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8. 2002 | 2월 20일부터 3월 3일까지 인사아트센터 2층에서는 조각가 서혜영(34)의 제21회 석남미술상 수상기념전 ‘THE BRICK’이 개최된다. 매년 주목할 만한 활동을 보인 만 35세 미만의 청년작가를 대상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석남미술상 심사위원단은 본선에 오른 6명의 작가 중에서 만장일치로 서혜영을 선정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조소과와 밀라노 브레라 주립미술학교를 졸업한 작가는 이번이 다섯 번째 개인전이다. 본 전시에서 서혜영은 라인테이프를 이용한 벽면 드로잉, 유리와 실크스크린을 조합한 평면작품 및 영상설치작업 등을 선보인다.
살아있는 세포처럼 증식하는 초현실적인 벽의 이미지
서혜영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살아있는 세포처럼 무한히 증식하는 벽의 이미지다. 그가 즐겨 사용했던 유리벽은 내부와 외부가 서로 투명하게 비치지만, 벽의 프레임을 통해서 가로막혀있다. 투명한 수지벽돌을 철 파이프로 연결해 담을 쌓거나, 반투명한 천에 실크스크린으로 벽돌 무늬를 인쇄해 밀실을 만드는 등 안과 밖을 동시에 볼 수 있으면서도 교묘하게 차단된 서혜영의 벽은 사람과 사람,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등 서로 중첩된 경계를 지닌 대상들을 서로 나누고 다시 합친다. 그 벽은 면회를 온 사람과 수감된 죄수를 가르는 유리벽처럼, 혹은 손이 닿지 않아 긁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등의 사각지대처럼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래서 그 벽의 존재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인간 내면에 주목하게 한다.
그러나 최근 작가는 물리적인 벽의 형태를 벗어 던지고 점차 벽의 이미지를 개념적으로 재구성한다. 철망이 삽입된 유리, 검은 거울 등을 교차시키고 라인 테이프를 이용해 벽돌을 묘사한 ‘Brick Puzzle’연작을 보면 이 같은 변화가 눈에 띈다. 실재하는 벽은 바닥에서 한 층씩 쌓아올리며 만들어질 수밖에 없지만, 가느다란 라인테이프로 한 땀 한 땀 수놓듯 그려낸 벽의 이미지는 중력과 무관하게 사방에서 솟아오르며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붙잡고 싶은, 그러나 결코 잡을 수 없는
또한 전시장에 벽을 쌓는 기존의 작업 형태가 설치의 어려움과 공간적 제약이라는 제작상의 난점을 지녔던 데 비해 최근 작업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도 작가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라인테이프로 그려낸 가상의 벽과, 테이프를 접착한 실제 전시장 벽의 대조를 통한 독특한 공간 해석도 돋보이지만, 작가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비디오·음향설치작업 ‘Tangible & Intangible’(2001)을 꼽을 수 있다. 대중음악가 고구마가 음향을 맡고 직접 출연도 한 이 작품은 안과 밖이 연결된 방에서 끝내 나가지 못하고 맴도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방에서 문으로 나가는 행위는 곧 또 다른 방의 문으로 들어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실물의 벽을 만드는 대신 영상 설치를 도입해, 단지 두 대의 프로젝터만 사용하고서도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연결된 초현실적인 공간을 전시장에 재현해냈다.
본 전시의 평문을 쓴 이은주씨는 “서혜영의 벽돌 이미지는 물리적 구축의 상징물이 아니라 실제 공간을 끝없이 분화시키면서 3차원적 중량감마저 해체하는 개념적이고 기호적인 것”이라고 설명하고, “전시공간에 퍼즐게임 같은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공간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 서혜영 작품의 특징”이라고 밝혔다.
관람료는 없으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7시다. 자세한 문의는 02-73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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