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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사물의 심층으로 들어가 또 다른 세계를 본다 - 아니쉬 카푸어

by 야옹서가 2003. 6. 6.

 June 06. 2003
| 소격동에 위치한 국제갤러리는 6월 29일까지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49) 개인전을 개최한다. 인도 뭄바이 태생으로 18세 때 런던으로 이주한 카푸어는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프레미오 2000상을, 1991년에는 터너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한국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는 실내전시에 적합한 소형 작품을 중심으로 7점을 선보인다. 기존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던 강렬한 원색 대신 자연석의 은은한 색상이 주를 이루는 것도 한 특징이다.

색채와 요철의 차이를 이용한 공간지각의 마술
 카푸어는 대리석, 사암, 합성수지, 스테인리스 스틸, 안료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능수능란 소화한다. 자연 그대로의 자유곡선을 보여주는 형상부터 인위적인 가공흔적이 풍기는 기하학적 도형에 이르기까지, 그가 다듬어낸 형상 역시 다양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색채와 요철을 이용한 공간지각실험이다. 특히 도려내진 부분, 빈 공간과 같이 소홀하기 쉬운 부분은 부차적 요소가 아닌 주인공이 된다. 카푸어의 조각에서 3차원적 공간이 납작한 평면으로 보이거나, 움푹 패인 구멍이 볼록한 구체처럼 보이는 마술 같은 순간을 경험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예컨대 돌 조각 ‘신탁’은 표면이 고르지 않은 자연 상태의 사암 덩어리를 가져다 놓고, 칼로 두부 자르듯 매끈하게 다듬은 정면에 검푸른 안료로 직사각형을 그려 넣은 형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납작하게만 보이는 직사각형의 실체는 사암 덩어리의 내부를 파내고 균일하게 채색한 것이다. 어두운 빛깔로 인해 공간의 깊이를 전혀 짐작할 수 없어 마치 평면을 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벽이라고 믿었던 채색된 공간에 손을 디밀었는데 쑥 들어간다면 얼마나 놀랄까. 카푸어의 조각이 그렇다.

사물의 심층으로 파고드는 조각
 한편 또 다른 작품 ‘뒤집어진 세상’역시 형상은 부차적 요소가 되고, 거울처럼 외부세계를 반영하는 사물의 표면이 주 요소로 등장한다. 오목거울처럼 멀리서 보면 사물이 거꾸로 비치고, 가까이 다가가면 다시 아래위가 반전돼 나타나는 형상이 흥미를 자아내는데, 이로써 관람객이 조각의 형상보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은빛 표면에 시선을 집중하게끔 한다.

단순하면서도 명상적인 카푸어의 작품은 한 형상 안에 다층적 구조가 존재하는 형식적 특성을 지닌다. 이는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의 사상에서 많은 부분 영향을 받은 것이다. 융이 인간 의식의 심층을 찾아 자아의 껍질을 깨고 그림자를 발견해내며 궁극적인 자기 모습을 발견하듯, 카푸어 역시 사물의 심층으로 파고 들어가 또 다른 모습을 이끌어낸다.

본 전시의 입장료는 일반 3천원, 학생 2천원이다. 관람시간은 오전10시∼오후6시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전화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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