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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의 달인, 산고양이를 만나다 호랑이도, 표범도 오래 전에 다 사라진 뒷산에는, 산고양이가 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밀려나 갈 곳 없는 길고양이들이 산으로 산으로 떠밀리듯 올라가는 것입니다. 한낮에는 바위로 올라가 햇빛을 쬐다가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나절이면 민가로 어슬렁어슬렁 걸어내려와 먹을 것을 구합니다. 꽃샘추위가 가시고 봄날씨를 되찾은 오후, 고양이를 만나러 마을 근처 뒷산으로 향합니다. 기다렸다는 듯 고양이가 바위 위에 식빵을 굽고 앉아 있습니다. 나도 그 햇빛 좀 같이 받아보자는 듯, 친구 고양이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옵니다. 편안한 자세로 널브러져 있던 노랑 고양이는 일어나 자세를 가다듬고 친구를 맞이합니다. 친구 사이에도 예의는 필요한 법이니까요. 햇빛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식빵 두 덩이가 사이좋게 바위에 올라 앉아 있습니.. 2010. 3. 12.
길고양이의 '복층 원룸' 천막집 초대 겨우내 바람막이가 되어준 천막집 앞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망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가까이 다가가자 천막집 안으로 슬그머니 몸을 옮깁니다. 멀리 도망가지는 않고 살짝 고개를 내밀어 오랫동안 주시하는 모습이, 꼭 자기를 따라 오라고 초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눈이나 비 내리는 날 고양이들이 어떻게 겨울을 날까 궁금했던 차여서 큰 친분은 없는 사이지만, 염치불구하고 고양이를 따라가 봅니다. "우리 집을 최초로 공개하겠다옹~ 근데 빈손으로 오면 서운하다옹!" 눈빛이 고양이의 마음을 대변해줍니다. 며칠 사이 부쩍 추워진 날씨에 그만 감기에 걸렸는지, 콧물을 계속 흘리고 있어서 안쓰럽네요. 천막집 안으로 고개를 쑥 집어넣으니, 햇빛이 천막을 통과해서 신비한 푸른 빛으로 가득합니다. 겉보기보다 실내는 꽤 운치가.. 2010. 3. 11.
눈 온 날, 길고양이 마음은 소금밭이다 폭설 내리는 날이면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 -지금은 절판된 문학평론가 이명원의 책입니다. 질 나쁜 소금을 입에 털어넣으면 입속을 가득 채우는, 텁텁하고 씁쓸하고 찝찌름한 맛. 마음이 그런 기운으로 가득 찰 때, 글쓴이는 도서관에 가서 마음을 달랩니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도서관에 가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소금밭 같은 마음이란, 벌어진 상처에 뿌린 소금처럼 따갑고 아린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 입어 아리고 쓰린 자리에 또 다시 따가운 소금을 뿌려대는 일. 폭설 내린 날 길고양이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고양이 등에 사뿐사뿐 내려앉는 눈송이는 달콤한 설탕이 아니라, 뾰족뾰족 네모나게 각이 진 소금입니다. 겨울이 다 지나갔나 하고 방심했던 길고양이들에게.. 2010. 3. 10.
물을 찾아 헤매는 어린 길고양이 어린 길고양이가 산더미처럼 쌓인 계란판 앞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어디론가 배달될 듯, 혹은 어딘가의 음식점에서 쓰려고 막 주문해놓은 듯, 꽤 많은 양의 계란입니다. 배고픈 고양이가 싱싱한 계란 냄새를 맡고 찾아온 것일까, 혹시 계란을 노리려나...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발톱만은 제법 날카로우니 계란 하나 구멍내어 쪽쪽 빨아먹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잖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어린 길고양이는 눈앞의 '신선한 먹을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린 길고양이가 이곳까지 온 목적은, 갈증을 해소해 줄 한 방울의 물뿐이었습니다. 몹시 목이 마른 듯, 고작 한 줌도 안될 고인 물을 허겁지겁 핥아먹습니다. 길고양이로 살면서 겨울 내내 먹기 힘든 것은 밥보다도 깨끗한 .. 2010. 3. 9.
신비한 빛깔의 삼색털 길고양이 보통 삼색털 고양이는 흰색, 황토색, 고동색(혹은 검은색) 얼룩이 조화롭게 섞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독특한 빛깔을 띤 삼색털 고양이를 만나기도 합니다. 화단 난간 뒤로 몸을 숨기고 있던 길고양이는 신비로운 빛깔의 삼색 고양이였습니다. 은회색 털과 밀크티 빛깔의 얼룩이 흰 바탕에 점점이 섞여 있습니다. 고양이는 보이는데 창살 너머로는 머리를 집어넣을 수 없어, 카메라만 쏙 들여보내서 찍었습니다. 등 뒤에는 친구 고양이가 가만히 식빵을 굽고 있습니다. 한적한 봄날 오후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드디어 제 인기척을 느끼고 도끼눈을 뜨는 삼색털 고양이입니다. 한껏 세운 마징가 귀가 안테나를 대신합니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좋은지, 눈치를 봐서 잽싸게 도망가야 할지... 삼.. 2010. 3. 8.
갤러리를 지키는 식객 길고양이 갤러리 146Market에서 열린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 사진전 마지막 날, 갤러리 앞에 상주하는 식객 길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약간 이른 시간에 도착한지라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전경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인기척, 아니 묘기척이 느껴집니다. 눈을 왼쪽으로 돌려보니, 식객 고양이 한 마리가 정좌한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갤러리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던 거죠. 갤러리 146Market에서는 갤러리 근처로 찾아오는 식객 길고양이 여러 마리를 돌보고 계신다고 합니다. 길고양이 치고는 입성이 깔끔합니다. 옆구리의 무늬로 보아, 아메리칸 숏헤어 종의 피를 물려받은 듯합니다. 특유의 골뱅이 무늬가 선명합니다. 아무래도 기다리는 사람이 빨리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지, 아니.. 2010.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