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0. 2002 | 5월 14일까지 관훈동 갤러리 보다에서는 제6회 ‘녹음방초 분기탱천’ 당선작 Reflection & Refraction전이 열린다. 갤러리 보다가 1997년부터 매년 주최해온 그룹공모전 ‘녹음방초 분기탱천’은 젊은 작가들이 선호하는 등용문 중 하나. 박지은, 안세은, 이주은, 주영신 등 4명의 공동작업으로 진행된 이번 전시는 작품의 개별적 아우라를 해체하고, 나아가 작가와 관람자의 역할을 모호하게 만드는 독특한 구성으로 눈길을 끈다.
아무도 마지막을 예측할 수 없는 연극처럼
Reflection & Refraction전은 2막으로 구성된 짤막한 연극을 연상케 한다. 그 연극의 제 1막에서, 서로 다른 소재를 갖고 작업해온 네 작가의 작품은 공동작업을 통해 하나의 개체로 융합된다. 예컨대 한 작가가 포춘 쿠키의 형태를 제공하면, 다른 작가는 그 위에 세포 드로잉을 그려 넣고, 이를 다시 플라스크 안에 넣어 폴리코트를 붓고 굳히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식이다. 이렇게 공동으로 제작한 1천여 개의 오브제는 투명비닐 백에 담겨 2층 전시장 벽의 3면에 다닥다닥 전시됐다.
보통은 이 단계에서 전시준비가 끝나고 작품 철수일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는 게 통례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은 전시를 오픈한 순간부터 새로운 국면을 띤다. 설치된 작품의 변형에 관람자가 개입하면서 제2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관람자는 전시된 작품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벽에서 떼어내고, 이를 가질 수 있다. 대신 작가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관람자의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 작가의 작품과 이를 소유한 관람자의 스냅사진이 등가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관람자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고 3층의 빈 벽면 중 자신이 원하는 곳에 직접 붙이면, 작품은 비로소 완성된다.
쇼핑하듯 작품 고르는 재미, 참여하는 즐거움
작가 박지은은 “전시가 끝날 때쯤 2층의 오브제들은 점점 비워지고, 3층은 관람객의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채워지는 게 원래의 의도”라고 밝히고, “작품 대신 받은 관람객의 사진들을 모아 또 다른 작업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생각해볼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 작가와 다른 작가의 작품 스타일이 융합되고, 기존 작품과의 뚜렷한 차별성이 작가의 창조력과 직결되는 미술계에서, 어느 한 명이 독단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이 작품은 역설적이다. 이는 창작자의 내면에 강박관념처럼 자리잡은 아우라에 대한 집착을 통렬히 풍자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전시에서 객체로 맴돌기만 했던 관람자에게 능동적 창조자의 역할을 맡긴 발상의 전환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갤러리 보다 측은 공모전 결과를 발표하면서 “4명 작가들의 개별적인 능력도 그러하지만, 작업과 전시과정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는 기획력이 돋보였다”고 당선 이유를 밝혔다. 본 전시의 관람은 무료, 자세한 문의는 02-725-6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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