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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풍속화로 읽는 끈끈한 삶의 현장

by 야옹서가 2002. 4. 19.

Apr. 19. 2002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맞이해 7월 14일까지 ‘조선시대 풍속화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풍속화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신윤복·김홍도·김득신의 작품을 비롯한 16∼19세기 풍속화 1백 40여 점이 선보인다. 궁중·관아의 행사기록화, 문인들의 계회도와 사인풍속화 등, 기존에 풍속화의 범주에 넣지 않았던 작품들도 대거 소개됐다. 18세기 후반에 치우친 기존 풍속화를 넘어 다양한 계층의 생활사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출품작은 4가지 주제로 분류됐다. 유교적 질서가 지배하는 현장을 담은 ‘정치와 이상’, 사대부의 일상을 그린 ‘아취와 풍류’,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포착한 ‘생업과 휴식’, 감로탱화와 무속세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당사주책 등을 소개한‘신앙과 기복’ 이 그것이다.

고된 일상을 승화시키는 웃음의 미학
소개된 작품 중 단연 백미는 보물 527호로 지정된 김홍도의 풍속화첩이다. 신윤복, 김득신과 함께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김홍도는 이 화첩에서 시골마을 하나를 통째로 그림 속에 옮겨온 듯 평민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웃통을 벗어 던지고 새참을 먹는 일꾼들과 거리낌없이 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먹이는 아낙(‘점심’), 얼굴을 찡그린 훈장 앞에서 종아리를 드러내고 찔끔대는 학동(‘서당’), 안간힘을 쓰는 씨름꾼보다 흥이 오른 구경꾼들의 표정이 더 재미있는 씨름판(‘씨름’)……세심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묘사력에 일상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해학이 넘치는 작품이다.

풍속화에서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는 신윤복의 작품 중 ‘월하정인(月下情人)’(국보 135호)도 눈길을 끈다.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 야릇한 곁눈질로 서로를 바라보는 남녀의 발끝은 어느새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단순히 마주친 행인 사이가 아님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서슬 퍼런 유교적 규범도 남녀간의 내밀한 욕망 앞에서는 무색했던 듯, 야음을 틈타 은밀히 행해졌던 남녀간의 만남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양반부터 상민까지 다양한 계층의 삶
또한 이번 전시에는 서민생활을 다룬 풍속화 외에도 여유로운 삶 속에서 풍류를 즐겼던 사대부 계층의 생활을 묘사한 사인풍속화(士人風俗畵)도 소개됐다. 와유(臥遊)를 위한 기행사경(紀行寫經), 문인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契會圖) 등이 그것이다. 예컨대 작자미상의 1857년작 ‘금란계첩(金蘭契帖)’을 보면 수려한 경치를 찾아다니며 시를 짓고 술을 나눴던 사대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이 그림에서는 장죽을 문 양반들 사이에 고깔모자를 쓴 승려들이 끼어 시중드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억불숭유를 국가적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사회에서 양반들이 행차한다 싶으면 열일 제치고 달려나와야 했던 승려 생활의 애환을 엿볼 수 있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일반 700원, 19∼24세 400원. 초·중·고생 및 65세 이상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또한 4월부터 매월 첫째주 일요일은 ‘박물관·미술관 가는 날’로 지정돼, 모든 사람이 무료입장 가능하다. 문의전화는 02-398-5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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