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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지붕 위로 유배된 길고양이 가족

by 야옹서가 2010. 3. 22.
땅을 밟지 못하고 지붕 위에서만 살아야 하는 길고양이들이 있습니다. 힘이 약한 엄마고양이가

세력싸움에 밀려 지붕으로 피신하면서 결국 그 위에서 새끼를 먹이고 기르게 된 것입니다. 

근처 길고양이들에게 15년이 넘게 밥을 줘 왔다는 어르신을 만나 듣게 된 사연입니다.


길고양이를 만나러 갈 때면 가까운 곳에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가끔 계시곤 했는데

혹시 고양이에게 안좋은 소리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슬쩍 자리를 피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제가 먼저 와 있을 때 어르신께서 묵묵히 다가오셔서 고양이 밥을 주는 걸 

보고, 조심스레 여쭙게 되었습니다. 동네 정육점에서 닭을 다듬고 남은 부산물이나, 혹은
 
식당에서 남은 잔반을 얻어다가 지금껏 줘왔다고 합니다.  "지구상에 사는 생명이 인간뿐이 아닌데,

고양이도 같이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말씀을 해주셔서 참 마음이 든든했는데요.
어르신이 갖고 오신 생닭 부산물을 맛있게 먹고 있는 땅밑 고양이들입니다.  

한데 그들의 머리 위로 이 풍경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지난 2월 중순 어린 길고양이의 '지붕 전망대'란 글에 소개했던 고양이 형제였습니다. 고양이는 원래 높은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녀석들도 당연히 그런 마음으로 저기 있는 걸로 여겼는데 할아버지께 들은 것처럼

복잡한 사연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닭 먹을 줄 알아요! 여기도 좀 던져주세요!" 입을 크게 벌려 애타게 고함을 지릅니다.

엄마고양이도 홀린 듯한 눈빛으로 발아래 벌어지는 만찬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짜증이 났는지, 어린 고양이가 엄마를 향해 고함을 지릅니다.

"엄마 뭐예요! 나도 쟤들처럼 배터지게 먹고 싶단 말이에요. 왜 우리는 지붕위에서만 살아야 해요?"
 
"미안하다, 엄마가 힘이 없어서..." 엄마 고양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식빵을 굽고 있습니다.
 

군침을 흘리며 입맛을 다시는 어린 고양이가 딱합니다. 할아버지가 지붕 위로 먹을 것을 던져주시기는 하지만

세 마리가 양껏 먹을 양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힘이 없어 지붕 위로 내몰린 채 유배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고양이 가족의 처지가 내내 마음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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