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16. 2002 | 2002년 한일월드컵의 여파는 한 달이 지난 지금에도 쉬 가라앉지 않는 듯하다. 오프사이드가 뭔지도 몰르는 ‘축맹’들조차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선수들을 응원했고, 폐쇄적인 방 문화에 익숙했던 젊은이들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뛰쳐나와 광장의 열기를 체험했다. 심지어 정몽준 축구협회장이 유력한 대선 후보로 언급되는 현상도 월드컵과 무관하지 않다.
쌈지스페이스에서 8월 20일까지 열리는 ‘로컬 컵’전은 월드컵 이후, 이처럼 한국사회 구석구석에서 불거진 제반 사회현상을 되새김질하는 전시다. 김창겸, 이중재, 김태헌, 박불똥, 소윤경, 조습, 임흥순 등 참여작가 13명은 무거운 분위기로 흐르기 쉬운 전시를 경쾌한 유머와 신랄한 풍자로 그려냈다.
광장문화의 재해석과 매스미디어의 괴력 설파해
먼저 대다수의 작가들이 다룬 주제로는 ‘붉은 악마’의 거리응원과 함께 부각된 광장문화를 꼽을 수 있다. 빨간 색이라면 무조건적인 배척했던 레드컴플렉스는 종적을 감추고, 애국으로 온몸을 감싼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상황에 대해 다양한 논점이 오갔다.
예컨대 여러 유형의 인물로 분장하고 사진을 찍는 작업을 주로 해온 조습은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패러디한 사진 ‘조습을 살려내라’에서 시청 앞 광장의 해방구적 이미지가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식으로 변용되는지 다뤘다. 즉 과거 학생운동현장의 대명사로 이용됐던 광장이 월드컵을 매개로 집단적 놀이문화의 장으로 연결되면서 전혀 다른 공간적 맥락을 띤다는 것이다.
매스미디어의 영향에 대해 예리한 비판을 던지는 작가들도 눈에 띈다. 김창겸은 과열된 월드컵 열기가 매스미디어에 의해 증폭된 것임을 주장하는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을 선보였다. 이중재 역시 월드컵 관련 영상과 섹스 장면을 교차시킨 영상작업으로 과거의 3S정책(스포츠·섹스·스크린)이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설파했다. 또한 참여미술적 사진꼴라주로 유명한 박불똥은 월드컵 기간동안 배달된 신문에서 이미지를 추려내고 짜깁기해 매스미디어의 허상을 풍자했다.
‘대∼한민국’의 문화코드를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
전시기획을 맡은 가나아트컨설팅 공공미술팀장 김준기는 기획취지문에서 “미술가들의 감수성을 통해, 월드컵의 글로벌한 효과를 로컬하게 재해석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문화적 코드를 점검하고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자 본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축구는 축구일 뿐 오버하지 말자’는 한 작가의 말처럼 축구는 그저 스포츠일 수도 있지만, 몰려든 붉은 인파 속에서 얼핏 비치는 국가주의의 그림자, 매스미디어의 위력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전광판 등은 월드컵의 여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연이은 승리소식에 묻혀 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압사사건이 흐지부지 무마된 일 등은 그 단적인 예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무료. 8월 31일까지 쌈지스페이스 1층 로비에서는 사진ㆍ영상전 ‘인물로 본 한국 퍼포먼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문의전화 02-3142-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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