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언제까지나 아기처럼 작고 귀여운 상태일 것만 같았던 고양이도 나이가 들면

몸이 약해집니다. 올해로 열 살이 넘은 할머니 고양이도 관절이 나빠져서 높은 곳을

예전처럼 쉽게 오르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골 고양이의 즐거움인 영역 산책을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가뿐한 계단도 하나하나 조심스레 내려가며

산책을 시작합니다.

 

할아버지 내외가 나오실지 몰라 계단 맨 밑 신발 터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보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습니다. 아쉽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앉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1분 1초가 화살 쏘듯 빨리 지나가버리는 할머니 고양이에게는 매순간이 소중합니다.

그렇게 몇 분간 빤히 문 쪽을 보고 있던 고양이는 홀로 정원 산책을 시작합니다.


꼬리를 세우고, 익숙한 영역을 조심조심 발끝으로 더듬으며 걸어봅니다.

나이 들어 시각이 약해져도, 고양이에게는 예민한 청각과 후각이 있습니다. 수염으로

바람의 방향을 읽고, 날카로운 후각으로 익숙한 집의 향기를 기억해 냅니다. 아직은

길을 잃을까 걱정은 없습니다.


 잠시 들꽃 향기를 맡으며 풀숲에 숨어 사색하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즐겨 쓰는 나무 의자에서 기다려 보지만, 아직은 아무도 정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무의자에 할아버지의 온기가 남은 것 같아, 할머니 고양이는 쉽게 의자를 떠나지 못합니다.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 잔디밭에 드러누워 배를 지지는 게 최고입니다. 십수 년간

경험으로 터득한 삶의 지혜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좋은 곳을 놔두고,

햇빛이 따갑다며 그늘로만 숨어드는지 모를 일입니다.

햇빛에 배가 노릇노릇 다 데워지면, 다시 발라당 자세를 바꿔 등을 구워 봅니다. 

따스한 햇빛에 그만 소르르 잠이 옵니다. 할머니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만큼이나  잠이 많습니다.

기분도 좋고 날씨도 좋아, 오늘 너무 무리를 했나 봅니다. 정원에 무성한 풀잎을 베개 삼아,
 
스웨덴의 할머니 고양이는 깊은 단잠에 빠져듭니다. 평화로운 산책에 따라나선 나도

마음이 노곤노곤해져, 그 곁에 가만히 눕고 싶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반려동물 진료 부가세 반대서명에 참여해주세요.

구독+  버튼으로 '길고양이 통신'을 구독해보세요~ 트위터: @catstory_kr

아래 손가락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시면 글을 쓸 때마다 큰 힘이 됩니다.


  1. hugo
    2010.09.14 08:57

    편안하면서 슬픈 글이네요...

  2. BlogIcon 저녁노을
    2010.09.14 10:40

    할머니 고양이의 일상을 엿보고 가요.
    잘 보고 갑니다.

  3. BlogIcon 고양사랑
    2010.09.14 10:53

    평화로운 아침입니다^^할머님 고양이옆에누워 저도 곤한~잠을 청하고파지네요^^참!조기 위에 할머니 내외분 나오시길 기다리는 사진속에서 혹..난간위에 고양이실루엣이 하나 보이는데..고양이인지..장식품인지..긴가민가..싶습니다 ㅎㅎㅎ

  4. 김재희
    2010.09.14 17:12

    너무나 평화로운 일상이군요~
    아침에도 로드킬 당한 냥이를 본데다 아파트13층에서 고양이를 떨어뜨려 죽게한 어떤 할머니 기사를 봐서
    너무나 마음이 울적했는데 좀 풀리는 것 같네요~~
    좀 기분 좋은 소식이 그립습니다..

    • BlogIcon 야옹서가
      2010.09.15 07:18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지요. 사람이 아니더라도
      생명 붙은 것은 다 고통을 느낄 줄 아는데..식물을 키운다는 할머니가 어찌
      동물의 고통은 생각을 못하는지 안타깝네요.

  5. 새벽이언니
    2010.09.14 18:06

    할머니 아닌거 같아요~
    참 곱게;; 나이드신? ㅎ

  6. 비비안과함께
    2010.09.14 20:31

    주변이 한적하니 나이든 냥이에게 무척 좋은 환경인 듯 보입니다. 행복하고 평온하게 나이든 것이 얼굴에 드러나는 냥이네요^^아름답네요. 비비안, 그리고 앞으로 어쩌면 나와 인연을 맺을지도 모를 냥이들과 함께 나이들고 그 아이들의 노년을 저렇게 지켜주고 싶네요.결코 작지 않은 욕심이겠지요. 한적하고 안전한 마을에 정원이 딸린 집은...얼마나 오래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해봤지만 요즘은 내가 함께하는 냥이를 지켜줄 수 있을 만큼은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날이 많습니다~

    • BlogIcon 야옹서가
      2010.09.15 07:19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네 손주 손녀 재롱 보면서 흐뭇한 할머니 고양이지요. 손주 손녀가 너무 빨리 커버려서
      어른 덩치가 되는 게 좀 어색하지만.. 저렇게 넓은 정원은 아니어도
      조그만 손바닥만한 정원이라도 있는 단층집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네요.

  7. 소풍나온 냥
    2010.09.14 23:02

    할머니시라니...믿기 힘들어요~^^
    그렇담....너무 고웁게 늙으신 듯

  8. BlogIcon ftd montreal
    2010.09.15 00:44

    평화롭고 아름다운 사진이네여

  9. 냥이사랑
    2010.09.15 01:43

    글이 참 ...따듯하군요...좋은글과 사진 보고가요...

  10. 쿠마짱
    2010.09.15 19:13

    짧은동화를 읽은 것 같네요^^ 좋은 사진과 글 고맙습니다^^

  11. Nika
    2012.05.05 18:57

    흐잉흐잉 저 로그인 했는데 로그인이 안되네요

    숲고양이님 글들은 뭔가 짤막하면서도 읽기 좋은? 다시말해 편한 글들이 많네요^^
    다른 블로그 다니다보면 좀 너무 길어지는 경우가 많던데 헤헤..
    근데 한국 고양이들은 사람이 처다보기만 하면 몸을 사리기 바쁜데 유럽쪽은 아닌가 봅니다.
    영국에서(영국 유학중) 그냥 가다가 갑자기 고양이가 놀아달라고 바짓지락에 몸을 비벼대는 바람에 화들짝 놀랐다는...
    흐음 뭔가 슬픈 이야기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양이를 그렇게 못대해주나...

★고양이 전문 출판사 야옹서가입니다. 문의사항은 catstory.kr@gmail.com로 메일 주시면 확인 후 회신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