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04. 2003 |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는 9월 7일까지 설치작가 서도호(41) 개인전을 개최한다. 작가는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에 선정된 것을 비롯해 서펜타인 갤러리, 시애틀미술관 전시를 거치며 주로 국제미술계에서 활동해왔지만, 한국에서 열리는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 전시에서는 7만여 개의 군대 인식표를 이어 붙여 속이 텅 빈 갑옷을 만들었던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 ‘SOME/ONE’(2001)을 비롯해 2003년 신작인 ‘PARATROOPER-1’, ‘KARMA’등 총 6점의 설치조각을 선보인다.
서도호의 작품을 보면, 아버지 서세옥 씨의 뒤를 이어 한때 동양화를 전공했던 작가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공간을 다루는 솜씨가 치밀하다. 특히 하나의 개체만 동떨어져 있었다면 관심을 끌지 못했을 미미한 대상을 대규모로 집적해 독특한 관계의 의미망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멀리서 보면 단순하고 간결한 미니멀리즘 조각에 가깝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웅성대는 치밀한 개체들의 움직임이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끈다. 그의 작품은 가히 ‘작은 것들의 스펙터클’이라 부를만하다.
가까이, 혹은 멀리 - 거리의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작품
그 단적인 예가 2층에 설치된 작품‘FLOOR’(1997∼2000)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평범한 유리바닥일 뿐이지만, 막상 유리 위로 한발 두발 내딛다 보면 발아래 꼬물꼬물 모인 수많은 형상의 정체가 눈에 들어온다. 기껏해야 키가 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을 작은 인형들이 양손을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보며 유리판을 떠받치고 있다.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을 상징하듯 서로 다른 피부색을 한 인형의 개수만 18만 개에 달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엄청난 지 짐작할 수 있다. 관람객은 비록 인형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뚫어지게 올려다보는 사람의 형상을 밟고 있다는 걸 알고 당혹스러워하지만,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었을 뿐 만지지도 못했던 ‘작품’을 발로 밟을 수 있음에 놀라고 즐거워하기도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FLOOR’의 사방을 둘러싼 벽의 정체다. 베이지색 벽지로 도배된 줄로만 알았던 벽에는 새끼손톱보다 더 작은 크기의 증명사진이 벌집구멍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빽빽하게 박혀 있다. 작가가 틈틈이 모았다는 얼굴사진 4만 여 장을 스캔해 벽지로 제작한 ‘WHO AM WE’(2000)는 작품과 작품이 아닌 것의 사이를 모호하게 하면서 집단 속에서의 익명성을 체험할 수 있게끔 한다.
소인국과 대인국을 오가며 방랑하는 걸리버
한편 3층에 선보인 신작 ‘PARATROOPER-1’은 앞서 살펴본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듯 불특정 다수의 타인과 개인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작가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붉은 실로 낙하산 위에 새기고, 그 실의 다른 쪽 끝을 하나로 모아 조그만 군인조각이 잡아당기고 있는 형상의 작품으로,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진 낙하산 줄을 생명줄처럼 힘껏 부여잡은 군인의 모습은 자못 비장하다. 서명으로만 존재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과 줄다리기하듯 팽팽하게 대치한 군인은 창작 역시 삶을 위한 투쟁의 한 단면임을 보여준다.
작가는 절대적이고 거대한 단 하나의 힘과, 혼자서는 무력하지만 함께 있음으로 인해 강해지는 다수의 힘이 충돌할 때의 충격을 적절히 이용해 개인과 집단의 문제, 친밀함과 낯설음, 거주자와 이방인으로서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어쩌면 그는 마치 소인국과 대인국을 번갈아 가며 방랑하는 걸리버와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현대적 의미의 유목민으로서, 세상을 보는 이방인의 눈을 늘 유지하면서 말이다.
본 전시의 관람시간은 오전 11시∼오후 7시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일반 3천원, 학생 1천 5백원이다. 문의전화는 02-733-8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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