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제품 | 전시 | 공연

히드라에서 사이보그로 진화한 여전사, 이불

by 야옹서가 2002. 4. 5.

 Apr. 05. 2002
|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키치 이미지로 억압적 현실을 풍자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아온 이불 개인전이 열린다. 5월 5일까지 로댕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미공개작인 ‘히드라’와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수상작 ‘속도보다 거대한 중력’, 최근작인 사이보그, 몬스터 연작 등 7점이 출품된다. 또한 1989년부터 1996년까지의 퍼포먼스 비디오도 상영돼 이불 작품세계의 발전과정을 짚어볼 수 있다.

도발적 화법으로 억압에 대한 자각 일깨워
이불은 페미니즘 미술이 부재했던 한국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몸을 이용한 도발적 퍼포먼스로 여성문제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해왔다. 알몸으로 쇠사슬에 묶인 채 거꾸로 매달린 퍼포먼스 ‘낙태’(1989)는 이불식 직설화법의 대표적 예다. 특히 여성이 짊어진 편견과 억압은 퍼포먼스 ‘수난유감’(1990)에서 징그러운 촉수를 지닌 거추장스런 옷으로 표현됐는데, 이는 신화 속 괴물의 이름을 딴‘히드라’를 거쳐 최근의 ‘몬스터’ 연작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예를 들어 ‘히드라(모뉴멘트)’(1998)는 국적불명의 동양풍 복식을 걸친 작가 자신의 모습을 대형 풍선에 인쇄한 것이다. 여성의 억압을 상징하는 괴물 이미지는 풍선의 외형에서 은유적으로 표현됐지만, 작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서구의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에까지 문제의식을 확장시켰다. 또한 이 작품은 풍선이라는 가변적 소재로 기념비를 만듦으로써 미술관의 권위를 조롱하는 동시에, 관람자가 공기주입밸브를 밟아 작품 완성에 참여하면서 작품에 친숙해지도록 유도한다.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신체 이미지로 현실을 비판하려는 시도는 일본만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미래형 신체조각 ‘사이보그’(2001)와 ‘몬스터’(2002)로 이어진다. 9등신의 완벽함 속에 치명적 결손을 내재하거나, 생물체의 유기적 형태와 메카닉적 요소 등 대립적 요소를 함께 지닌 형상은 혼성문화가 지배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일상적 풍경에서 생경함 부각시킨 노래방 연작
 그러나 최근 이불의 행로는 페미니즘적 이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1990년대 초반의 현실과 달리 지금은‘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보다 많은 다른 개념을 배제한다고 작가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국내에 새롭게 소개되는 노래방 연작은 텍스트와 영상예술이 조합된 공감각적 체험에 초점을 맞췄다.

예컨대 1999년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했던 1인용 노래방 부스 ‘속도보다 거대한 중력’은 집단유흥의 장소인 노래방을 밀폐된 사적 공간으로 변화시켜 새로운 미적 경험을 창출했다. 테크놀러지의 관을 연상시키는 노래방 기기는 자막과 배경이 따로 노는 달짝지근한 팝송의 세계로 관람자를 이끈다. 일상의 이미지와 흘러간 팝송의 자막을 대치시킬 때 유발되는 기묘한 친숙함은 ‘아마추어들’, ‘송가’, ‘리브 포에버’ 등 노래방 3부작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전시 부대행사로 전시기획자 안소연 수석큐레이터의 강좌가 4월 12일 오후 2시에 열린다. 관람료는 일반 4천원, 초·중·고생 2천원이며 이불전 입장권으로 호암미술관에서 5월 12일까지 열리는 ‘격조와 해학: 한국의 근대미술전’도 연계해 관람할 수 있다. 월요일 휴관, 문의전화 02-2259-7781.

한편 로댕갤러리 전시일정에 맞춰 종로구 화동 pkm갤러리에서는 5월 3일까지 이불 드로잉전을 개최한다. ‘히드라’,‘몬스터’등 억압적 상황을 풍자한 신체 이미지의 변천과정을 볼 수 있으며, 시퀸으로 장식한 생선이 썩는 냄새까지 작품개념에 포함해 화제가 됐던 ‘화엄’의 에스키스도 대거 전시된다. pkm갤러리의 전시 관람은 무료이며, 문의전화는 02-734-946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