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22. 2002 | 3월 16일부터 4월 14일까지 아트선재센터 1∼3층에서는 젊은 작가 기획전 ‘Blink’전을 개최한다. 김소라, 양혜규, 정혜승, 남지 등 4명의 작가는 모두 국제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여성작가이면서, 개념적 성향의 미술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Blink’라는 전시명에서 연상할 수 있듯, 이들의 작품은 섬광처럼 반짝이는 발상이 돋보인다.
미술관에 들어선 기발하고 난해한 놀이터
네 명의 작가가 작품 속으로 관람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은 재기발랄하지만, 이들이 벌여놓은 현란한 지적 유희의 놀이터에 뛰어드는 일은 만만치 않다. 작가의 설명 없이 제작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발상적 전환 때문이다.
컴퓨터문화를 기반으로 익명의 공동체문화를 실험하는 정혜승(29)의 ‘블루 타운 프로젝트’는 그 대표적인 예다. 작가가 마련한 4가지의 에피소드는 푸른색 칵테일 파티, 컴퓨터 시동 비밀번호 맞추기 대회, 벌레를 위한 수영장 디자인, 탈출영화 상영 등 외견상 서로 무관해 보인다. 이는 명확한 주제별 분류 대신 컴퓨터의 즐겨찾기 개념에 기반해 4개의 섹션을 하나로 묶었기 때문이다. 즐겨찾기 버튼 속에 담긴 여러 개의 폴더들이 서로 다른 내용으로 연결될지라도 개인적 취향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각각의 에피소드는 컴퓨터문화를 상징하는 파란색 아래 느슨한 공동체적 성격을 형성한다.
개념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미적 경험을 유발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 김소라(37)의 ‘3M 프로젝트’도 기발하다. 작가는 사물의 객관적 가치에 FunValue라는 주관적 변수를 부여한 새로운 가격환산 공식을 제시하고, 이 공식을 직접 적용해 가격을 매긴 여러 종류의 껌을 1층 안내데스크에서 판매했다. 이로써 관람자는 껌을 구매하면서 작품에 내재된 개념 역시 함께 구매할 수 있다. 또한 김소라는 껌처럼 관객이 대중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작품 외에 아우디 스포츠카, 크리스찬 디올 핸드백, 맥도널드 장난감 등을 한 자리에 늘어놓고 구경만 할 수 있도록 해 상품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상품과 가격, 가게의 개념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선보였다.
국내 개념미술의 흐름 보여줘
앞서 언급한 두 작가가 개념의 전환 쪽에 치중한다면, 다른 두 작가, 양혜규(31)와 남지(27)의 경우에는 같은 맥락 속에 있으면서도 정서적인 측면을 중시한다는 눈에 띈다. 양혜규가 버려진 일상의 사물에서 스산한 삶의 단편을 포착한다면, 남지는 기계로 치환된 인간 행위 속에서 욕망과 공포가 혼재된 감정을 이끌어낸다는 점이 다르다. 귀 청소, 발 마사지, 손톱 갈기와 같은 청결작업을 기계로 대체하거나, 심지어는 눈물 등 체액을 추출하고 교환하는 장치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제작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문장치와 같이 살벌한 모습으로 시각적 충격을 준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을 비롯한 아트선재센터 소속 큐레이터 4명이 국제미술계에서 충분한 성장 가능성을 지닌 작가로 추천한 만큼, 이들의 작품은 현 국내외 미술계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선정작가 모두 개념미술에 편향된 점은 다양성 면에서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전시 관람료는 일반 2천원, 학생 1천원이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또한 본 전시와 별개로 3월 22일부터 4월 3일까지 아트선재센터 지하 1층 아트홀에서 ‘생활의 발견’ 개봉을 기념해 홍상수 감독 특별전이 열린다. 문의전화 02-733-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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