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베개를 공유한 고양이 아버지의 텔레비전 시청법은 베게를 이중으로 놓고 등의 각도를 높인 다음, 누워서 보는 방법인데 스밀라가 그 자리에 염치 좋게 끼어듭니다. 사실 처음 스밀라가 집에 왔을 때만 해도, 아버지 입장에선 안방은 동물에게 내줄 수 없는 '청정구역'이었습니다. '감히 동물이 사람 자는 데 들어올 수 있느냐'는 집안 어른의 자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밀라는 처음 몇 달간은 제 방에서만 머물다 거실로, 부엌으로, 조금씩 활동 영역을 넓혀가야만 했습니다. 스밀라가 어슬렁거리다가 슬쩍 안방에 발을 딛기라도 하면, 당장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스밀라는 아버지가 좋다고 아버지 다리에 제 꼬리를 바짝 세워서 부비고, 그 앞에 발라당 드러눕곤 했지만요. 그런 고양이 애교에 마음이 녹았던지 아버지도 가끔.. 2010. 5. 24. 눈칫밥 먹는 배고픈 길고양이 어느 집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길고양이 먹으라고 내다 놓았는지, 전단지 위에 음식 찌꺼기가 놓여 있습니다. 길고양이 입장에서는 이런 횡재가 없습니다. 먼저 주워먹는 놈이 임자입니다. 누가 올까 두려운 마음에 마음 편히 앉지도 못하고, 금방이라도 도망갈 수 있도록 반쯤 서서 허겁지겁 먹습니다. 하지만 오가는 사람이 많은데 음식은 대로변에 놓여 있어, 마음 놓고 먹을 수가 없습니다. 몇 입 먹고 눈치 보며 옆으로 슬금슬금 피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또 몇 입. 간신히 앉아서 먹나 했더니 쉴 새 없이 사람들이 지나다닙니다. 저렇게 불안하게 먹다가는 체하기 십상입니다. 눈칫밥 먹다 체하면 약도 없다는데... 섣불리 음식이 있는 자리를 안전한 곳으로 치워주려 했다가는 겁을 먹고 아예 자리를 떠나버릴지도 몰라서, .. 2010. 5. 22. [폴라로이드 고양이] 002. 엄마 손등 "엄마 손등 밉다고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나도 너처럼 희고 매끈한 손을 가진 적이 있었단다." "엄마 손등은 고된 일에 다 헐어도, 찹쌀떡 같은 네 손등은 곱게 지켜주고 싶었단다. 엄마가 어려서 지금 너희만 했을 때, 엄마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제 어머니는 쭉 주부로만 지내다가, 50대에 뒤늦은 직장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안해 본 일을 전전하는 동안 손마디는 굵어지고 손등도 거칠어져 예전에 끼던 반지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가 되었죠. 직장생활 중에 손가락 골절상을 입고 일을 그만두셨는데, 물리치료를 잘못 받아 손가락 하나가 구부러진 상태로 아무는 바람에 더더욱 손 드러내는 걸 꺼려하시게 되었습니다. 사정 모르는 사람 눈에야 어머니의 그 손이 미워보일지 모르지만, 저는 그 손에 담긴 사연을 알기에,.. 2010. 5. 21. 길고양이 유혹하는 보라빛 향기 길고양이들에게 부러운 점이 있다면,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봄날에 유독 '아깽이 대란'이 일어나는 건 따뜻해진 봄바람으로, 사방에서 뭉근히 피어오르는 꽃향기로 한껏 몸이 달아오른 고양이들이, 봄을 맞아 새 생명을 생산해내는 대지의 힘을 받아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조금이라도 하늘에 가까워지려는 듯, 얼굴을 한껏 들고 봄 향기를 맡는 고양이도 어느덧 여름으로 얼굴을 바꾸려 하는 계절을 보내기 아쉬운 듯합니다. 봄이 무르익다 못해 단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늦봄, 보라빛 꽃송이에 둘러싸인 고양이는 얼굴마저 보랏빛으로 화사하게 물들어 버렸습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꽃향기에 취한 순간만큼은 세상 어느 고양이도 부럽지 않을 듯합니다. 꽃향기에 충전을 마친 고.. 2010. 5. 21. 흑표범 닮은 카리스마 길고양이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찌릿 하는 눈길이 느껴집니다. 얼른 주위를 돌아보면, 대개 길고양이가 몸을 숨기고 눈을 빛내며 저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길고양이도 사람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흑표범을 닮은 올블랙의 멋진 고양이입니다. 까만 몸에 더욱 도드라지는 회색 발바닥은 흙먼지가 매일 묻은 탓입니다. 위엄 있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경쾌한 모습으로 종종걸음을 걷는 모습이 귀여워서 뒤를 밟아보았습니다. 고양이는 공사장 임시계단 아래 몸을 숨기고 다시 상황을 관망하고 있습니다. 과연 여기까지 네가 따라올 수 있겠니? 하는 자신만만한 눈빛입니다. 저도 어지간한 곳이면 따라들어가는 편이지만, 계단으로 가로막힌 공사장 뒤편으로는 위험해서 차마 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봅니다. 그렇게 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2010. 5. 20. 애간장 태우는 길고양이의 달콤 키스 고양이들이 서로 마음을 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안부를 묻는 키스만큼 가슴 졸이는 순간도 없습니다. 내밀한 교감의 순간을 인간에게 공개하기를 꺼리는 길고양이들지만, 따사로운 햇빛 아래 길고양이의 마음도 사르르 녹아 무장해제가 되었는지, 둘만의 시간을 저에게 살짝 공개해줍니다. 사실 인간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나 키스이지, 고양이 입장에서는 서로 코를 부비며 냄새를 맡아 안부를 묻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두 고양이가 닿을 듯 말 듯 서로 얼굴을 가까이 대는 순간만큼은 저도 왠지 마음이 설레고, 두근두근한 것이 마치 제가 그 인사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서로 거칠게 뒹굴며 흙바닥에서 레슬링을 하던 순간도 있었건만, 이렇게 다정한 모습도 보여주다니... 조금 더 어린 고양이 쪽은 왠지 .. 2010. 5. 19. 이전 1 ··· 41 42 43 44 45 46 47 ··· 10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