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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길고양이의 생존 필수과목, 공중부양술

by 야옹서가 2010. 5. 19.
길고양이로 살면서 배워야 할 과목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공중부양술입니다. 인간은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귀찮은 미행자를 따돌릴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인간을 골려먹기 위한 게 아니라

길고양이의 생존을 위한 필수과목이기도 합니다.


슬레이트 지붕과 담 사이의 거리는 제법 되지만, 고양이는 온몸의 근육을 힘껏 펴고, 단번에 하늘을 날아오릅니다.

해질녘이 거의 다 된 지라 셔터스피드를 최대로 확보하기 위해 감도를 많이 올려놓았지만, 순식간에 벌어졌다

끝나는 고양이의 공중부양을 모두 포착하기에는 기록속도가 딸립니다. 해서 가끔 공중부양을 하는 고양이를

만나도 늘 심령사진같은 사진만 찍곤 했는데, 이날은 마치 자기의 능숙한 공중부양 솜씨를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듯

공중부양을 두 번이나 시도하는 황란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공중부양술을 시전할 때면, 늘 조마조마한 마음입니다. 한편으로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지만, 길고양이가 사는 동네는 전반적으로 집이 오래된 경우가 많아 도약점이나 착지점이 든든한 지지대가

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뛰어오르면서 조금 발을 삐끗했는지, 아니면 도약거리가 조금은 모자랐는지

간신히 담벼락 끝에 발을 걸쳤지만 어쨌든 무사히 착지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무사히 착지는 했어도, 아직 안심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인간과 동일한 조건에서 잡고 잡히는 상황이 될 수

있으니까요. 혹시라도 인간의 추격이 이어지지 않나 돌아볼 새도 없이, 황란이는 힘껏 내달리고 봅니다.

하도 재빠르게 달아나는 통에, 고양이가 저공비행술을 시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마리 어른 길고양이로 살아남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길고양이가

공중부양술보다, 저공비행술보다 먼저 배우게 되는 기초과목은 인간에 대한 경계심입니다. 세상에는

다정한 사람도 있고, 무서운 사람도 있지만, 쉽게 구별할 수 없기에 멀찍이서 관망하는 게 안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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