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에겐 예술영화라는 타이틀이 찬사인 동시에 낙인이다. 예술영화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투자자, 개봉에 난색을 표하는 극장주, 보나마나 어렵고 지루할 거라며 관심도 갖지 않는 관객들을 떠안고 걷는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러나 민병훈 감독은 현실을 달콤한 판타지로 포장해 팔아치우는 사기꾼보다, 우직한 싸움꾼이 되길 원한다. 영화의 절대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그의 고집은, 영화 <벌이 날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집요하고 무모한 삽질과 닮았다. 자신을 극한 상황까지 내몰 때조차, 삽 대신 카메라를 든 민병훈 감독의 ‘삽질’은 결코 무겁지 않다. “깃털처럼 가볍게, 머슴처럼 저돌적으로, 하지만 심각하진 않게.” 그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픈 삶의 태도는 그러하다.


민병훈 감독이 러시아 국립영화대학 졸업 작품으로 만든 첫 장편 <벌이 날다>(1998)는 그의 영화관뿐 아니라 세계관을 뚜렷하게 드러낸 작품이기에 주목할 만하다. 타지키스탄 고원 마을에서 현지 배우를 기용해 현지어로 찍은 영화는 다소 낯설지만, 그 속에서 감독의 메시지는 생생하다. 모든 과정을 흑백으로 찍고 다시 세피아 톤의 색을 입힌 화면은 마치 시계태엽을 거꾸로 감아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같은 효과가 우화 같은 이야기와 어우러져, 영화 속으로 더욱 몰입하게 된다. 


두려움과 구원은 종이 한 장 차이

<벌이 날다>의 주인공 아노르는 초등학교 교사이자 작가지만, 내기로 한 책은 언제 출간될지 알 수 없고 살림은 늘 쪼들린다. 게다가 옆집 부자는 아노르의 집 담 아래 재래식 화장실을 만들어 수시로 드나들며 아노르의 아내를 훔쳐본다. 아노르는 부자에게 항의해 보지만 묵살된다. 억울한 처지를 하소연하면 도와줄 거라 믿었던 검사마저 “사유재산법도 모르느냐”며 부자 편을 든다. 결국 아노르는 가난한 자의 소소한 행복권마저 지켜주지 못하는 법과 전쟁을 선포한다. 즉 검사의 옆집을 사서 앞마당에 공동화장실용 구덩이를 파면서, 부자 이웃이 자신에게 했던 짓을 검사에게 고스란히 되갚는 것이다. 


아노르가 집요하게 파내려가는 구덩이가 깊어질수록 상황은 점점 파국을 향해 치닫지만, 삽질을 멈출 수는 없다. 무기력한 지식인이었던 아노르는, 삽질이라는 육체적 고행을 통해 일그러진 현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검사가 아노르의 아들에게 도둑 누명을 씌워 협상 카드로 제시할 때조차 단호히 타협을 거부한다.


아들의 자유를 포기한 대신 상처뿐인 싸움을 선택한 아노르는 절망과 고통의 깊이만큼 구덩이를 파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기적과 직면한다. 그가 판 구덩이에서, 200년 동안 우물 하나 없던 마을에 처음으로 우물물이 솟아나온 것이다. 무덤이 생명의 공간으로 반전되는 순간이다. 민병훈 감독은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걸어 내려가야만 기적과 같은 순간을 대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럿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구덩이와 무덤과 우물이 암시하는 상징은 명료하다.


주인공이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깨달음을 얻는 설정은 <괜찮아, 울지마>에도 등장한다. 허풍쟁이 청년 무하마트는 도박 빚을 지고 고향으로 도망가지만, 그곳에서도 천성을 버리지 못하고 성공한 음악가 행세를 한다. 거짓된 삶으로 일관하다 고향 사람들에게조차 외면당하는 무하마트는, 돌산을 깨어 집을 짓는 할아버지를 구슬려 돈을 타내고 고향을 뜨려다가 놀라운 비밀을 깨닫는다.

좀 더 원만한 상황을 선택할 수 있을 상황에서도, 민병훈 영화의 주인공들은 유독 극단을 향해 내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극단을 향한다는 것, 끝을 본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민병훈 감독은 어떻게 두려움을 보여주면서도 구원을 말하는 것일까? 그에게 두려움과 구원은 어떤 의미일까?


“<벌이 날다>에서 아노르의 아들이 이런 ‘그만 파도 되지 않느냐’고 얘기하죠. 하지만 아노르는 ‘끝까지 더 팔 거다’라고 하면서 집요하게 더 파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나요. 나 자신을 불사를 정도로 극한까지 몰고 가야 결국 두려움의 실체와 직면할 수 있어요. 그때 바로 구원이 찾아온다고 봐요. 사실 두려움과 구원은 종이 한 장 차이거든요. 그러니 제 영화는 ‘두려움에 대한 3부작’인 동시에, ‘구원에 관한 3부작’이기도 하죠.”

두려움 3부작의 완결판격인 <포도나무를 베어라>에서는 두려움을 넘어선 구원의 메시지가 한층 더 명료해진다. 신학도인 수현은 옛 애인이었던 수아와 견습 수녀 헬레나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용서하고, 또 용서받는다.


모조품 아닌 ‘진짜’를 찍고 싶은 열망

극한 상황에 몰리는 건 영화 속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척박한 영화판에서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날마다 현실과 싸우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민병훈 감독은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편법을 쓰지 않는다. 머릿속에 그렸던 풍경을 온전히 재현하기 위해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로케이션을 감행한다.

예컨대 <괜찮아, 울지마>도 한국의 적당히 비슷한 시골 동네에서 한국 배우와 함께 찍었다면 제작비를 훨씬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 감독은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절대 기준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란 말은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길과 구덩이와 거대한 돌산조차 우직하게 만들어낸다. 세트 촬영은 거부하지만 자연을 있는 그대로 찍는 건 ‘날로 먹는 것’이라 믿기에, 감독의 시선을 담아 풍경을 새롭게 창조한다. 그의 영화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세트 촬영, 정말 싫어해요. 그렇게 찍으면 몸은 편하겠죠. 하지만 그건 내 편의만을 위한 거예요. 모조품은 제가 더 잘 알아요. 하지만 진짜를 찍고 싶어요. 그래서 원하는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다 보니 ‘감독님, 안돼요’란 말을 지겹게 들었어요.

<포도나무를 베어라>에 나오는 수도원도 2년 동안 쫓아다니면서 허락을 구해 찍은 거예요. 처음엔 다들 거절하죠. 다른 데도 많은데 왜 꼭 여기여야 되냐고 물어요. 그건 제가 어떤 여자와 결혼하려는데, 그 여자가 ‘나랑 비슷한 사람 많잖아. 왜 나랑 해야 해?’ 하고 묻는 것과 비슷해요. 당신이니까, 바로 그 장소니까 하는 거예요.”


7년간의 러시아 유학 기간 동안 그는 동양에서 온 낯선 이방인이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충무로 바닥에서 밑바닥부터 올라온 감독이 아니기에 열외자 취급을 받았다. 자본주의의 논리로 도배된 멀티플렉스 극장가에서도 그가 만든 예술영화는 소외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연덕스런 얼굴로 “영원한 이방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 짧은 말 속에 지난한 그간의 삶이 축약되어 있다.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줄곧 이방인이었으므로. 하지만 힘겨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겁지 않다. 감독이라며 무게 잡다가 조로하기보다, 차라리 머슴처럼 느물느물 하고 싶은 말을 툭툭 던지면서, 관객들이 생각할 여지를 남길 수 있는 ‘열린 구조’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보편성을 띤 무국적 영화를 향한 꿈

민병훈 감독이 지향하는 것은 국가의 색을 넘어선 ‘무국적 영화’다. 오리엔털리즘에 기대기보다 경계를 초월한 보편성을 띤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란 말은 임권택 할아버지 때나 통할 얘기에요. 사실 그게 껍데기만 보는 거거든요. 그 껍데기를 빼내야 온전한 실체가 남는다고 생각해요. 전 태극기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제일 이상해요. 이제 제발 국가는 그만 좀 사랑하고, 개인을 사랑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렇게 애써 만든 영화도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한다면 허사가 되고 만다. 그는 예술영화의 제작 지원보다 중요한 건 접근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애꿎은 예산 들여 예술영화전문관을 지어서 오히려 예술영화를 고립시키지 말고, 시내 멀티플렉스 영화관마다 한 관만이라도 다양성을 담보한 영화를 지속적으로 걸어준다면 바랄 게 없다.


“지금 준비하는 작품은 향기에 관한 영화에요. 이제 구원을 뛰어넘어 사람의 향기가 묻어나는, 신의 향기로 소통되는 영화인 거죠.”


‘향기에 관한 3부작’을 준비 중이라는 민병훈 감독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쨌든’이라는 단표현을 자주 썼다. DVD에 딸린 코멘터리에서도 그랬던 기억이 나기에 감독에게 물었다. 혹시 자신의 입버릇을 인식하는지, 그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긍정적인 인간이거든요. 고생을 많이 했는데도, 딱 보면 고생한 사람 같지 않대요. 편해 보인다고들 하니까요. 아마 그 말을 무의식중에 쓴다면 ‘괜찮지 않아요?’ 정도의 뜻이 아닐까요?”

내가 보기에 그의 ‘어쨌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뜻인 것 같다. 고집스럽고 우직하게 예술영화를 만들어가는 그의 태도처럼. 두렵지만 끝까지 가보려는 진심이 느껴지기에, 그의 영화를 한 번 더 애틋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된다.


민병훈 | 영화감독. 1969년 출생. 러시아 국립영화대학에서 촬영 전공으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잠셰드 우스마노프 감독과 공동연출한 첫 장편 데뷔작 <벌이 날다>(1998)을 비롯해 <괜찮아, 울지마>(2001), <포도나무를 베어라>(2006)로 이어지는 '두려움 3부작'을 완성했다. <벌이 날다>로 이탈리아 토리노 국제영화제 대상-비평가상-관객상, 그리스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 은상(1998) 등을, <괜찮아 울지마>로 체코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 특별언급상-비평가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작인 <포도나무를 베어라>로 부산국제영화제 PPP코닥상(2004)을 받았다. 현재 한서대학교 영상예술학과 교수로 있다.

여행 가이드북 작가 김동운씨는 요즘 아내의 모국인 일본으로 이주할 준비에 바쁘다.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면, 한국과 일본에서 번갈아 살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다. 그가 일본 이주를 준비하면서 가장 공들인 일의 하나는 반려견 쿠로를 데리고 비행기에 오르는 일이다. 한국에서 일본까지는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에 불과하지만, 쿠로가 비행기를 탈 자격을 얻기까지는 장장 8개월이 걸렸다.

반려견과 함께 외국 이주를 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건 비용과 시간이다. 일단 반려견의 정보를 담은 마이크로칩 이식은 필수다. 또한 광견병 발생 국가인 한국에서 광견병 없는 일본에 반려견을 데려가려면, 한 달 간격으로 두 차례에 걸쳐 광견병 백신을 접종하고 검역기관에 혈액을 보내 항체 형성 여부를 검사해야 한다. 이 검사는 한국에서 할 수 없고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검역기관에서만 가능한데, 혈액검사비만 최소 50만원이다.

검사 후 항체가 확인된다 해도 바로 일본으로 떠날 수 없다. 채혈 시점으로부터 6개월 이상 한국에 머무르며 경과를 지켜본 뒤 이상이 없어야 비로소 일본 입국이 가능하다. 게다가 출국 40일 전까지 일본동물검역소에 수입예정 신고서를 보내야 한다.

검역 절차를 마친 개를 데리고 탈 항공사를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다. 국적기는 기내 탑승 가능한 반려견의 몸무게를 5㎏ 이내로 제한하고 있어, 김동운씨는 무게 제한이 없는 유나이티드 항공을 선택했다. 충무로 애견센터에서 ‘미니컵 강아지’인 줄 알고 속아서 산 쿠로가 6kg에 육박하는 성견으로 자랐기 때문. 단, 유나이티드 항공은 개와 함께 탈 수 있는 좌석이 3석뿐이라 일찌감치 예약해야 한다. 또한 사방으로 통풍이 잘되는 이동장에 넣어 데려가야만 탑승을 허가한다. 항공사마다 세부 조건이 다르므로 미리 알아보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단다.
 
 유학이나 이민은 어차피 장기적인 계획 아래 준비하므로, 이주 준비를 시작할 때 반려견을 데려갈 준비도 차근차근 병행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김동운씨의 생각이다. 그는 “반려동물의 마이크로칩 시술이 시급하다”고 설파했다. 그래야만 반려동물을 함부로 버릴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겠다는 약속은 결혼식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반려동물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야말로, 함께 사는 동안 소소한 기쁨을 주는 동물들에 대한 작은 보답일 것이다.


유나이티드항공 규격에 맞는 이동장에 쿠로를 태운 김동운 씨(왼쪽)와 부인 마키코 씨. 쿠로를 일본에 데려가기 위해 8개월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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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몸에서 가장 예쁜 곳을 꼽으라면 눈동자라고 말하겠지만, 가장 사랑스러운 곳은 역시 입술이다. 만화 캐릭터처럼 선명한 ㅅ자 입술을 보노라면, 귀여워서 꺅꺅 소리를 지르고 만다. 살짝 입 꼬리를 올린 채 잠든 고양이 입술은 웃는 표정과 어쩜 그리 닮았는지!

틈틈이 찍은 고양이 사진을 갈무리하다가, 나도 모르게 배실배실 웃는다. 변화무쌍한 고양이의 표정이 사랑스럽기 짝이 없어서다. 어찌 보면 단호해 보이고, 어떨 때는 심통 난 것 같고, 때로는 새침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표정들. 고양이가 뭔가 집중해서 바라볼 때, 망설이듯 살짝 벌린 입술은 금세라도 내게 말을 건넬 것만 같다. 입을 있는대로 힘껏 벌려 고양이 하품을 할 때면, 실은 웃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꼭 파안대소를 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만 따라 웃게 된다. ‘어쩜 저렇게 시원시원하게 입을 벌리고 웃는 표정을 지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스밀라의 호탕한 표정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웃어본 적이 있었나 생각하니,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웃었던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이쯤 되면 “웃는 표정은 인간만 지을 수 있다던데?” 하고 지적할 사람도 있음직하다. 한데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면 그 말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감정을 감추지 않고 솔직히 드러내는 고양이 입술에는 인간 못지않은 다채로운 표정이 담겨 있다. 물론 과학의 힘으로는 그들의 표정을 식별하기 어렵겠지만, 함께 뒹굴며 살아온 세월의 힘을 빌리면 고양이 표정을 읽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스밀라의 웃는 얼굴에는 작은 결함이 있다. 고양이에게 발톱만큼 중요한 무기인 송곳니가 한 개 없기 때문이다. 입양되기 전 험한 거리 생활을 하다가 부러졌는지, 혹은 어딘가에서 빠졌는지 모르지만, 다시 자랄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고양이를 상품 취급하는 동물가게에서라면 ‘하자 있는 고양이’로 분류되어 천덕꾸러기가 됐겠지만, 내겐 스밀라의 그런 모습도 소중하다. 그 결함이, 스밀라의 웃음을 특별하게 기억하도록 도와줄 테니까.

고양이가 곁에 없을 때, 내게 힘을 주는 고양이 웃음이 그리울 때면 (^ㅅ^) 이렇게 생긴 고양이 이모티콘을 그려 본다. 그럼 이모티콘 속에서 고양이 웃음의 활기찬 기운이 전해진다. 오늘 하루도 기운내서 씨익 웃어보자고, 이모티콘이 말을 건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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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 길고양이 블로거 catsto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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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비수기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는 걸 깨닫고 새삼 놀랐다. 나는 언제나  떠나는 사람보다 머무르는 사람 쪽에 가까웠으니까. 사람들이 여행에서 기대하는 맛집 탐방이나 쇼핑도 관심이 없었고, 관광명소 앞에서 V자를 그리며 ‘나 여기 다녀왔소’ 하고 증명사진 찍는 건 더더욱 질색이었다.


게다가 모처럼 마음먹고 여행을 준비하려 해도, 낯선 곳에서 헤매지 않으려면 신경 써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가이드북을 사고, 약도를 인쇄하고, 인터넷 자료를 갈무리하고, 경험담을 읽다 지쳐서 여행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쉬고 싶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휴가가 주어져도 ‘세상에는 여행보다 휴식이 필요한 사람도 있는 법이지’ 하고 되뇌면서 집에서 고양이와 함께 뒹굴뒹굴 놀곤 했다.


한데 날이 풀리고 봄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갑자기 여행 병이 도지는 건 무슨 조화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싫었던 건 여행 자체가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의 여행이 아니었을까? 최단 시간에 여러 지역을 도장 찍듯 황급히 둘러보는 여행, 남들이 '여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봐야 한다'며 짜 준 코스를 그대로 답습하는 여행 말이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낮잠 자는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을 채워줄 ‘맞춤 여행 코스’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행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밥벌이 하는 틈틈이 그걸 다 준비하려다 보니 짐 싸기도 전에 지쳐 나가떨어질 수밖에.


그렇게 만만찮은 여행 준비에 치를 떨면서도, 일년 중에 며칠은 동물을 찾아 떠나는 ‘이상한 여행자’로 지내고 싶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뛰노는 야생동물도 매력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도시에서 사람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동물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한지 만나보고 싶다. 낯선 여행지에서 다음 장소까지 이동할 최단 루트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허둥지둥 걷는 대신, 동네 주민 산보하듯 느린 걸음으로 고양이가 있을 골목을 훑어나가면서.


물론 녀석들이 언제나 날 기다려주진 않을 테니,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한다 한들 여행지에서 언제나 그리워하던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불확실한 요소로 가득 찬 여행일수록 녀석들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더 커진다. 그게 바로 나만의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에게, 여행이 주는 선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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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묵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구석구석 뜯어보면 성한 구석이 없다. 처음엔 황금빛이었다가 이젠 구릿빛으로 변한 손잡이는 헛돌기만 할 뿐 제대로 열리지 않고, 부엌 싱크대 서랍 레일이 망가져 툭 기울거나, 거실 천장의 형광등 커버가 느닷없이 추락하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에겐 이렇게 낡은 집도 그저 새로워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으로 보내는 녀석이지만, 깨어 있을 때면 집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소일하느라 여념이 없다. 책꽂이 위로 폴짝 뛰어올라 꼭대기에 쌓인 먼지를 털고, 방문을 열겠다고 앞발로 문짝을 긁어 생채기를 남기면서.

가끔 스밀라가 문 앞에서 벅벅 긁는 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나갈 때면, 열어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문을 열고 드나드는 게 신기하고 귀엽기도 해서 그냥 내버려두곤 했다. ‘저 녀석, 조그만 게 힘은 장사일세’ 하고 기특해하면서. 문짝 아래 사정없이 긁힌 자국을 제대로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루는 문 뒤에 숨어서 스밀라에게 장난감을 던져 슬슬 당기면서 유인하는 놀이를 하는데, 문짝 아래, 딱 고양이 키만한 높이에 어지럽게 긁힌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스밀라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때마다 조금씩 생채기가 난 모양이다. 흰색 페인트 아래 숨어 있던 나무 속살이 다 드러날 지경이다. 스밀라와 함께 산 지도 2년이 다 되어 가니, 2년 동안 쌓인 세월의 흔적이 문짝에 새겨진 빗금으로 남은 셈이다.

긁힌 문을 보노라니 언제 이렇게 긁어 댔나 싶어 어이없기도 하고, 한편으론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숫자를 셀 줄 모르지만, 스밀라는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암호로 집 곳곳에 흔적을 남기면서 나와 함께 살아온 시간을 표시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숫자가 없던 시절, 사람들이 나무나 뼈에 빗금을 그어 수를 헤아렸던 것처럼.

언젠가 문 뒤에 더이상 스밀라가 없을 때도, 문 아래 새겨진 빗금들을 보면 스밀라가 떠오르겠지. 좋아하는 사람이 땅콩 초코볼을 즐겨 먹는다는 말을 듣고선, 땅콩 초코볼만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처럼, 낡은 집의 문짝을 볼 때마다 문 아래를 유심히 보게 되겠지. 만약 언젠가 내 집을 갖게 된다면, 문짝 아래 고양이 전용 출입문을 뚫고 싶다. 힘들게 문을 긁지 않아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반평생 세입자로 살아온 마당에, 집 장만은 요원한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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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박 긁어놓은 문 뒤로 스밀라가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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