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포근해지는 5월이 오면 길고양이 세계에서도 '아깽이 대란'이 일어난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어린 새끼들을 키울 자신이 없는 고양이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양육하기 좋은 때에 새끼를 낳게 되는데
그 시점이 1년 중에서도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5월이다. 5월이 돌아오면 문득 떠오르는
마음속의 아기 길냥이들을 돌이켜본다.
2002년에 처음 만난 행운의 삼색고양이가 1년 후에 낳은 새끼들의 모습. 이제 막 젖을 뗀 새끼들은
엄마가 맛있는 먹을 것을 구해오길 기다리며 곤히 잠들었다. 그간 만났던 어린 길고양이들 중에는
무사히 자라서 그 동네의 터줏대감이 된 경우도 있지만 다음해, 그 다음해에도 같은 자리에서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 한번뿐인 만남이어도 쉽게 잊을 수 없는 고양이가 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면서도 단정하게
턱시도를 갖춰 입고 형형한 눈빛을 뿜어내던 가회동의 어린 고양이도 그랬다. 그냥 놓아두고 가기엔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 빈 박스를 구해다가 은신처로 다가갔을 때 가회동 고양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른들 틈에 섞여 살며 어느 정도 제 앞가림을 하게 된 어린 길고양이는, 아직 짧고 통통한 팔다리를
열심히 놀려가며 도시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비록 실수해서 주눅들고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더라도...
경계심으로 가득한 어른 냥이들과 달리, 아직 어린 고양이들의 눈에서 엿보이는 건 천진함과 호기심이다.
자기보다 더 몸집이 더 큰 인간을 본능적으로 경계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앉아 눈을 굴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아무 고민도 갈등도 없이 해맑은 눈이지만, 조만간 저 눈에도 경계심으로 가득한 날이 올 것이다.
6개월만 되어도 어른 고양이의 모습을 갖추고 번식도 할 수 있게 되는 길고양이에게 성인식은 따로 없다.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두 눈이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처음 알게 되는 날, 아마도 그 날이 어린 고양이에겐
진짜 어른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래, 그렇게 경계심을 놓지 말라고, 팍팍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인간에게 거리를 둘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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