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대 위에 올려진 가짜들의 그로테스크한 매력-장희정전 Nov 02. 2001 | ‘멀리서 보았을 때 꽃인가 싶었다가, 가까이서 보니 아름다운 여인이었더라’는 이야기는 언뜻 듣기에 낭만적이지만, 그 여인의 몸이 조각조각 해체된 모습이라면 묘한 모순을 느낄 수밖에 없다. 10월 16일부터 11월 11일까지 쌈지스페이스 1, 2층에서 열리는 장희정전은 해체된 인형의 신체를 오브제로 사용하거나, 가짜 꽃 그림 등을 등장시킨다. 사용한 소재들로 봐서는 페미니즘 계열 전시가 아닐까 싶지만, 장희정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아름다운 가짜들이 지닌 그로테스크한 매력이다. 그녀는 대상을 분해하고 다시 새로운 형태로 재조립하면서, 아름답게 보이는 외관 속에 숨은 실체를 해부하듯 파헤쳐 보인다.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과 보여지는 사물 사이의 간극 전시장 2층에 마련된 꽃무늬벽지 방은.. 2001. 11. 2. 발끝을 짜릿하게 감싸는 퓨전 스타일리스트 - 신발디자이너 이겸비 Oct. 31. 2001 | 나이키 스타일의 가죽운동화 옆면에 한복을 입은 요염한 여인의 모습을 프린팅한 ‘어우동 운동화’, 높이가 10센티미터는 됨직한 구두 뒷굽에 ‘나가자, 진로소주의 맛’이란 뜻의 한자를 새긴 ‘진진로미소주(進眞露味消酒) 구두’, 복슬복슬한 토끼털가죽 위에 보라색 메탈가죽으로 바를 정(正)자를 새긴 ‘바르게 살자 슬리퍼’. 세상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 듯한 독특한 신발을 만들어내는 신발디자이너 이겸비씨의 작품들이다. 원색적인 화려함과 수수한 아름다움, 진지함과 장난스러움이 묘하게 어우러진 그녀의 신발은 톡 쏘는 탄산음료처럼 자극적이면서도 달콤한 매력을 지녔다. 발을 살짝 집어넣는 순간 찌릿, 전기가 통하거나 작은 소용돌이가 이는 건 아닐까 하고 상상할 만큼이라면 설명이 될까. 동양풍.. 2001. 10. 31. 그리스 가부장제 사회가 ‘여신 죽이기’ 앞장섰죠 - 철학자 장영란 Oct. 31. 2001 | 그리스 신화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신을 말해보라고 하면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여신이 헤라다. 그런데 이 헤라는 ‘변변히 하는 일도 없이 질투와 간계를 일삼고 영웅들을 못살게 굴기만 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원래 위대한 대지모신(大地母神)이었던 헤라가 왜 그리스신화에서는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전락했을까?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장영란씨가 펴낸 《신화 속의 여성, 여성 속의 신화》(문예출판사)는 이런 의문점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녀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 내에서 결혼이라는 가부장적 제도를 통해 남편과 아내 자식간의 위계질서가 성립되면서 헤라나 아프로디테처럼 결혼한 여신들은 귄위를 잃게 되고, 아르테미스나 아테나 같은 처녀신들은 힘이 어느 정도 축소된 상태에서만 자신의 기능을 유지.. 2001. 10. 31. 기원과 욕망 담은 전통조각의 참 멋 - 조선후기조각전 Oct. 26. 2001 | ‘전통조각은 딱딱하고 재미도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끗이 불식시킬 전시가 로댕갤러리에서 열린다.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 주최로 9월 28일부터 11월 18일까지 개최되는 ‘새로운 발견! 조선후기 조각전’은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까지 제작된 불교조각, 능묘조각, 토속신상 등 70여 점을 선별해 기존 미술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전통조각의 다양한 양상을 부각시킨 전시다. 불교적 경궤의 영향 벗어난 다채로운 조각 선보여 전시된 작품 면면을 보면 불교의 의례적인 제작양식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불·보살상을 전시목록에서 최소화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암굴 속에서 수도하는 나한상, 시중을 드는 동자상과 동녀상, 불교적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사자형 법고대와 코끼리형 좌.. 2001. 10. 26. 인형연극으로 되살아난 괴테의 숨은 걸작 ‘우어파우스트’ Oct. 18. 2001 | 상징성과 환상성을 강조한 블랙테아터 기법, 줄인형극, 그림자극, 애니메이션 기법 등 복합적인 기법의 ‘인형연극’ 장르를 선보여온 극단 그림연극의 여섯 번째 작품 ‘우어파우스트’(Urfaust)가 10월 28일까지 김동수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된다. 대문호 괴테의 원숙한 역량이 유감 없이 발휘된 《파우스트》 2부작이 빛과 어둠을 오가며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의지를 형상화했다면, 혈기 넘치는 20대의 괴테가 쓴 초고 《우어파우스트》는 삶의 참된 의미, ‘사랑’의 발견에 무게중심을 뒀다. 연극 ‘우어파우스트’는 이 《우어파우스트》에 괴테가 즐겨봤다는 줄인형극 ‘닥터 파우스트’를 참고해 재해석한 것이다. 다양한 매체 이용한 ‘시각적 연극’ 시도 돋보여 극단 그림연극의 ‘우어파우스트’는.. 2001. 10. 18. 죽은 몸 안에 깃든 영원한 삶의 욕망-정은정 사진전 Oct. 12. 2001 | 몸통이 잘려나간 채 눈 덮인 들판에 덩그러니 놓인 황소 머리, 엉덩이에 푸른 등급표시가 선명하게 찍힌 돼지, 털이 죄다 뽑힌 오리와 닭. 대안공간풀에서 열리는 정은정 사진전 ‘동물·에피소드 I’에 전시된 10점의 사진은 이처럼 적나라한 죽음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선정적인 소재주의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죽어있으면서도 멀건 눈을 뜨고 관람자를 응시하는 동물의 사체는 죽음에 대한 관음증과 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이 공존하는 작가의 내면을 반영한다. 유년시절 뇌막염을 심하게 앓았던 정은정은 성장한 후에도 자신을 지배하는 죽음의 강박관념을 ‘연출사진’으로 극복하려 시도한다. 그녀가 만들어낸 죽음의 현장은 피 한 방울 찾아볼 수 없는 안전한 풍경이며, 때로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예컨대.. 2001. 10. 12. 이전 1 ··· 292 293 294 295 296 297 298 ··· 30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