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09. 2002 | 1971년 겨울, 중국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에서 탐사작업 중이던 한 사람이 땅속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불명의 기체를 발견했다. 기체에 불을 붙이자마자 푸른 불꽃이 솟구쳤다. 이는 지하무덤 속에 매장된 부장품이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소기(沼氣)로, 보존상태가 좋다는 증거. 2천1백여 년 전 조성된 마왕퇴 한묘(馬王堆 漢墓)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고대 중국의 내세관 담은 다채로운 부장품들 선보여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한·중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9월 29일까지 열리는 ‘마왕퇴 유물전’에서는 마왕퇴 한묘 부장품 3천여 점 중 1백76점을 선별해 소개한다. 1972년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한 마왕퇴 한묘는 기원전 2세기 전한시대의 대후 이창과 그의 부인 신추, 요절한 아들 등 3기로 구성된 가족묘지인데, “중국 북부에는 진시황릉이 있고, 남부에는 마왕퇴가 있다”고 할 만큼 그 사료적 가치가 높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유물 1백76점은 귀부인 신추의 미라, T형 백화(帛 :비단그림) 등 중국 측이 해외반출을 금지한 15점을 제외하면 모두 진품이다. 죽은 사람들이 저승에서도 생전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무덤에 생활도구 일습을 함께 묻었던 매장문화 덕에 진귀한 자료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발견된 부장품들은 그 질이 우수하고 종류도 다양해, 초기 한대 문명의 축약판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고고학적 의의가 각별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지칠화관, 시신을 덮는 T형 백화(帛 :비단그림) 등 중국의 내세관을 담은 부장품들은 아름다운 색채와 섬세한 묘사로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관 위에 덮여있었던 붉은빛의 T형 백화는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인도하는 일종의 비의(飛依)로, 전체 길이만 205센티미터에 달한다. 천상·지상·지하세계의 세 부분으로 묘사된 백화에는 태양과 까마귀, 열 개의 태양이 깃든 부상수(扶桑樹), 생명과 죽음의 신, 깃털선인, 거대한 뱀 등 상징적 형상들이 배치돼 고도의 신화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피부의 모공까지 생생히 보존된 2천1백여 년 전 귀부인의 미라
마왕퇴 한묘에서 출토된 유물 중 압권은 귀부인 신추의 미라다. 사망한 지 2천1백여 년이 흘렀음에도 손으로 만지면 탄력이 느껴질 정도로 피부가 부드러웠고, 거의 부패가 되지 않아 화제가 됐다. 신추의 모습이 얼마나 생생했던지, 이를 본 중국인들이 “왜 빨리 119 구급대를 보내 소생시키지 않았는가?”하고 우스개 소리를 던질 정도였다. 시신은 20겹의 옷으로 잘 싸고 4겹의 관에 담았는데, 이를 다시 5톤의 숯벽이 감싸고, 묘실 사방은 백고니로 막았다. 이 같은 처리로 외부공기, 지하수 등의 유입을 막고 멸균효과를 얻은 탓에 시신이 부패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뿐, 아직도 상세한 방부처리 과정에 대해서는 신비에 싸여있다.
그밖에도 《주역》, 《음양오행》과 같은 백서(帛書:비단책), 죽간(竹簡:대나무책), 화장품이나 음식이 담긴 갖은 칠기, 의복, 흙으로 만든 모조화폐 등에서 당시 부유했던 귀족계급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주인 무덤에 시종을 산 채로 파묻는 순장 풍습을 대신해 묻힌 목용의 차림새에서 당시의 의복양식을 유추할 수 있을뿐더러, 문헌으로만 그 존재가 전해졌던 악기 우(芋), 금(琴), 슬(瑟) 등의 실제 모습이 확인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시 관람료는 성인 9천원, 중고생 6천원, 5세 이상 어린이 5천원이다(9월 2일 휴관). 문의전화 02-587-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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