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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빛과 어둠으로 그려낸 내면의 풍경-주명덕, 민병헌, 구본창

by 야옹서가 2002. 5. 3.

 May 03. 2002
| 주명덕, 민병헌, 구본창-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세 명의 사진작가가 한 자리에 모였다. 사간동 금호미술관전관에서 5월 23일까지 열리는‘주명덕·민병헌·구본창 사진전’에서는 세 명의 작가가 인물, 풍경, 자화상을 주제로 선별한 사진 30여 점을 선보인다.

콘트라스트가 낮아 어두운 느낌을 주는 로우 키(low key) 사진으로 한국의 자연을 담아온 주명덕은 안개 속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산줄기를 따라 그물처럼 깔려있는 나무의 잔가지, 어둑어둑한 산줄기 사이에서 강줄기가 흰 마직 리본처럼 어슴푸레 드러나는 그의 사진은 대상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고 한 겹의 어두움을 덧씌워 수묵화 같은 풍경 속으로 관람자를 몰입시킨다.

인체 같은 풍경, 풍경 같은 인체
손에 잡히지 않는 대상이 더 안타까운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주명덕의 사진은 담담하지만 한편으로 유혹적이다. 사람에 비유하면 첫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팔등신 미인보다 검은 베일을 쓰고 희미한 눈웃음을 짓는 여인에 가깝다고 할까. 이 같은 매력이 인물사진에 투영된 작품이 바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기 한 달 전 배우 오수미를 담은 뇌쇄적인 연작사진이다.

한편, 인간의 몸을 주된 화두로 삼은 민병헌은 서로 뒤엉킨 누드의 굴곡을 정밀하게 담아낸다. 성기를 맞대거나 몸을 겹친 벌거벗은 몸은 음모가 그대로 드러날 만큼 적나라하지만, 그의 사진은 도색잡지처럼 외설스럽지 않고 담백하다. 인화의 톤을 조절하거나 조명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추상화시켜 어렴풋한 형체만 남겨진 누드가 만들어낸 굴곡은 낮게 깔린 구릉을 연상시킨다. 그의 누드사진을 인물이 아닌 풍경사진이라 부르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욕망의 대상에서 주체로 변신하는 배우들
 또한 ‘굿바이 파라다이스’, ‘태초에’ 등 이른바 ‘만드는 사진’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선보였던 구본창은 이번 전시에서 스트레이트 사진만을 전시했다. 특히 인상깊은 것은 그가 촬영한 연기자들의 사진이다. 벌거벗은 상체에 청바지만 걸친 배우 이정재의 사진은 고감도의 필름을 사용해 거친 느낌을 살렸고, 검은 베일을 쓴 심은하가 빗물 젖은 창 너머로 응시하는 모습은 우수의 여왕이라 불릴만하다. 물고기를 두 손에 쥐고 정면을 응시하는 조재현, 방심한 자세로 담배를 빼어물고 누운 강수연 등 응시의 대상이었던 배우들이 등신대를 넘는 크기로 확대돼 관람객을 둘러싸도록 한 설정도 흥미롭다.

전시된 작품들은 복수제작이 가능한 사진의 특성상 희소성을 위해 에디션을 표시하고, 인화지에 엠보싱으로 낙관을 찍거나 사인을 하는 등 회화작품과 같이 사진에서도 작가의 사인이 보편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화지도 칼로 재단하는 방식과 함께 손으로 일일이 뜯어내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방식을 병행해 회화적 표현과 많은 부분이 닿아있다.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신정아씨는 전시취지문에서 “현대회화나 조각이 장르해체를 부르짖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방법으로 확장되고 변형되는 사진이 예술분야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그 방향을 모색하고자 본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 관람료는 일반 2천원, 학생 1천원이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전화 02-72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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