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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캠페인을 보면 사회가 보인다 - ‘표어·포스터·전단 100년’전

by 야옹서가 2003. 1. 17.

Jan. 17. 2003
| ‘쥐를 잡자’ 포스터와 명찰, 학생이고 직장인이고 할 것 없이 장려했던 국민체조, 빨간 두더지를 망치로 때려잡는 반공포스터, 밥 짓기 전 한 숟가락씩 덜어 모은 쌀로 저축을 했던 절미운동, 혼식을 했는지 안 했는지 조사하는 도시락검사, ‘둘도 많다’던 가족계획표어… 이렇게 단편적인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한국근현대사의 단면을 되짚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시립대학교박물관에서는 6월 30일까지 특별기획전 ‘표어·포스터·전단 100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구한말 애국계몽운동, 일제시대 황국신민화정책, 위생보건운동, 산아제한운동, 새마을운동, 반공방첩운동, 선거운동벽보에 이르는 한국 근대화의 궤적을 빛 바랜 포스터와 전단, 각종 생활사 자료 3백여 점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표어나 포스터 외에도 절미통, 쥐덫, 종두접종기구, LP레코드 등 각종 생활사 자료를 비치하고, 박물관 내에 가족계획을 상담하던 보건소 세트를 짓는 등, 관람자들이 옛 시절을 되살리며 입체적인 관람을 할 수 있도록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국민계몽 의도 담은 표어와 포스터
 근대화 초기부터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 시작한 캠페인은 포스터, 표어, 담화문 등의 수단을 이용해 교육수준이 낮은 국민을 계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각종 표어는 시대상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가래침 뱉는 곳에 결핵균 날뛴다’, ‘기생충 박멸하여 내건강 내가찾자’와 같은 표어는 이, 벼룩, 기생충, 결핵균 등으로 인해 국민위생상태가 좋지 않았던 당시의 모습을 반영한다. 인분뇨의 저장법, 축산농가의 자급사료인 엔시레이지 만드는 법 등 농가생활을 지도하는 포스터는 마치 제품사용설명서처럼 상세한 설명과 그림이 곁들여진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채롭다.

1960년대 장려된 절미운동 관련 캠페인도 젊은 세대들에겐 생소하지만, 주식인 쌀이 부족하고 미국의 원조물품인 밀가루를 소비해야했던 당시에는 절실한 문제였다. 이는 혼분식을 장려하고, 쌀을 덜어놓을 수 있는 절미통을 비치시키는 등 식생활에서조차 개인의 선택을 넘어선 국가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현장이기도 했다.

시대상을 비춰주는 거울 
1960년대 초 시작된 가족계획사업의 변천사도 흥미롭다. 1960년대 중반 ‘세 살 터울로 세 자녀만 35세 이전에 낳자’는 ‘3, 3, 35’ 캠페인이 1970년대의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기르자’로, 1980년대에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과 ‘둘도 많다’는 산아제한운동 캠페인으로 이어지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인구부족으로 출산을 장려해야할 상황인 만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한편 겉으로 드러나는 캠페인의 목적은 국민생활향상에 있었지만, 은근한 권력의 시녀 노릇을 맡기도 했다. ‘구국의 유신이다 새역사를 창조하자’와 같은 표어는 박정희대통령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대표적 사례였다. ‘간첩잡아 상금타니 나라좋고 나좋다’ 등의 표어와 초등학교 교과서 지문에까지 등장하는 노골적인 반공의식은 냉전시대의 흔적을 보여준다.

본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 30분까지이며, 토요일은 1시까지다. 일요일은 휴관. 자세한 문의는 02-2210-2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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