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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를 위한 무지개 다리 길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위에 올라 볕을 쬐고 있습니다. 고개를 쭉 빼고 목을 늘인 모습이 뭔가 기다리는 표정입니다. 앞발을 뻗으면 잡힐 듯이 코앞으로 다가온 봄을 기다리는지... 그러나 이미 흐드러지게 핀 봄꽃이 고양이 등 뒤에 다가와 있습니다. 고양이의 눈을 유혹하는 노란 들꽃도, 곧 있으면 지고 말 것입니다. 혹독한 겨울과 끈적한 여름 사이, 있는둥마는둥 잠깐 머물다 사라질 뽀송뽀송한 봄기운이 아쉽기만 합니다. 길고양이는 오래간만에 만끽하는 짧은 봄볕을 둥그런 등짝 위로 오롯이 받으며, 꽃놀이 하듯 봄구경 하듯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습니다. 그런 길고양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제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풀면서 가만히 보니, 고양이 발 밑에 조그만 무지개 다리가 떠 있습니다. 사진.. 2010. 5. 15.
전봇대 타는 고양이, 깜짝 놀랐어요 길을 걷다 고양이의 절묘한 묘기를 우연히 순간포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봇대 타는 고양이를 만난 날도 그랬습니다. 언제 길고양이를 만날 지 모르기에 늘 카메라를 대기 상태로 두고 다니는데, 전봇대 근처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삼색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쳤습니다. 고양이는 몹시 무료한 듯, 전봇대를 스크래처 삼아 앞발을 박박 긁고 있더군요. 묶여있고 조그만 물그릇도 놓여있는 걸로 보아 반려인이 있는 고양이 같았습니다. '그래, 심심할 텐데 손톱갈이라도 해야 시간이 잘 가겠지...'하고 생각하면서, 만난 기념으로 사진이나 한 장 찍자 하고 카메라를 들었는데, 순식간에 고양이가 용수철처럼 튀어올랐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전봇대 기둥뿌리며 전체 상황을 제대로 찍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나 좀.. 2010. 5. 14.
개와 맞장 뜬 골목대장 길고양이 골목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개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쩐지 울분에 찬 듯 다급한 목소리여서, 호기심이 생겨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가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닭 쫓던 개처럼 저렇게 망연자실 먼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개의 시선이 가 닿은 곳에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무심히 앉아서 딴청을 부리고 있습니다. "훗, 짖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냥~" "헉! 고양이에게 완전 무시당했네. 이거 '개무시' 맞지? 저 녀석 오늘 좀 손봐주면 안되겠니?" 어이가 없고 화도 났는지, 개가 억울한 눈으로 돌아보며 묻는 듯합니다. 사람이 제 편을 들어줄 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같은 동네 사는 처지에 사이좋게 지내라'고 타이르니,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제풀에 지쳤는지, 개는 그만 제 집으로 맥없이 들어가버립.. 2010. 5. 13.
[촬영후기] 고양이 마음 담긴 한 장의 사진 촐랑촐랑, 두근두근. 둘 다 새끼인데, 둘의 심리상태는 사뭇 다르다. 아기 길고양이들의 까꿍놀이를 찍었던 날, 이 컷 외에도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그중에서도 이 사진은 두 길고양이의 상반된 마음이 대조를 이뤄서 좋았다. 유독 내 마음에 남는 사진은 그저 귀엽고 예쁜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아니라, 그 순간 그들이 느낀 감정을 적확하게 보여주는 사진이다. 고양이의 외모만을 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찍고 싶다. 길고양이가 속마음을 감추지 않게, 나를 바람이나 햇살처럼 대할 수 있게, 내가 고양이에게 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의 기준을 내세워 그들의 삶에 섣불리 개입하지 않기, 적당한 선의 안전거리 두기. 고양이가 내게 보이는 경계심만큼, 나도 그들의 .. 2010. 5. 12.
아기 길고양이들의 까꿍놀이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 밑 빈 공간에서 놀던 아기 길고양이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눈동자가 예쁜 호박색입니다. 갑작스런 방문에 화들짝 놀란 아기 길고양이는, 얼른 건너편 지붕으로 달아납니다. "노랑이 없~다!" 대담한 건지, 숨는 게 서투른 건지, 지붕 밑에 얼굴만 쏙 감추고 자기는 없답니다. "응? 아직 안 갔냥?" 나 없다고 하면 시시해서 가버릴 줄 알았는데, 머리 위 인간은 엉덩이가 무겁게도 버티고 있습니다. "뭐 재미있는 거라도...헉! 인간이닷!" 얼룩무늬 아기고양이가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다가 눈치만 보고 잽싸게 머리를 집어넣습니다. 노랑이는 제가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안심했는지, 이제 여유만만한 얼굴이 되어 지붕 모서리에 입술을 비비고 있습니다. 노랑이가 해맑은 눈으로 저를.. 2010. 5. 12.
민들레꽃의 유혹에 빠진 길고양이 호기심 많은 어린 길고양이의 눈에, 민들레 꽃봉오리가 들어옵니다. 나뭇가지든 손가락이든, 일단 길고 뾰족한 것만 발견하면 턱을 비비고 보는 습성 탓에, 아직 채 피지도 않은 봉오리에 자꾸만 눈이 갑니다. 고개를 한들한들 흔드는 꽃봉오리가 "어서 턱밑을 긁어보렴, 시원할거야" 하고 어린 길고양이를 유혹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바닥에 뒹구는 흔한 풀들과 다른 향이 나는 듯도 합니다. 민들레의 유혹에 못이긴 고양이가 살며시 코를 들이밀어 봅니다. 힘차게 위로 불쑥 솟아오른 모양새와 달리 목에 힘이 없는지라, 민들레는 고양이가 코끝으로 밀면 밀리는대로, 그렇게 흔들거리기만 할 뿐입니다. 민들레 특유의 향기가 싫지 않았는지, 바로 옆 활짝 핀 꽃으로 가까이 다가가 다시 냄새를 맡아봅니다. 벌써 여름이 왔나.. 2010.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