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16. 2002 | 일요일에 인사동 거리를 걷다보면 ‘기인열전’이라 할 만큼 독특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혁필로 울긋불긋한 문자그림을 그려주는 할아버지, 엿을 실처럼 가늘게 뽑아 ‘용 수염’과자를 만드는 청년, 누더기 승복을 입고 마네킹 퍼포먼스를 하는 아저씨 등은 인사동 터줏대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다 올 여름부터는 행인들에게 티셔츠 그림을 그려 나눠주는 할아버지까지 가세했다.
세상에서 단 한 벌뿐인 환경사랑 티셔츠
한데 인사동의 새얼굴 ‘티셔츠 할아버지’가 그려 내놓은 티셔츠 그림들이 예사롭지 않다. 초록색 물감을 붓에 적셔 일필휘지로 그려나간 드로잉에서는 숨은 필력이 엿보인다. 그림과 함께 ‘everyday eARThday!’, ‘지구사랑’ 같은 환경 친화적 메시지도 담겼다. 이쯤 되면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앞치마를 두른 채 초록색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 사람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경까지 인사동에서 만날 수 있는 ‘티셔츠 할아버지’는, 1991년부터 ‘그린디자인’ 운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온 윤호섭 교수(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다. 그가 그려주는 티셔츠 그림 역시 환경사랑을 주제로 시작한 거리이벤트다. 2002년 5월 19일부터 별다른 홍보도 없이 시작했지만, 하루에 그려 나눠주는 티셔츠가 60∼70벌에 달할 만큼 반응이 좋다. 티셔츠는 모두 대가없이 무료로 나눠준다.
공사중인 건물 앞 비계를 옷걸이 삼아 게릴라전시 형식으로 치러진 이번 전시는 놀이하듯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환경친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인체에 해로운 화학페인트 사용을 지양하고 천연페인트로 그림을 그리거나, 버려진 컬러잉크 카트리지를 티셔츠 앞판에 두드려 알록달록한 하트 모양을 만드는 등, 재료 사용부터 환경사랑 실천을 염두에 뒀다.
천연페인트, 버려진 잉크카트리지 등 환경친화적 재료 사용해
담긴 그림도 초록색 선으로 웃는 사람의 얼굴을 간략하게 나타낸 ‘그린스마일’을 비롯해 돌고래, 숲, 바다 등 환경의 소중함을 부각시키는 내용이다. 특히 월드컵 기간을 맞아 인사동을 찾은 외국인들이 환경 메시지를 자신의 모국어로 그림 위에 남기면서 독특한 타이포그래피가 창조돼, 티셔츠 그림은 윤호섭 개인의 작품만이 아니라 이벤트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공동작품이 됐다.
환경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그래서 일상 속에 환경사랑의 정신을 심는 윤호섭의 티셔츠 전시는 더욱 뜻깊다. 그에게서 티셔츠 그림을 선물로 받은 한사람 한사람이 걸어다니는 환경메시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운동이든, 거창한 ‘∼주의’보다 ‘한 사람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환경티셔츠 게릴라전시는 여름티셔츠 시즌이 끝나는 8월까지만 한시적으로 진행되지만, 작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그린캔버스’(http://greencanvas.com)에 접속하면 보다 많은 환경관련 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 윤호섭은 인사동 게릴라전시에 이어 올 10월 경 일본 동경 아오야마의 환경정보센터에서 환경메시지전을 개최할 계획이다.
세상에서 단 한 벌뿐인 환경사랑 티셔츠를 갖고싶다면, 캔버스 대용이 될 흰 티셔츠를 준비해 이번 주 일요일 인사동에 나가보자.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 내려 인사동 입구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윤호섭 교수를 만날 수 있다. 문의는 ‘그린캔버스’ 내 게시판으로 하면 답글을 받아볼 수 있다.
윤호섭 교수의 ‘그린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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