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성곽길을 오르는 중에, 저멀리서 희끗한 털뭉치가 보입니다. 뾰족한 두 귀, 쫑긋한 꼬리,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낙엽으로 물든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산을 오르느라 두 손이 비어있어야 편할 듯해서 카메라는 배낭에 넣어둔 상태인데, 설마 여기서
고양이를 만날까 싶은 곳에서 길고양이를 만났네요.
짐에 엉켜 잘 나오지 않는 카메라를 꺼내고, 거추장스런 배낭은 계단에 두고 고양이 뒤를 따라가 봅니다.
"응? 넌 누구냐옹?" 인기척에 놀란 고양이도 저를 돌아봅니다. 아직 앳된 얼굴의 청소년 길고양이입니다.
아기 티를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네요. 엄마는 어디 가고 혼자 산을 오르는지...
사람도 오르기 힘든 잔가지 쌓인 길을, 짧은 다리로 낑낑 기어올라갑니다.
그러면서도 혹시 뒤따라오는지 불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봅니다.
어쩌면 저 산 너머 어딘가에 엄마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단호한 몸짓으로 걸어가는 어린 길고양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배웅합니다.
일 때문에 찾은 인왕산 성곽길이었지만, 우연히 길고양이를 만날 수 있어서 지친 다리에도 힘이 솟았습니다.
단풍 끝물이라 이제는 낙엽이 다 졌겠지만, 이번 호 마감이 끝나고 나서 한 번 더 찾고 싶네요.
그 사이에 조금 더 자란 청소년 길고양이와 눈인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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