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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어린이날 생각나는 아기 길냥이들

by 야옹서가 2010. 5. 5.

날이 포근해지는 5월이 오면 길고양이 세계에서도 '아깽이 대란'이 일어난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어린 새끼들을 키울 자신이 없는 고양이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양육하기 좋은 때에 새끼를 낳게 되는데

그 시점이 1년 중에서도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5월이다. 5월이 돌아오면 문득 떠오르는

마음속의 아기 길냥이들을 돌이켜본다. 
 
2002년에 처음 만난 행운의 삼색고양이가 1년 후에 낳은 새끼들의 모습. 이제 막 젖을 뗀 새끼들은

엄마가 맛있는 먹을 것을 구해오길 기다리며 곤히 잠들었다.
그간 만났던 어린 길고양이들 중에는

무사히 자라서 그 동네의 터줏대감이 된 경우도 있지만 다음해, 그 다음해에도 같은 자리에서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 한번뿐인 만남이어도 쉽게 잊을 수 없는 고양이가 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면서도 단정하게

턱시도를 갖춰 입고 형형한 눈빛을 뿜어내던 가회동의 어린 고양이도 그랬다. 그냥 놓아두고 가기엔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  빈 박스를 구해다가 은신처로 다가갔을 때 가회동 고양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른들 틈에 섞여 살며 어느 정도 제 앞가림을 하게 된 어린 길고양이는, 아직 짧고 통통한 팔다리를

열심히 놀려가며 도시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비록 실수해서 주눅들고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더라도...


경계심으로 가득한 어른 냥이들과 달리, 아직 어린 고양이들의 눈에서 엿보이는 건 천진함과 호기심이다.

자기보다 더 몸집이 더 큰 인간을 본능적으로 경계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앉아 눈을 굴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아무 고민도 갈등도 없이 해맑은 눈이지만, 조만간 저 눈에도 경계심으로 가득한 날이 올 것이다. 
 
6개월만 되어도 어른 고양이의 모습을 갖추고 번식도 할 수 있게 되는 길고양이에게 성인식은 따로 없다.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두 눈이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처음 알게 되는 날,  아마도 그 날이 어린 고양이에겐

진짜 어른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래, 그렇게 경계심을 놓지 말라고, 팍팍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인간에게 거리를 둘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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