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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술에 취하고 그림에 취하다 - 예술가의 愛술이야기전

by 야옹서가 2003. 7. 25.

 Jul. 25. 2003
| 빈센트 반 고흐, 툴루즈 로트렉, 윌렘 드 쿠닝, 프란시스 베이컨…얼핏 보기엔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이름들이지만, 이들의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술에 탐닉했다는 점이다.
가난했던 탓에 싸구려 압생트를 즐겨 마신 반 고흐는 압생트의 독성 때문에 적록색맹이 됐다는 설이 전해지며, 물랭루즈의 터주대감 툴루즈 로트렉도 압생트 중독의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간질증세로 괴로움을 겪었다. 베이컨은 그림을 시작하기 전 의식처럼 술을 마시는 것이 예사였고 윌렘 드 쿠닝은 만년에 알콜중독으로 힘겨워하기도 했다. 이렇듯 예술가는 현실의 고난을 잊기 위해, 혹은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혹은 동료들과 어울리기 위해 술을 마셨다.



작가의 개성 닮은 술 이야기
9월 17일까지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는 이처럼 밀접했던 예술가와 술의 관계에서 착안한 기획전 ‘예술가의 愛술이야기’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 잔의 유혹, 욕망의 해방구, 중독의 상처 등 3장으로 나뉘어 진행되며, 방정아, 안창홍, 이흥덕, 김정욱, 소윤경, 황주리 등 17명의 작가가 참여해 경쾌한 필치로 그려냈다. 

작가들이 작품 속에 등장시킨 술의 이미지는 묘하게 작가의 개성과 닮아 있다. 우선 가장 서민적인 술이라는 한 잔의 소주와 관련된 기억을 살펴보자. 대표적인 것이 방정아의 풍자적인 쓸쓸한 웃음을 담은 그림이다. 그의 그림 속에서 소주잔에서 흘러내린 물은 어느새 눈가를 스치고 흘러 내려가면서 술인지 눈물인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소윤경 역시 연기 자욱한 고깃집에서 머리를 잃어버리고 빈 옷만 갑옷처럼 공허하게 걸친 채 술잔을 주고받는 소시민의 모습을 그로테스크하게 담았다.

한편 황주리는 신작에 종종 등장하는 한 잔의 와인처럼 상큼하고 세련된 유머가 깃든 그림을 들고 나왔다. 사진 위에 트레이드마크처럼 익숙해진 눈을 그려 넣고, 여러 가지 술과 사람들의 모습이 결합시켜 술독에 빠진 사람을 나타낸 모습이 장난스럽기 그지없다.

술 없이도 취할 수 있는 그림
술의 이미지를 전혀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취한 듯한 느낌을 전달하는 작품도 눈에 띈다. 사실적이면서도 기괴한 눈동자를 가진 인간군상들로 주목을 끌었던 김정욱은 이번 전시에서 눈동자의 홍채 모양이 서로 달라 마치 두 개의 우주를 눈 속에 담은 듯한 초상화를 들고 나왔다. 윤유진 역시 눈동자로 말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옵아트와 키네틱 아트의 요소를 결합한 설치작품으로 술 취했을 때 나타나는 시각적 혼돈을 적절히 표현했다. 

전시를 다 보고 나면 다음 문제를 맞춰보시라. 이외수의 《감성사전》(동숭동)에서 발췌했다는 힌트를 주지 않아도 전시를 주의 깊게 봤다면, 아니 이 글을 건성으로 한번 쓱 읽어보기라도 했다면 누구나 맞출 수 있는 문제다. 이 술은 무슨 술인가?

“술 중에서는 가장 독한 술이다. 영혼까지 취하게 한다. 예술가들이 숙명처럼 마셔야 하는 술이다. 모든 예술 작품은 그들의 술주정에 의해서 남겨진 흔적들이다. 거기에는 신도 악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아름다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본 전시의 입장료는 1천원이며, 배상면주가에서 협찬한 산사춘을 무료 시음할 수 있는 코너도 준비된다. 월요일과 추석연휴에는 휴관한다. 문의전화는 02-736-4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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