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29. 2002 |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기금이 1980년부터 소장해온 현대 생활디자인 명품들이 국내에 대거 소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5월 3일까지 열리는 ‘레스 앤드 모어’전은 세계 유명 디자이너 90여 명의 작품 5백70여 점이 전시되는 대규모 디자인전이다. 알렉산드로 멘디니, 에토레 소트사스, 가에타노 페세, 제스퍼 모리슨, 악셀 쿠푸스, 필립 스탁, 드룩 디자인, 론 아라드,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의 솜씨를 확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보다 더 단순하게, 혹은 보다 더 장식적으로
전시명 ‘레스 앤드 모어(Less and more)’는 20세기 초를 풍미한 모더니즘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어의 역설적 명제 ‘Less is more’에서 착안한 것으로, 기능주의와 표현주의, 절제미와 장식미가 병존하는 현대디자인의 경향을 함축해 보여준다.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작품을 18개 주제로 세분해 전시했으며, 주제별 부스 외에도 대표작가 12명의 부스를 별도 설치해 효율적인 관람이 되도록 했다.
예컨대 다채로운 조립식 가구를 소개한 ‘접기·펼치기’부스에서는 소형화·경량화·규격화 등 ‘Less’로 대변되는 디자인 요소가 집약된 작품을 접할 수 있다. 펼쳐진 한 장의 전개도를 종이접기 하듯 조립해 만드는 캐비닛, 분해하면 가방 크기가 돼 운반하기 편한 의자, 반으로 접히는 테이블 등의 제품은 휴대성과 공간 효율 측면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 부스에 참여한 디자이너 스탈링가는 일본식 종이접기에서 착안해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는 용기 세트 ‘오리가미’를 선보였는데, 밋밋한 검은 판이 순식간에 꽃병, 책꽂이, 과일그릇, 식판 등으로 탈바꿈하는 시연 장면이 기발하다.
반면 ‘장식’, ‘채색’, ‘비정형’ 등의 부스에서는 공예작품으로 착각할 만큼 자유분방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특히 주제 부스와 별도로 마련된 가에타노 페세의 작가 부스에서는 유쾌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거미처럼 여덟 개의 가느다란 다리가 있는 의자에 앉아 베수비오 화산 모양의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뽑아 마시는 가에타노 페세의 부엌을 보면, 기능주의와 기계미학에 입각해 제작된 불타우프의 시스템 부엌과 비교해 어느 것이 더 훌륭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기능주의와 표현주의에 입각한 디자인
점묘법으로 그림을 그린 듯 화려하게 장식한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1인용 소파와 제스퍼 모리슨의 소박한 철 파이프 의자 중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디자인 요소는 어느 한 기준만으로 평가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은 그들이 지닌 삶의 가치관과도 무관하지 않다.
본 전시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한불문화축제의 일환으로 개최됐으며, 연계행사로 4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국립현대미술관 대강당에서 프랑스영화 감상회가 열린다. 관람료는 일반 2천원, 18세 이하 1천원. 본 전시의 입장권으로 5월 5일까지 제1전시실에서 열리는 ‘젊은 모색 2002’전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자세한 문의는 02-2188-6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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