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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움직이는 드로잉의 세계 - 클레가 영상설치전

by 야옹서가 2003. 7. 18.

 Jul. 18. 2003
| 인사동에서 열리는 전시의 수명은 대략 일주일이다. 작품판매보다 전시장 대관 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에 일주일 단위로 전시장을 계속 ‘돌려야’ 수지 타산이 맞는다. 미술관 급 정도가 되면 넉넉잡고 한 달에서 두 달 전후를 전시공간으로 쓸 수 있지만, 주로 해외 대가들이나 국내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다소 장황하게 대관일정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건, 막상 작은 전시공간에서 하는 재미있는 전시를 찾아내도 부커스에 소개할 때쯤이면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왕에 할거면 다른 매체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공간을 찾아 소개하고 싶고, 전시가 끝나기 전에 독특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그런 의미에서 서울 곳곳에 숨은 대안공간에서 열리는 전시는 늘 관심대상이 된다. 작가 지원에 초점을 맞춘 비영리 대안공간에서는 대관사정이 좀 나아서 2주 내지 한 달 정도 전시를 여는 데다, 기상천외한 작품들을 들고 나오는 작가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서다.

단순함 속에 숨은 재치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대안공간 루프에서 8월 1일까지 열리는 클레가(Klega) 설치영상전도 대안공간전시 중 하나다. 주한영국문화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서울특별시 공동후원으로 열리게 된 이번 전시에서는, 건성으로 쓱 훑어보고 나온다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재미가 숨어있다.

일단 계단을 내려가 지하에 있는 전시장에 들어서면, 벽면에 비행기를 닮은 두 점의 드로잉이 딸랑 그려져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엥, 이게 뭐야’싶지만,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가까이 다가가 보자. 벽에 검은 선으로 쓱쓱 그린 줄로만 알았던 드로잉의 흔적이, 실은 카세트테이프의 마그네틱 필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그네틱 필름은 비행기 소음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잡음이 뒤섞여 흘러나오는 소형 워크맨과 연결돼 있는데, 소리의 진동 탓인지 마그네틱 필름 드로잉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래도 시시하다고? 관람자가 두 번째로 뒤통수를 맞는 건 이즈음에서다. 마그네틱 필름은 우리가 어렸을 때 즐겨 그렸던, 점과 점을 선으로 연결해 그린 그림처럼 보이는데, 이 꺾이는 점에 또 다른 비밀이 있다. 마그네틱 필름 드로잉의 각각의 꼭지점에 해당하는 요소들에는 하얀 휠이 하나씩 박혀 있는데, 이 휠 자체가 빙글빙글 돌면서 마그네틱 선을 컨베이어벨트처럼 돌려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그냥 평범한 벽처럼 보이던 흰 벽 뒤에는 휠을 돌리는 작은 모터들이 숨어 있고, 핀 하나로 벽의 앞뒤가 연결돼 돌아가게끔 한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나니
 움직이는 드로잉에 별 흥미를 못 느낀 사람이라면, 전시장 한 가운데 마련된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들여다보자. 하나의 선이 움직이면서 기상천외한 풍경으로 바뀌는 여러 편의 단편애니메이션들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는지,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상황이 이러니, 전시장에 가시면 부디 꼼꼼하게 들여다보시길. 현대미술에 대한 애정만큼 그림을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니 말이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11시∼오후8시까지다(전시기간 중 무휴). 문의전화 02-3141-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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