. 마음 추스르고 새롭게 시작합니다. 걱정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가끔 물건들이 사라진다. 대개 볼펜이나 머리핀, 열쇠처럼 소소한 물건들이다. 집 한구석에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물건이 사라지는 구멍이라도 있는 걸까. 한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물건들을 내가 잃어버린 게 아니라면, 혹시

누군가 숨긴 거라면? 화가 신선미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와 고양이의 눈에만 보이는 장난꾸러기 ‘개미요정’을

상상하고, 이들이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유머러스한 이야기 그림으로 풀어낸다.  


건망증과 상상력의 유쾌한 결합

어려서부터 수차례 지적받고 신경 쓴 탓에 지금은 좋아졌지만, 작가는 한때 ‘나사 하나 빼놓고 다니는 사람 같다’는

말을 들을 만큼 건망증이 심했다. 툭하면 물건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는데, 그는 그때마다 건망증을 탓하는 대신,

물건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이유를 맘대로 상상하곤 했다. 호기심이 넘쳐 인간의 물건을 탐내고 엉뚱한 사건을 벌이는

개미요정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증발>(2007) 

“어렸을 때 제가 호기심도 좀 많고 엉뚱했어요. 꿈을 꾸다 일어나면 ‘아, 꿈이었구나’ 하고 생각해야 하는데,

전 현실과 혼동하는 거예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그 순간에 뭔가 본 것 같다고 말하면, 이상한 소리 한다고

꾸중도 들었죠. 그땐 어른들 말씀에 수긍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인간이 모르는

존재가 있지 않을까, 그때 본 것도 어쩌면 진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어린 시절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살짝 얼굴을 비쳤던 존재들이 그림에 등장한 계기는 ‘작업실 과자 실종사건’이었다.

그는 2006년경 개인전에 낼 그림을 준비하다 작업실에 과자를 조금 남겨둔 채 자리를 떴다. 한데 다음날 보니

과자가 감쪽같이 사라진 게 아닌가? 결혼 전 작업실에서 혼자 지내던 무렵이라 자신 말고는 먹을 사람이 없었기에

화들짝 놀랐다. 건망증 탓에 기억을 못한 건지, 작업실에 개미가 있었는데 그 녀석들 짓인지, 그것도 아니면 혹시

어렸을 적 보았던 정체불명 존재들이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원대 인물화가 임인발(任仁發: 1255~1328)의

그림 한 점이 머리를 스쳤다.



사라지는 과자와 음료수, 범인은 개미요정?

중국회화사를 공부하면서 임인발의 <장과견명황도>(張果見明皇圖)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당 현종 앞에 나아간

도사가 도술을 펼치는 장면인데, 그의 모자함에서 인형처럼 작은 노새가 나와서 돌아다니는 그림이 무척 정교하고

재미있었죠. 그 그림에 힘입어서 저도 상상 속에만 간직했던 개미요정을 그림에 등장시켜 봤어요. <건망증>에 등장하는
 
복주머니는 작업실에 두었던 과자봉지에서 착안한 거예요. 과자를 물고 가는 개미를 상상하면서, 장신구를 가져가는

개미요정을 그린 거죠.”  



<건망증>(2007)

작가에 따르면, 개미요정들은 순수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되찾아주는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신선미의

그림 속 여인들은 대부분 깊은 잠에 빠져 있어 개미요정의 활약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증발해 줄어든 주스를 보고

의아해하거나, 사라진 물건을 찾아 온 집안을 뒤질 때도 그것이 개미요정의 소행일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한다.

심지어 깨어있을 때도 개미요정을 보지 못하는 건, 그들이 이미 상상의 세계로 가는 문을 닫아버린 어른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부분, 2008)


한데 어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개미요정도 고양이의 날카로운 눈은 피할 수 없다. 고양이는 인간에게 없는 육감을

동원해 개미요정을 찾아내고, 고양이와 딱 마주친 개미요정은 혼비백산 달아난다. 개미요정이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증이 굳혀지는 건, 고양이가 가끔 벽 구석이나 침대 밑 으슥한 곳을 빤히 볼 때다. 아무 것도 없는 곳을 인내심 있게

바라보는 고양이는 집요하다. 그러다 갑자기 거실 끝에서 끝까지 내달리곤 하는데, 신선미의 그림을 보노라면

고양이의 느닷없는 ‘우다다 질주’도 개미요정 때문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고양이의 이해할 수 없는 질주 본능을

그만큼 절묘하게 담아낸 것이다.

 


<후>(2007). 쫓고 쫓기는 개미요정과 고양이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장난꾸러기 고양이의 깜찍한 매력

“고양이가 사람을 경계하는 몸짓 있잖아요. 몸을 바짝 세운다고 그러나? 앙칼진 그 모습이 왜 그리 귀여운지 모르겠어요.

온순한 고양이보다는 튕기는 듯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요. 얌체 같고 때론 요염한 눈빛으로 ‘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칠까?’

하며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고양이의 매력이죠.”

예측불허 고양이를 모델로 삼다 보니 잊지 못할 소동도 잦았다. 대학교 2학년 때 작업실에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며

모델 삼아 그림을 그렸는데, 귀여운 건 그냥 못 넘기는 작가는 고양이와 함께 놀다 곰팡이성 피부병이 옮기도 했다.

하필이면 고양이와 똑같은 자리에 피부병이 생겨서 놀림도 받았단다.


 고양이가 먹물 묻은 발로 사방에 발 도장을 찍으며 달아나는 <천적>이란 그림도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고양이 그림을 완성한 뒤에 바닥에 말려놓고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그 사이 작업실 고양이가 그림마다 발 도장을 꾹꾹

찍어버린 것. 게다가 유독 신선미의 그림에는 먹물까지 엎었다. 친구들은 교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점수를 받았지만,

그의 그림은 먹물투성이가 되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했다.

“고양이가 좋아서 많이 귀찮게 굴었는데 그게 싫었나 봐요. 저만 보면 등을 세우면서 경계하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싸우기도 많이 싸웠네요.  ‘잡히기만 해봐라’ 하고 쫓아다니다 오히려 고양이에게 골탕먹은 적도 많았어요.

그래도 정이 들었는지, 그때 달아났던 고양이는 잘 지낼까 궁금하고 가끔 생각나요.”


고양이 때문에 그림을 망쳤던 기억도 돌아보면 즐거운 추억이다.



그림 속 고양이의 생생한 표정과 몸짓을 보면 지금도 여러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살 것 같은데, 정식으로 고양이를 키운 적은

없단다. 다만 결혼하기 전에 살던 본가 앞 창고가 길고양이 아지트여서 종종 밥도 챙겨주며 데려다 관찰하곤 했다.

집고양이를 그렸지만 표정이나 몸짓에 길고양이의 자유분방함과 거침없는 매력이 담긴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복 입은 여인이 등장하고 섬세한 문양 묘사가 도드라지는 화풍 때문에 초기에는 ‘달력 그림’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신선미는 그림에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담아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액자소설처럼 그림과 그림이 순환관계를 맺으며

이어지는 ‘그림 속 그림 이야기’ 시리즈, 환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결합한 ‘개미요정 이야기’ 시리즈는 대표적 사례다.

또한 휴대폰이나 주스 컵 등 현대적인 소품을 그려 넣어 소소한 파격을 부여했다. 옛 그림에 등장하는 소품들이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전통적인 물건으로 보일지라도 당대에는 유행품이었던 것처럼,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앞으로도 지나치지 않은 선에서 재미와 의미가 담긴 소품들을 숨은그림찾기처럼 그려 넣어볼 생각이다.   


일기 쓰듯 섬세하게 그려낸 소소한 일상  

“저는 그림일기처럼 제 경험을 담은 그림을 그려요.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이 다 좋은 그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임신했을 때는 태교를 위한 그림도 그렸으니까, 나이를 먹는다면 노인이 된 제 모습도 등장할 거 같아요. 어렸을 때

엉뚱한 상상을 했던 제가 그림 속 댕기머리 소녀가 되어 개미요정을 본 것처럼, 할머니가 개미요정의 존재를 느끼는

모습을 그린 건 그런 이유에서예요. 흔히 치매라 부르는 현상도, 실은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간 게 아닐까요?” 
 

 


트레팔지에 그린 밑그림을 세워놓고, 어색한 부분은 세부 묘사를 추가한다.


신선미의 활동 분야는 순수회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가 그린 황석영 소설 《바리데기》(창비)의 표지 그림은

여리면서도 당찬 소녀가 역경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현대적 바리’의 상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바리데기》

표지 작업 이후 책 출간이나 포스터 작업도 여러 차례 의뢰받았다. 임신과 입덧 때문에 힘겨워 대부분 고사했지만,

이제 아들 승빈이도 태어나고 여유도 생긴 만큼 출판 작업도 도전해볼 생각이란다. 오는 9월에는 갤러리

선컨템포러리에서 개인전도 예정되어 있다. 고양이처럼 앙큼상큼한 매력을 담은 그의 신작을 기대해본다.


황석영 소설 《바리데기》의 표지그림. 청순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간직한 소설 속 바리의 모습이 생생히 재현됐다.

한중일 삼국의 다도 문화와 전통 복식을 담은 작품과 신선미 작가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고양이는 한바탕 소란을 벌이고

달아나, 작가의 품에 쏙 안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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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고양이3] 길고양이 찍는 남자, '찰카기' 아저씨를 만나다

매일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한겨레신문 봉천지국장 김하연(40)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새벽마다 봉천동 250여 가구에 신문을 돌리는 게 그의 일이다. 밤낮이 뒤바뀐 생활은 고단하지만,  골목 어귀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길고양이를 생각하면 다음날 또 다시 새벽 거리로 나설 힘을 얻는다. 길고양이를 돌보며 사진 찍는 생활사진가 ‘찰카기’-김하연 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새벽 6시,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낙성대역에서 김하연 씨를 만났다. 오토바이를 타고 길고양이 밥 주는 곳까지 갈 거라고 했다. 그는 고 3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신문을 돌렸고, 대학을 졸업한 뒤 한동안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다시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았다. 새벽마다 그와 함께 달렸을 오토바이는, 높아졌다 낮아지는 봉천동 골목의 굴곡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파도처럼 출렁인다.

어느 빌라 앞에 오토바이가 멈추자 후다닥, 작은 동물이 달아나는 소리가 들린다. 김하연 씨가 밥을 챙겨주는 길고양이들이다. 빌라 근처 길고양이들은 익숙한 사람에게만 경계심을 푼다. 그래서 김하연 씨는 7년째 같은 방한파카를 입고 신문배달을 한다. 고양이들이 그 옷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희미한 조명등 아래, 말없이 올려다보는 고양이와 사진 찍는 김하연 씨 사이에 따스한 교감이 흐른다.


새벽 거리에서 만난 길고양이를 찍는 김하연 씨, 어느새 고양이와 친구가 된다.

또 다른 장소에서 밥을 기다릴 고양이를 찾아 오토바이로 달리는 동안 날이 밝는다. 놀이터 인근에 멈춘 순간, 김하연 씨를 기다리던 길고양이 서너 마리가 반갑게 뛰어온다. 강아지처럼 살가운 모습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묻어난다. 서로 인연을 쌓아온 시간만큼 다져진 믿음이다. 동네 길고양이들의 아침밥을 챙기다보면 사료비로 한 달에 5만 원 정도가 든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그는 “이게 제 담뱃값이에요” 한다. 한 달 치 담배 살 돈, 혹은 친구들과 술 한번 마시면 써버릴 돈을, 대신 길고양이 모델료로 쓰는 것뿐이란다.

어지간한 취객조차 집으로 찾아들었을 새벽 시간, 고양이는 텅 빈 도시를 활보하며 짧은 평안을 누린다. 김하연 씨의 카메라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들의 삶을 느릿느릿 차분한 속도로 뒤쫓는다.

“새벽에 만난 고양이들은 ‘내가 이 도시의 주인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낮에 만나는 고양이들과는 느낌이 확실히 달라요. 더부살이를 한다는 느낌이 없어요.”  

김하연 씨는 주변이 어두워도 플래시를 쓰지 않는다. 인공 조명은 새벽 거리의 다양한 빛깔을 순식간에 지워버린다. 새벽빛에도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 날이 밝기 전 하늘을 가득 메운 짙은 남색, 가로등에서 떨어지는 나트륨등의 노란색, 잠들지 못한 누군가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잡다한 색…. 새벽 거리를 걷는 길고양이가 의지하는 희미한 빛 속에, 그들의 고단한 삶이 녹아있다.  


도로 위의 고양이 ⓒ김하연  


아기 고양이의 새벽 산책 ⓒ김하연  

김하연 씨가 길고양이들의 사진에 담아내는 마음은 생명에 대한 연민이다. 평소 돌보던 고양이의 죽음을 목도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준비 없는 이별은 마음에 묵직한 슬픔을 남긴다. 그의 오토바이 한구석에는 늘 검은 대형 비닐봉투가 있다. 배달하며 오가는 길에 죽은 길고양이를 발견하면 일단 봉투에 담았다가, 일이 끝나면 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 묻어준다. 다시 태어났을 때는 나무로 태어나라고. 험한 세상 견디며 그늘진 곳에서만 사느라 힘들었으니, 이제 햇살 받으며 푸른 잎으로 피어나라고.

“죽은 고양이를 그대로 두면 쓰레기차가 수거해가거나, 바퀴에 짓눌려 형체도 찾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수습해주고 싶었어요. 생명이란 건 인간이나 고양이나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생명은 죽으면 땅으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얘는 가족이 없으니까 나라도 묻어주고 싶은 거죠.”

그가 그렇게 수습해준 길고양이만 스무 마리가 넘는다. 김하연 씨의 카메라는 차갑게 식어버린 채 ‘산업폐기물’ 취급을 받게 될 고양이의 죽음도 외면하지 않는다.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라 믿기에 외면하지 않는다. 그렇게 찍은 고양이들의 모습은 ‘작별’이라는 연작으로 남았다.  

김하연 씨가 처음부터 길고양이를 찍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결혼할 때 혼수품으로 소니 707 디지털카메라를 샀지만,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더 이상 카메라를 쓸 일이 없었다. 소니707은 곧 장롱카메라 신세로 전락했다. 하지만 2003년 사진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매일 200장씩 찍어보라는 선배의 조언에 풍경을 찍고, 하늘을 찍고, 꽃을 찍었다. 그러다 나만의 주제가 없다는 생각에 답답함을 느낄 무렵, 새벽 거리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텅 빈 도시를 지키는 건 고양이다. ⓒ김하연   

“아마추어 작가들이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가 와요. 사람을 한번 찍어보려고 하면 찍지 말라 그러지, 새로운 것은 찍어야겠지. 그래서 출사를 다니고 이것저것 찍게 되죠. 저는 2006년 사진가 최광호 선생님이 주관하는 1019사진상을 받으면서 연작 개념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새벽 신문배달을 하다 만나는 취객들을 찍은 ‘해프닝’ 연작이었죠.”


‘1019사진상’의 부상으로 받은 낙관. 주제의식을 갖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자기 이름을 새긴 낙관을 포트폴리오 공모전의 부상으로 받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업 중에 짬짬이 사진을 찍지만, 자신만의 시각을 담은 작품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생활 터전인 새벽 거리로 눈을 돌리자, 또 다른 피사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게 바로 길고양이였다. 2005년 말부터 관심을 갖고 그들을 찍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찍은 건 2006년 여름께였다. 그렇게 길에서 만난 길고양이의 사진을 모아 2007년 11월 <고양이는 고양이다> 사진전을 열었다.


고양이 형제. 서로 의지하는 듯한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김하연

“전시 제목을 정할 때도 한참 고민했어요. ‘외로우니까 고양이다’, ‘고양이는 외로운 사냥꾼’, 고양이의 낭만, 도둑, 외출, 길 등…. 여러 가지 키워드를 놓고 고민했는데, 이거다 싶은 게 없는 거예요. 그런데 무심결에 ‘cat is cat’하고 써보니까 이거다 싶었어요.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건, 고양이는 제 습성대로 살아가잖아요.”

김하연 씨는 고양이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도시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으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늘 아름답지만은 않듯이, 그가 찍는 길고양이도 때론 외롭고, 아프고, 슬프다. 그 사진들은 조용히 마음을 움직여, 우리보다 낮은 곳에 소리 없이 살아가는 생명이 있음을 일깨운다.  


길냥이의 겨울나기. 가족만큼 큰 힘이 되는 존재는 없다. ⓒ김하연

그가 사진을 통해 표현하는 건 ‘도시에서 살아가기’란 어떤 일인지에 대한 관점이다. 2008년 봄, 사단법인 문화우리에서 주관한 도시경관기록프로젝트 기록봉사자로 참여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그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경탄하는 풍경이나 예쁜 피사체를 찍는 대신,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에 눈을 돌린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소중한 대상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2008년 국제적 사진그룹 매그넘에서 주관한 사진공모전 대상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가 찍은 건 ‘옥상정원’. 공모전 마감 전날 그의 집 옥상에서 찍은 풍경이다. 봉천동 어느 주택 옥상에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가 서 있다. 사진 속에선 보이지 않는 아주머니의 시선이 닿은 곳은 멀리 보이는 도심의 번화가 쪽이다. 아주머니가 발 딛고 선 회색빛 옥상 풍경은, 멀리 보이는 화려한 빌딩의 바다를 표류하는 초라한 뗏목 같다. 화려한 색으로 무장한 것도 아니고, 기기묘묘한 구도를 보여주는 사진도 아니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그의 사진에 담긴 담담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읽어,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누우면 그곳이 쉼터. ⓒ김하연  

사진 전공자도 아닌 보통사람이 자신의 사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길은 공모전밖에 없기에, 그도 상을 받으면 힘이 난다. 그런데 몇 번 상을 받으면 슬슬 ‘헛바람’이 들기 쉽다. 왜 세상이 자신의 작품을 인정해주지 않나 조바심도 내게 된다. 하지만 김하연 씨에겐 그런 헛바람이 스며들 틈이 없다. 사진으로 큰 상을 받았어도, 여전히 신문배달을 하며 틈틈이 사진을 찍을 뿐이다. 여러 공모전에서 지금까지 받은 상금이 1700만 원가량 되지만, 그런 결과에 들뜨거나 자만하지도 않는다. 시상식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와 여느 때처럼 신문을 돌린다. 생활과 사진이 유리되지 않을 때, 오래 사진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래서 ‘전업사진가’보다는 ‘생활사진가’로 오래 남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김하연 씨는 카메라와 함께 휴대용 소형 프린터를 갖고 다닌다. 거리에서 누군가를 찍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진을 뽑아주기 위해서다. 그에게 사진은 나눔이고 소통이다. 2007년 고양이 사진전을 열었을 때도, 직접 찍은 길고양이 사진을 동봉하고, 겉봉에는 주문제작한 고양이 우표를 붙여 보냈다. 그렇게 정성껏 초대장을 써서 보내면, 전시장에 온 사람들도 방명록에 자기 마음을 진솔하게 써줄 것 같았다. 이름만 남기고 가는 방명록보다 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전시장에 찾아왔던 어느 수녀님께 받은 격려 문자는 휴대폰에 장기 저장해두고 생각날 때마다 열어본다. 묵묵히 길고양이의 삶을 기록해 온 그에게는, 그런 교감의 흔적이 더없이 소중한 보물들이다.


휴대용 프린터를 갖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 바로 건넨다.  


그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길고양이 우표 

“첫 전시에서 작품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얼마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작품을 팔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몇 점을 팔았는데 액자값 말고도 돈이 남아서, 고양이 관련 단체에 보냈어요. 앞으로도 작품을 팔게 되면 길고양이를 구하는 데 쓰고 싶어요.”

김하연 씨는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길고양이 사진전 준비에 바쁘다. 오는 5월 14일부터 20일까지 대학로 ‘갤러리 루’에서 열리는 전시에 낼 사진들은, 모두 6×6인치 정방형으로 트리밍을 할 예정이다. 하셀블라드 같은 중형카메라 포맷이다.

“길고양이들에게 삶이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거란 느낌이 들어요. 단순한 길고양이의 초상사진이 아닌, 정사각형 프레임 속에 갇힌 듯한 고양이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요.”


두려움 반, 호기심 반. 6×6 중형카메라 포맷으로 트리밍했다. ⓒ김하연

그가 앞으로 찍고 싶은 고양이 사진의 폭은 넓다. 낡고 오래된 벽 사진과 길고양이 사진을 합성해서 고대 이집트의 고양이 여신 벽화 같은 느낌을 표현해볼 생각이다. 장기적으로는, 길고양이를 입양해 키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기록사진도 찍어보고 싶다. 길고양이를 입양한 이후 반려인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길고양이는 입양된 뒤에 행복할까, 그런 점이 궁금하다. 이렇게 다양한 길고양이 사진을 통해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나와 가장 가까운 곳, 일상을 구성하는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이다.

“얼마 전에 ‘북극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좋은 반응을 얻었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할 대상은 꼭 멀리 있는 동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변에 사라져가는 생명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싶죠. 누군가 제 고양이 사진을 보면서 짠하다고 느끼거나, 혹은 저 녀석들도 잘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


길고양이 사진을 찍어오면 듀얼모니터로 작업한다.

오는 5월에 열릴 전시에서도 고양이 엽서를 담은 초대장 이벤트를 실시할 예정이라니,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신청해보시길. 김하연 씨의 블로그 ‘찰칵거리는 세상아!’(http://ckfzkrl.egloos.com )에서, 그가 찍은 고양이 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다. 

 



[예술가의 고양이2] 일러스트레이터 마리캣 인터뷰

“달력 80부만 찍고 싶은데요….” 골목 따라 빼곡하게 들어선 인쇄소를 기웃기웃하던 대학생이 어렵게 입을 연다. 하지만 고작 80부란 말에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에 눈물을 삼키며 충무로 인쇄골목을 전전했던 10년 전 그 대학생은, 이제 고양이 달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 ‘마리캣’으로 살고 있다. 매년 출시되는 마리캣 달력과 다이어리를 모으는 마니아층도 생겨났다.

대학생이었던 2000년부터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했으니, 고양이 작가로 나선 것도 올해로 10년째. 대학생 때 중세의 채색 필사본을 보며 섬세한 장식 문양에 매료되었고, 그 문양들은 마리캣의 고양이 그림 속에 하나둘씩 새겨졌다. 동남아시아와 이슬람권 미술에도 관심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동양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이 그림 속에 배어난다. 여행을 다니며 구입한 수집품이나, 현지에서 스케치한 풍경을 보며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마리캣의 출근 시간은 달랑 1초. 침실 문을 열고 세 발짝 걸으면 작업실이다. 침실이 바로 옆에 있지만, 작업실에도 접이식 침대를 따로 두고, 일이 많으면 거기서 쪽잠을 잔다. 집에서 작업실을 운영할 경우 느슨해지기 쉬워, 일부러 작업실과 생활공간을 엄격하게 나눈다.

10년을 내리 고양이 그림만 그렸으니 이제 ‘고양이 그림의 달인, 마리캣 선생’이라 불러도 될 법한데, 그는 손사래를 친다. 아직도 자기 그림을 보면 너무 시원찮아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그래서 본격적인 작품을 하지 않을 때도 틈틈이 손을 풀기 위한 그림을 그린다. 고양이의 역동적인 동세나 특유의 표정 같은, 늘 손이 기억해야 하는 그림들이다.



그가 직접 만든 이면지 크로키북 한쪽 면에는 영어교재가 프린트되어 있다. 크로키북을 사다 쓰면 될 텐데 왜 번거롭게 이면지로 만드는지 물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란다. 이유 치고는 좀 거창하지만, 그는 당연하다는 얼굴이다. 아마존 삼림에서 베어지는 나무를 생각하면, 종이부터 아껴야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색연필도 손톱만큼 작아질 때까지 깍지에 끼워 쓴다. 앙증맞은 꼬마 색연필 중에는 1cm가 간신히 넘을 만큼 작은 것도 있다.

고양이 한 마리만 키워도 날리는 털이 만만치 않은데, 마리캣네 집에는 고양이가 다섯 마리다. 모두 길에서 데려온 업둥이들인데, 그중에서도 올해 11살이 된 첫째 마리에 대한 애착이 가장 깊다. 마리캣이라는 닉네임도, 회사명인 마리캣그래픽스도 모두 마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마리캣은 마리를 ‘내 영혼의 고양이’라 부른다.

못생기고 엉뚱해서 더 사랑스런 고양이

“보고 있어도 자꾸 보고 싶어요. 진짜 이상하죠? 제가 봐도 참 못생겼는데, 무슨 짓을 해도 예쁜 거예요. 성격도 저랑 비슷해요. 예민하고, 신경질 많고, 꼬장꼬장하고.”

마리캣은 최근 1년간 거의 집밖에 나가본 적이 없다. 한때는 날개 달린 고양이의 모험을 그리는데 쓸 배경 자료를 찾아 베네치아로, 앙코르와트로 훌쩍 여행을 떠났지만, . 종교미술에 관심이 많아 중국 실크로드 석굴군을 여행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오래 집을 비워야 하는 해외여행 생각은 아예 접었다. 가끔 경기를 하거나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마리 걱정 때문이다.

“제일 무서운 건, 종이박스 같은 데 올라가 있다가 착지를 못하고 몸이 굳어서 그대로 툭, 떨어지는 거예요. 몇 번을 그래서 너무 놀랐어요. 뻣뻣하게 마비돼서 팔다리도 못 가누고, 그러다가도 멀쩡하게 일어나 돌아다니니…. 마리는 제가 없으면 불안해 해서, 항상 눈에 띄는 데 있어야 해요.”

사람으로 치면 80~90살 할머니뻘인 데다, 최근 친구들이 키우는 고양이가 여럿 세상을 떠난 탓에 더 불안하다. 병원에도 가봤지만, 노환으로 인한 기능장애 탓이라 고치기 어렵다 했다. 애가 타지만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마리와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하루도 떨어져 있기가 싫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그렇게 몸이 춥대요. 몸 안으로부터 체온이 꺼져가니까, 얼어 죽을 것처럼 냉기가 돈다는 거예요. 그때 제가 없으면 얼마나 외롭고 무섭겠어요. 임종을 못 지키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아서 되도록 집에 있으려고 해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어요. 고양이 나이로는 저만큼도 많이 산 거라고 하니까….”

고양이와 함께 나이를 먹는다는 것
언제나 작고 귀여운 존재로 곁에 남아있을 것만 같은 고양이들. 하지만 고양이도 나이를 먹는다. 인간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인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늙어간다. 고양이와 인간은 마치 속도가 다른 무빙벨트를 타고 움직이는 것 같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저만큼 뒤에서 따라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옆에 왔나 싶더니, 나보다 훌쩍 앞질러 가버린다. 인간이 아무리 달려도, 고양이가 늙어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순 없다. 마리캣의 눈에는 마리의 나이가 읽힐까? 어떻게 고양이의 나이를 느낄 수 있을까? 

“젊은 애들은 앉아있으면 가슴이 매끈매끈해요. 근데 마리는 앉아있을 때 보면 가슴팍이 움푹하고 울퉁불퉁하거든요. 피부에 지방이나 근육도 없고 털도 푸석해졌죠. 사람도 나이 들면 다리가 가늘어진다고 하잖아요? 얘도 하체에 근육이 하나도 없어요. 배만 볼록하고, 엉덩이도 빈약하고. 전 마리를 보고 ‘아유, 못생긴 년’ 그래요. 그런데 전 마리가 웃기게 생겨서 좋고, 못생겨서 좋아요. 요즘은 늙으니까 응석이 심해져서 아기같이 굴어요. 쓰다듬어주면 팔을 뻗어 제 가슴에 탁 대는데 ‘이거 사람 아니야?’ 싶어요.”

마리캣네 작업실 고양이들은 다들 성격이 드센 편이다. 그래서 마리캣도 마음 고생, 몸 고생을 톡톡히 했다. 집에서 일어난 일을 사실대로 다 이야기하면 못 믿을 정도란다. 심지어 마리 때문에 얼굴 성형수술을 할 뻔한 적도 있다.
 
“한밤중에 누가 얼굴을 팍 때려서 일어나보니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예요. 마리가 제 얼굴에 도움닫기를 한 거죠. 인중이 대각선으로 찢어졌는데, 고양이가 얼굴 위로 뛰어갔다니까 의사가 믿질 못해요. 다행히 흉은 안 남았지만, 그밖에도 기절할 일이 많죠. 다른 집에서는 1년에 몇 번 일어나기도 힘든 일인데, 이놈의 고양이들은 힘이 너무 넘쳐서 힘들어요. 전 그냥 제 팔자가 세다 그래요.”

마리캣이 일하고 있으면, 고양이 시도는 의자 팔걸이에 네 다리로 아슬아슬하게 서 있거나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 하는 것처럼 제 어깨를 앞발로 탁 짚곤 한다. 키가 큰 노마는 직접 두발로 서서 방문 손잡이를 열고 불쑥 들어와 놀래키는가하면, ‘노트북 전원을 빼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걸 아는지, 자꾸 콘센트를 뽑곤 한다. 유별난 성격의 고양이들과 함께한 세월 때문일까, 마리캣의 고양이 그림에서는 모델이 된 고양이의  생생한 개성이 묻어난다. 단순히 피사체로만 고양이를 보는 사람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1월에는 그간 그려온 그림들을 엄선해 12가지 주제로 묶은  작품집 <캣북>2도 펴냈다. 중세 필사본을 연상시키는 장식 문양 한가운데, 아메리칸 숏헤어 고양이 ‘보리’가 요염하게 누워 있다. 첫 다이어리였던 2004년도 <캣북>의 표지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캣북>의 표지그림은 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흰색과 검정색 줄무늬의 대비가 강렬한 보리를 검붉은 바탕 위에 그리면서,  빨강과 검정색에 대한 무의식적인 애착을 깨달았다. 작가에게 있어 '나만의 색'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업을 10년쯤 하다 보니 변하는 부분이 있고 변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건, 보리를 그리며 얻은 ‘색깔에 대한 자각’이다. 


 ‘고양이 미술관’의 꿈
마리캣의 작업실 한 구석 진열장엔 해외여행을 다니며 틈틈이 모은 고양이 장식물이 가득하다. 일본의 여자아이 축제인 히나마츠리 때 장식하는 히나 인형을 고양이 모습으로 만든 것, 베네치아에서 사 온 고양이 마리오네트와 고양이 가면, 고양이로 만든 체스 말…고양이 마니아라면 군침을 삼킬 만한 소장품들이 빼곡하다. 이 소장품은 마리캣의 그림 속에 소품으로 종종 등장하곤 한다.

“제일 애착이 가는 물건이 베네치아에서 산 고양이 마리오네트인데요. 간판도 없고 장사할 마음도 별로 없는 것처럼 생긴 가게인데, 거기 전시된 인형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굉장해요. 베네치아가 《장화 신은 고양이》의 도시잖아요. 그러니까 고양이 기사도, 공주도 있고. 어린애만 한 크기의 고양이도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100만원이 넘는 게 많아요. 거의 보물이죠.” 
 

그가 10년 간 모은 고양이 기념품들이 너무 앙증맞고 귀여워, 박물관이라도 차리면 좋겠다 싶다. 부엉이 박물관, 닭 박물관, 나비 박물관도 있는 마당에, 고양이 박물관이 하나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이야기하니 마리캣도 맞장구를 친다.

“10년은 무척 짧은 시간이에요. 처음 그림 그릴 때 10년은 기본기를 닦아야지 생각하고, 10년이 지나면 되게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거예요. 20대에는 제 브랜드를 갖는 게 꿈이었죠. 이제 30대가 됐으니까 그림의 밀도를 좀 더 높여서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고, 40대에는 고양이미술관을 열고 싶고…. 그게 제 희망사항이에요.”
 
마리캣이 그린 그림과 소장품을 모아 고양이 미술관을 열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앞으로 10년은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 시간의 무게만큼 탄탄한 밀도를 지니게 될 그림들을 기대하면서. 마리캣의 고양이 미술관에는 그간 선보여온 달력이나 다이어리처럼, 대중적인 물건에 담기 힘든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도 있을 것이다. 10년 후 어느 고양이 미술관에 걸려있을 그의 그림들을 모두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마리캣을 온전히 만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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