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보다 '지금' 고양이와 함께 살기 전엔 잘 몰랐다. 고양이에게도 코딱지가 있다는 걸. 스밀라를 안고 둥개둥개 어르면서 얼굴을 들여다보면, 가끔 콧구멍에 코딱지가 붙어있는 게 보인다. 고양이세수를 해도 거기까진 잘 닦이지 않아서 그럴까. 투명했던 콧물은 어떻게 까만색으로 변하는 걸까. 흰 털옷을 입은 고양이라 그런지, 코딱지가 더 도드라진다. 하지만 더럽다는 느낌보다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어쩐지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한 아기 같아서. 살아있는 생명이니까, 가짜가 아니니까, 코딱지도 생기고 눈곱도 끼는 거다. 스밀라를 데려오기 전에, 고양이는 키우고 싶은데 상황은 안 되니 장난감 박람회에서 본 고양이 로봇이라도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지만 도저히 못 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양이 로봇이 진짜 고양.. 2008. 9. 9. 지붕 위 숨바꼭질하는 길고양이들 도시에서 길고양이가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지붕 위가 바로 그들의 소중한 아지트입니다. 하루에 한번 하늘 보기도 힘든 사람들이 지붕 위까지 시선을 돌릴 리 없기 때문이죠. 골목길 한구석조차 길고양이에게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도, 지붕 위로 돌을 던지지는 않으니까요. 길고양이는 지붕 위에서 잠을 자고, 숨바꼭질을 하고, 때론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명상에 잠깁니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 모든 것을 초월한 달인의 풍모가 느껴져요. 도심 속의 작은 쉼터, 지붕 위 아지트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만 모아보았습니다. 빨간 지붕위로 얼굴만 내민 고양이 얼굴. 저 사람이 안전한지 아닌지 재 보는 것 같아요. 몸은 기와지붕 뒤에 숨긴 채 뾰.. 2008. 9. 8. 스밀라는 햇님고양이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아침이면, 내 방에는 두 개의 해가 뜬다. 하나는 네모난 모양이고, 하나는 동그랗다. 네모난 해가 내뿜는 빛은 눈부시고 날카롭지만, 동그란 해는 내 얼굴에 반사된 빛을 부드럽게 빨아들인다. 하얗고 동그란 햇님이 반쯤 감았던 눈을 뜨고 나를 내려다본다.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관심없다는 듯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널 본 게 아니었다고, 그저 눈이 마주쳤을 뿐이라고 둘러대는 것처럼. 하지만 스밀라가 아무리 딴청을 부려도, 난 진실을 알고 있다. 내가 잠이 깰 때까지, 스밀라가 종종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새벽잠이 없는 스밀라는 오전 4시가 되면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거실을 걸어다닌다. 밥그릇에 사료가 충분한데도, 시위하듯 그 앞에 앉아 앵앵 운다. 사료를 병아리 .. 2008. 9. 7. 식빵굽는 귀여운 길고양이들 '식빵 자세'란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르세요? 빵집이 생각난다면 일반인, 고양이가 생각난다면 애묘인일 겁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료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식빵 자세랍니다. 그럼 길고양이가 연출하는 다양한 식빵 자세를 한번 볼까요? '식빵 자세'란, 고양이가 도사린 모습이 마치 빵집에서 파는 길다랗고 네모난 식빵처럼 보인 까닭에 붙은 애칭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식빵 모양으로 앉은 고양이를 가리켜 '식빵 굽는다' 라고 하죠. 완벽한 식빵 자세를 위한 첫번째 조건은, 앞발을 착착 접어 앞가슴 밑에 쿠션처럼 까는 겁니다. 꼬리를 몸에 찰싹 붙이면 더욱 완벽해지죠. 지그시 눈을 감은 고양이의 얼굴이 살짝 미소짓는 것 같네요. 5대5 가르마를 탄 젖소무늬 고양이가 식빵 자세로 단잠을.. 2008. 9. 5. 한가로운 고양이섬 에노시마 산책길 보통 가마쿠라와 묶어 구경하는 도쿄 근교의 여름 휴양지, 에노시마는 고양이가 많기로도 유명한 섬입니다. 심지어 고양이를 위한 모금함까지 볼 수 있죠. 이곳에서 가이드북에도 없는 '고양이 바위'를 발견했어요. 스님들이 수도했다던 해식동굴 '이와야 동굴'과 사랑이 이뤄지는 전설의 장소로 유명한 '용연의 종' 등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은근히 비탈진 길이 많아서, 관광객을 겨냥한 에스컬레이터 탑승권도 판매할 정도입니다. 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고양이 사진을 찍으면서 쉬엄쉬엄 올라가보았습니다. 에노시마는 섬이지만 육지와 큰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배를 타지 않고도 진입할 수 있습니다. 다리 아래로 파란 바닷물이 찰랑찰랑하면 예뻤겠지만... 오른쪽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식빵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 2008. 9. 4. 긴장한 삼색고양이 고양이의 시선과 인도 표시선이 나란히 일직선으로 놓인다. 사진 프레임 밖에 있는 탓에 보이지는 않지만, 고양이의 시선이 날아가 떨어지는 지점에는 조그만 개 한 마리가 있다. 오두마니 앉아있던 고양이는 긴장한 것인지, 아니면 호기심 때문인지 시선을 떼지 못한다. 개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귀만 앞뒤로 움직이던 녀석이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다. 시선은 여전히 개가 있는 쪽을 향한 채로. 평균대에 올라서듯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하얀 양말 신은 삼색고양이의 앞발이, 도로 위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평균대 위로 조심스레 놓인다. 고양이의 수염 스치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사위가 고요하다. 2008. 9. 3. 이전 1 ··· 79 80 81 82 83 84 85 ··· 10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