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01. 2002 | 서울 순화동 호암갤러리에서 2003년 2월 2일까지 ‘미국현대사진 1970-2000’전이 열린다. 본 전시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1만2천여 점의 작품 중 셰리 르빈, 리처드 프린스, 신디 셔먼, 루카스 사마라스, 낸 골딘, 로버트 메이플소프, 샐리 만, 윌리엄 이글스턴 등 40작가의 작품 113점을 엄선한 것으로, 1970년대 이후 미국현대사진의 흐름을 본격적으로 일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1960년대 후반부터 사진전문화랑과 수집가들이 대거 등장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과 페미니즘의 약진 등 사회적 현상이 새로운 사진예술의 이론적 배경으로 반영되면서, 사진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현실의 재현을 넘어 대안적 예술매체로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의 뉴컬러, 뉴토포그래픽스, 1980년대의 구성사진, 1990년대의 포스트리얼리즘 사진 등은 현대사진이 밟아온 실험적 행보의 빛나는 결과물이다.
1970년대 이후 사진예술의 현재를 보여주는 전시
본 전시의 소주제로 설정된 현실(The Real), 정체성(Identity), 일상(The Domestic)의 세 주제는 비단 사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 속에서 빈번히 언급되는 요소다. 먼저 ‘현실의 재현’ 문제를 다룬 한 예로 셰리 르빈의 ‘워커 에반스 모작’은 유명한 사진가 워커 에반스의 흑백사진을 모사했지만, 겉으로 보기엔 원본과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가 없다. 오토바이 잡지에서 임의로 추출한 여성들의 사진을 재촬영하고, 현장에서 찍은 사진처럼 재편집한 리처드 프린스의 사진이나, 돈을 주고 산 모델을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게이처럼 연출한 필립-로카 디 코르시아의 사진은 실재하는 현실과 조작된 현실의 차이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이는 설명 없이는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고, 작품보다 작품의 제작과정 설명이 더 중요해진 현대미술의 단면을 풍자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 역시 현대사진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로, 몸 담론과 밀접하게 연계돼 여성, 동성애자, 흑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발언을 담았다. 예컨대 단조롭게 반복되는 여성의 일상을 인형으로 표현한 로리 시몬즈, B급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스테레오타입으로 분장한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에서 시작해 성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마네킨 사진으로 건너온 신디 셔먼, 동성애자 집단 속으로 스며들어가 그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그려낸 낸 골딘 등은 그 대표적 예다. 잡지광고를 연상케 하는 바바라 크루거의 홀로그램 사진, 루카스 사마라스의 파노라마 사진 등은 형식면에서도 독특해 눈길을 끈다.
현실, 정체성, 일상의 세 주제로 나뉘어
이밖에도 1970년대 ‘뉴토포그래픽스’ 전을 효시로 미국의 사회문화적 풍경을 가까운 가족, 주변환경 등의 일상적 풍경 속에 담아낸 로버트 아담즈, 윌리엄 이글스턴, 조엘 스턴펠드, 토드 히도 등의 작가군과 접할 수 있다.
본 전시에 마련된 부대행사도 푸짐하다. 11월 7일, 14, 21일 오후 5시 호암갤러리 2층 비디오실에서 세 차례에 걸쳐 갤러리 강좌(1회 진동선, 2회 이영준, 3회 이경률 진행, 선착순 40명)가 열리며, 12월 18일 오후 3시에는 사진작가 구본창과 함께 하는 전시장 투어가 열린다. 12월 29일까지 전시를 관람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공모작품도 접수한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일반 4천원, 초·중·고생 2천원(월요일 휴관). 문의전화는 02-771-2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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