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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만화체로 풀어본 세상의 사랑과 폭력 - ‘키스 헤링’전

by 야옹서가 2003. 1. 17.

 Jan. 17. 2003
| 천안시 신부동에 위치한 아라리오갤러리에서는 확장 재개관을 기념해 2월 16일까지 ‘키스 헤링’전을 연다. 낙서 같은 만화체 그림으로 유명한 헤링은 각종 단체전을 통해 간헐적으로 소개된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대대적인 개인전은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셈이다. 본 전시에서는 헤링의 회화작품 외에도 종이를 오려낸 듯 간략화한 사람 형상의 채색조각, 작업과정 기록사진 등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거리의 낙서화가에서 뉴욕 예술계의 수퍼스타로
골칫거리 문제아에서 뉴욕 지하철 구석구석을 게릴라처럼 누비며 낙서화를 그려대는 거리화가로, 나아가 가장 대중적인 현대미술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키스 헤링. 에이즈로 인해 1990년 31살의 나이에 사망한 탓에 활동기간은 10년 안팎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특히 깜짝 놀랐을 때나 당황했을 때, 움직임을 표현할 때, 또는 빛나는 사물을 그릴 때 흔히 쓰는 ‘반짝반짝 표시’는 헤링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을 만큼 유명해졌다. 

만화처럼 간결한 선으로 묘사된 사람, 개, 우주선 등이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고, 원색적인 색채로 채색된 헤링의 그림은 겉으로 보기에는 명랑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단순하고 유쾌한 겉모습과 달리 그의 그림 곳곳에는 사회적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이 녹아있다. 자신의 그림에 ‘침묵은 죽음과 같다’고 새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의 그림 속에서 두발로 걷거나 말하는 개가 때로 변변찮은 인간들보다 훨씬 두드러지게 묘사되는 것 역시 풍자적인 제스처로 볼 수 있다.

특히 그는 동성애자로서의 성적 정체성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그림으로 에이즈반대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예컨대 발기된 성기를 쥐고 흔들거나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남자, 개처럼 엎드리고 항문성교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던가, 밧줄이 성기를 연상시키는 뱀의 모습으로 돌변하는 것 등은 헤링의 성적 취향과 무관하지 않다.

유쾌함으로 포장한 직설적 메시지
이번 전시에 소개된 17점의 ‘The Blueprint Drawings’ 연작은 옆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이어지는 헤링식 이야기 전개법을 보여줘 흥미롭다. 그중 한 그림을 살펴보자. 

천장에서 늘어뜨린 밧줄에 두 손이 묶인 채 매달린 흑인을, 한 백인이 몽둥이로 찌른다. 흑인의 가슴팍 한가운데 구멍이 뻥 뚫리고 이 구멍은 점점 커지는데, 어느 순간 흑인의 손을 묶었던 밧줄은 다시 몽둥이로 변한다. 한편 백인은 스르륵 개로 변해 흑인의 몸에 난 구멍 한가운데로 머리를 들이밀며 고리 뛰어넘기 묘기를 한다. 이렇듯 연결되는 초현실적 이미지는 마치 변화무쌍한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이번 전시의 관람료는 성인 2천원, 학생 1천원. 관람시간은 정오∼오후 8시까지다. 헤링 외에 안젤름 키퍼, 화랑주인 시 킴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상설전시중인 데미안 허스트의 ‘Hymn’도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자세한 문의전화는 041-55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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