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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일본 고양이역장을 벤치마킹한 점촌역 강아지역장

by 야옹서가 2008. 12. 20.

일본 와카야마전철 고양이 역장의 사례를 참고하여, 2008년 8월부터 강아지 명예역장을 채용한 경북 점촌역에 다녀왔다. 점촌역의 강아지 역장 사례는 고양이와 직접 관련된 문화사업은 아니지만, 유사한 해외 사례를 한국 실정에 적용했을 때 어떻게 변용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점촌역은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에 상행 3회, 하행3회씩 정차하는 간이역이다. 그러나 경북 지역의 석탄산업이 점차 쇠퇴하고, 고속도로 발달로 대체 교통수단이 늘자 간이역의 이용객도 현저히 줄었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경북선 3개 간이역에서 2008년 4월 ‘신활력 프로젝트’를 선포하고 나섰다. 점촌역, 주엽역, 불정역에서 각각 테마가 있는 간이역을 표방했는데, 점촌역에서는 ‘동화 속 세상’을 테마로 삼고 있다.

점촌역의 변신을 위해 가장 먼저 손을 걷어붙인 것은 역무원들이었다. 지난 5월부터 역사 내의 잡초와 자갈밭을 정비하여 코스모스를 심었다. 사용하지 않는 1번 승강장에 폐 레일을 놓고 88개의 기둥을 세워 88바람개비동산을 만들었다. 어린이들이 생명의 경이로움을 몸소 체험하도록 ‘토끼네 집’도 지었다. 산에서 해온 나무로 직접 솟대를 만들어 세웠고, 어린이들의 동심을 위해 캐릭터 복장을 입고 함께 사진도 찍어주었다. 또한 선로 보수차를 일반에 개방하여 기념 사진도 찍고 직접 운전해볼 수도 있게 했다.

기차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점촌역사.

입구에는 내부 배치 안내도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점촌역의 새로운 시도가 화제를 불러모은 건, 강아지 명예역장 아롱이와 다롱이의 활약 때문이다. 시장에서 3만원씩에 스카우트한 생후 2개월짜리 암컷 아롱이는 명예역장을, 동갑내기 수컷 다롱이는 부명예역장을 맡았다. 두 강아지는 2008년 8월 11일 코레일 경북남부지사장 명의의 임명장도 받았다. 이러한 점촌역의 강아지 역장은, 일본 와카야마전철의 고양이 역장이 큰 인기를 모은 것을 보고 벤치마킹한 것이다. 

강아지 명예역장의 부임 소식이 알려지자 여러 매체에서 취재 요청이 쇄도했다. 강아지 역장의 활약 덕에 점촌역이 주기적으로 언론에 홍보되면서 이용객도 늘어, 한적했던 점촌역도 활기를 띄었다. 역무과장님 말씀에 따르면 지난 가을 두 달간 무려 8700명이 점촌역을 찾았다고 한다. 명예역장들은 불과 6개월 사이에 강아지라는 표현이 어색할 만큼 훌쩍 커버렸지만, 붙임성 있는 성격은 여전해서 방문객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강아지 명예역장이 점촌역의 마스코트 노릇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별 생각없이 노는 듯 싶다가도 기차가 들어오면 우뚝 서서 의젓하게 차를 맞이한다고 한다. 두 마리 중에 아롱이가 훨씬 더 기가 세고 영특해, 수컷인 다롱이도 꼼짝 못한다. 덕분에 명예역장실 앞 인조잔디가 깔린 명당 자리는 대개 아롱이 차지다.

명예역장실을 배경으로 나란히 선 아롱이 명예역장(왼쪽)과 다롱이 부명예역장(오른쪽).

명예역장 근무시간표. 주로 방문한 어린이 단체승객을 염두에 두고 쓴 듯하다. 읽어보면 재미있다.

승객맞이에 여념이 없는 명예역장 아롱이와 명예부역장 다롱이.

기차가 자주 드나들지 않는 간이역을 오롯이 지키는 강아지 역장님의 모습이다. 상석은 항상 명예역장 아롱이 차지.

이제 강아지 역장이라 부르기엔 훌쩍 커버렸지만 여전히 사람을 잘 따른다.

레일을 승강장에 세우고 88개의 기둥을 세워 제작한 바람개비동산.

명예역장의 모습을 완성하는 요소 중 하나가 역무원의 제복인데, 지난 12월 13일 점촌역을 방문했을 때는 강아지 명예역장들이 썼던 전용 모자를 볼 수 없었다. 몸집이 커지고 힘도 세지면서 모자를 자꾸 물어서 벗어버리는 통에, 요즘은 억지로 씌우지 않는단다. 이제 이들이 명예역장임을 알 수 있는 증표는, 이들이 지키는 아담한 명예역장실 뿐이다. 

점촌역의 변신 이후 역을 주로 찾는 이용객은 주로 인근 지역 유치원, 어린이집 등 어린이 단체손님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역에서 진행하는 체험프로그램도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 중심으로 운영된다. 승강장에 비치된 투호나 훌라후프 등은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한된 예산으로 다양한 놀잇감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올해가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강아지 역장 덕분에 많은 승객들이 늘었다는 설명을 들으며 역사 앞을 돌아보았다. 원래 가을철 방문객을 위해 코스모스를 심었지만 때이른 8월에 만개하는 바람에, 정작 9월에는 코스모스가 거의 다 져 버렸단다. 하지만 이에 실망하지 않고, 코스모스의 잔해를 치운 자리에 다시 내년 봄을 준비하는 유채꽃 씨앗을 심었다. 가만히 내려다보니 은행나무 낙엽 아래로 유채꽃 새싹이 벌써 머리를 내밀고 있다.

로 보수에 쓰이던 핸드카를, 사용하지 않는 1번 승강장에 배치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타볼 수 있게 했다.

점촌역 강아지 명예역장의 경우, 쇠락해가는 간이역의 존재를 알리고 새로운 방문객을 유도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눈에 띄었다. 강아지 역장, 토끼, 장승, 솟대, 허수아비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이지 못하고 산만해 보인다는 점, 몇 가지 시설은 다소 예스러워 보인다는 점이 그것이다.  실례로, 얼굴을 내밀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배치한 기념사진용 풍차나 스머프마을 조형물, 88바람개비동산의 오륜마크 등은 시대를 역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장승과 솟대, 손글씨로 적은 안내 간판 등은 추억의 풍경을 찾는 어르신들에게는 소구할 수 있겠으나, ‘동화 속 세상’이라는 점촌역 테마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솟대와 장승이 있는 간이역 풍경. 옛 정취가 느껴지지만, '동화 속 세상'이라는 점촌역의 테마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리운 사람에게 우편엽서를 보낼 수 있는 우체함.

유치원, 어린이집 등 단체관람객의 체험학습장으로 활용되기에, 토끼네 집이 마련되어 있다.

플래카드 속 캐릭터 인형 역시 역무원들이 직접 캐릭터 복장을 입고 봉사한 것이라고 한다.

선로 옆 허수아비. 가을 코스모스와 있을 때는 어울렸겠지만 겨울에는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비수기인 겨울철에 어떻게 변신할 것인가 역시 점촌역의 숙제 중 하나다.

역 바로 옆 저탄장이 있다. 선로 옆에 저탄장의 모습이 가려질 만큼 키가 큰 해바라기 꽃밭을 조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보완되어야 할 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촌역의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역무원들이 직접 인터넷 커뮤니티(http://cafe.daum.net/555-7788)를 개설하여 네티즌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열었으며, 미처 카메라를 지참하지 않은 방문객에게는 사진을 대신 찍어주고 커뮤니티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사진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인근 주민들이 점촌역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크로마하프 공연 등 문화행사를 유치하여 이용객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쓰이도록 지원하고 있어 인상 깊다. 

고양이 역장이 활동하고 있는 와카야마전철에서는 1년에 50여 차례의 이벤트를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번 흥미 삼아 방문하는 역이 아니라, 늘 새로운 이벤트가 있어 다시 찾아오고 싶게 만드는 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강아지 역장이 활동하는 점촌역에서도 활발하게 홍보 활동이 이루어져,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다시 찾고 싶은 정겨운 간이역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http://catstory.kr)

* 이 글은 한국블로그산업협회에서 후원하는 블로그 지원사업 '블로거!, 네 꿈을 펼쳐라'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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