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제품 | 전시 | 공연

물류의 형식을 빌린 미술담론의 장-컨테이너전

by 야옹서가 2002. 8. 9.

 Aug. 09. 2002
|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이뤄지는 물류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컨테이너. 1920년대부터 경제적이고 안전한 운송수단으로 각광받아왔지만, 오늘날에는 비용절감 차원을 떠나 서로 다른 문화권 국가 간의 교류를 맡는 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타 문화권의 사람들이 물류의 움직임을 따라 자연스럽게 타 국가와 교류하는 것.

대학로에 위치한 마로니에미술관에서 8월 25일까지 열리는 문화예술진흥원 자체기획전 ‘컨테이너’전은 어떤 대상을 이처럼 담고, 옮기고, 내려놓는 컨테이너의 속성에 착안했다. 한국 화단의 중진 격인 40∼50대 작가를 대상으로 2001년에 이어 두 번째 시행되는 이번 전시에서 보다 구체적인 주제어를 뽑는다면 ‘유목’과 ‘이산’이 될 것이다.

현대미술의 ‘유목’과 ‘이산’ 다뤄
김주영, 박소영, 박이소, 안규철, 윤진미, 정재철, 조덕현, 조숙진, 최정화 등 9명의 참여작가 중 김주영(프랑스), 윤진미(캐나다), 조숙진(미국) 등 해외거주작가를 비롯해 대부분 해외유학파 출신이라, 떠돎의 정서에 익숙하면서도 영상, 설치, 조각 등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조형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공통점이다.

참여작가의 머리와 마음 속에 떠도는 개념들이 오브제의 형태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집적되는 단계를 ‘짐 싸는 단계’로 비유한다면, 서로 다른 문화적 체험 사이를 잇는 작가 개개인의 경험은 컨테이너의 이동능력에 견줄 수 있다. 중견작가들이 구축한 관념의 틀은 컨테이너의 프레임만큼이나 견고하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짐’들은 전시장에 작품이라는 형태로 부려진다. 간혹 이 ‘짐’들은 예술 영역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타 장르와 상호교류의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조덕현의 컨테이너 작업 ‘이서국으로 돌아가다’는 적극적으로 타 장르간의 교류를 시도해 눈길을 끈다. 청동기시대-철기시대 사이에 경상북도 청도군에 실존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이서국을 상상으로 복원한 이서국 프로젝트는 현대미술, 문학, 고고학 등이 적절하게 맞물려 가상과 실제 사이의 벽을 교묘하게 무너뜨린다. 이서국의 유물로 설정한 개의 조상들을 흙 속에 묻고, 이를 다시 파헤치는 발굴과정이 특히 그렇다. 발굴한 개 조상들을 컨테이너 박스에 담아 다시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행위는 일종의 발굴보고서와 같다.

세계화와 지역적 정체성 사이의 글로컬리즘
 보다 서정적인 작업은 김주영의 설치작품 ‘바라나시에서 온 물고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계 오지를 떠돌며 제의적인 퍼포먼스를 벌여온 작가는 화장과 종교의식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서의 체험을 작품에 옮겼다. 화장된 망자의 뼛가루는 물 속에서 정화되는데, 작가는 이 갠지스강의 정화작용을 물고기의 형태로 표현한 것. 물고기는 곧 망자의 넋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래바닥을 만들어 투명수지로 만든 물고기를 안치하고, 주변에 마른 꽃을 뿌린 후 촛불을 켜 망자의 넋을 달래는 작업은 엄숙하면서도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마로니에미술관 큐레이터 김혜경씨는 전시취지문을 통해 “우리가 찾아야 할 미덕은 결국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도 지역적 아이덴티티를 적극 추구하는 소위 글로컬리즘(glocalism)에 있다”고 설명했다.

본 전시의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7시. 입장료는 무료다. 자세한 문의는 02-760-46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