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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환영 - 극사실 회화의 세계전 [디지틀샘터/ 2001. 4.]실물과 꼭 닮은 그림을 보면, 우리는 흔히 “와, 사진같이 그렸네.”라는 표현을 쓰곤 하죠. 호암갤러리에서 4월 29일까지 열리는 '사실과 환영:극사실 회화의 세계'전에서 이런 반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원근법의 도입과 유화 물감의 발명 이후, 평면 위에 재현되는 3차원적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사실주의적 회화가 아무리 대상의 재현에 충실하다 해도 미세한 빛의 변화나 사물의 움직임을 그대로 담아내는 건 불가능했던 반면, 극사실주의 회화는 일차적으로 작가가 대상을 촬영하고, 그 사진을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이용해서 캔버스에 비추면서 확대된 크기대로 옮겨 그리거나, 혹은 사진을 촘촘한 모눈으로 나누어서 기계적인 확대를 하는 방식으로 제작됩니다... 2001. 4. 8.
해와 달, 나무와 장욱진 [디지틀샘터/ 2001년 1월] 장욱진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가족, 집, 나무, 해와 달, 가축들의 형태는 아이들이 그린 듯, 쓱 칠하고 그린 붓질로 이뤄져 있어 `예술이라면 뭔가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하고 긴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심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덩치가 작고, 묘사가 단순하다고 그의 그림을 가벼이 평가할 수는 없겠지요. 세계를 손바닥만 한 종이 위에 눌러 담았다고 했을 때, 그 압축된 세계의 밀도라는 건 아마 1:1의 비율로 그린 그림보다 더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장욱진이 작은 그림을 고집한 것도 아마 그러한 밀도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첫 번째로 소개할 그림은 장욱진이 종군화가로 활동했던 1951년의 `자화상`입니다. 뒤에 소개될 그림 대부분에서 .. 2001. 1. 1.
한국적 인상주의를 구축한 화가-이인성 작고 50주기 회고전 [월간 '샘터' 웹진 www.isamtoh.com / 2001. 1]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2001년 1월 25일까지 열리는 ‘이인성 작고 50주기 회고전’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이인성(1912~1950)은 인상주의 화풍을 한국인의 시각으로 탁월히 소화해낸 작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1950년 불의의 총기 오발 사고로 사망하면서 작품 세계가 묻혀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1972년 서울화랑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로, 작품 95점과 당시의 보도자료ㆍ사진ㆍ유품 등이 전시돼, 이인성의 그림과 삶의 궤적을 조망했습니다. 191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인성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11세에 오늘날의 초등학교 격인 수창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데다, 보통학교 졸업 후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대의 나이에 조선미술전.. 2001. 1. 1.
‘인상파와 근대미술’ 전 - 오르세 미술관 한국전 [월간 '샘터' 웹진 www.isamtoh.com / 2000. 12] 예술의 도시 파리에는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세느강을 가운데 두고 세계적인 미술관 두 개가 마주 서 있습니다. 하나는 그 유명한 루브르 미술관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오르세 미술관입니다. 루브르 미술관은 르네상스와 고전주의ㆍ로코코 양식 건축물로서 고대 유물부터 18세기까지의 미술 작품을 소장ㆍ전시하고 있고, 오르세 미술관은 19세기 말에 지어진 건축물로서 소장 예술품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대표하는 작품들입니다. 두 미술관의 소장품과 건물 자체가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품인 셈이어서 두 미술관의 의미와 가치는 더욱 커 보입니다. 특히 오르세미술관은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을 잇는 사실주의, 상징주의, 그리고 인상주의 작품들을 다수 소장하.. 2001. 1. 1.
당신의 슬픔을 대신해 드립니다-김범의 `유틸리티 폴더`전 [영화포털 엔키노/2000. 10] 느낀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효과적인 자기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사회에서는,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다가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래의 감정'이란 통제하기 어려운 녀석과 손잡고 다니기보다는, 의례적인 웃음을 얼굴에 띄우는 길을 선택합니다. ‘내가 기쁠 때 같이 기뻐해 주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해 줄 사람’을 마음 속으로 찾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런 감정관리에 지친 탓이겠지요. 그러나 현실에서 타인과 그런 관계를 맺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가족이 아니라면, 사랑의 달콤한 환상 속에서 빠져 있는 연인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일까요. 그렇지만 당신의 통제하기 버거.. 2001. 1. 1.
장애물경기 같은 삶-김영삼전 [영화포털 엔키노/2000. 10] SF영화들을 보면, 긴박한 상황에서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주선에서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혹은 에일리언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혹은 방사능 오염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할 수 있도록 긴 통로 한쪽 끝부터 순차적으로 닫히는 문. 내가 통과한 뒤 문이 닫히면 스릴 만점이겠지만, 바로 눈앞에서 그 문이 퉁 떨어져 내릴 때의 암담함이란...윽∼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제 눈에 비친 김영삼의 작업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퉁, 퉁, 떨어져 내리는 문의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SF영화의 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한 터라 비디오작업을 연상하실 지도 모르지만, 그의 작업은 이른바 일반인들에겐 `비인기 종목`인 추상회화입니다. 장황한 이론적 배경을 늘어놓으며 현학적인 게임을 즐.. 2001.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