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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고양이 스밀라

미안

by 야옹서가 2006. 11. 9.
목이 칼칼해서 ‘감기가 오려나’ 하고 기침약을 사다 먹었는데, 역시나 감기였다. 밤새 열이 오르고 몸살까지 도지는 바람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결국 출근도 못하고 종일 집에 있었다. 쉬는 동안에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회사에서 쓰다 만 원고를 만지고 있다. 약 기운에 졸다가 쓰다가 하면서. 지금 미리 앓아두면 월말 마감 때 감기로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나마 다행일까.

 

내가 골골거리는 동안, 스밀라도 속이 편치 않아 보인다. 사료를 뉴트로 초이스로 바꿨는데 몸에 맞지 않는지 며칠째 변 상태가 좋지 않더니, 급기야 오늘 아침에는 먹은 걸 그대로 토해 놨다. 헤어볼은 없고, 소화가 미처 안 된 사료 덩어리만 토한 걸 보니 사료가 안 맞는 게 확실하다. 어쩔 수 없이 예전에 먹이던 제품을 다시 주문했다. 샘플 사료라도 먹여보고 바꿀 걸. 아니, 처음 변 상태가 나빠 보일 때 원래 먹이던 걸 곧바로 구해놓을 걸….

 

내 판단 착오로 스밀라를 아프게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악의 없는 실수를 했어도,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면 돌이키기란 힘든 것이다. 실수를 깨달은 뒤에 신중함을 얻기는 하겠지만, 실수 때문에 치러야 할 값이 너무 큰 경우도 종종 있다. 우유를 소화할 능력이 없는 새끼 고양이에게 멋모르고 우유를 줬다가 설사로 죽게 만드는 사람도 있으니…. 스밀라는 불편한 뱃속과 바뀐 사료의 인과관계를 알고 있을까?

 

며칠 전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는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고양이는 사람이 고의적으로 해코지를 한 게 아니라 실수인 걸 알면 용서해준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금은 그 말이 그렇게 절실하게 들릴 수가 없다. 기운 없이 누워 있는 스밀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도 모르게 “미안…” 하고 내뱉었다. 이 상황을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나를 용서해주길 바랐다. 스밀라가 눈을 들어 나를 빤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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