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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샤시 사진'이 좋아진 이유 나는 '뽀샤시 사진'을 싫어했다. 땀구멍도, 솜털도, 피부의 질감도 없이 그저 뽀얗게 흐려놓은 사진이라니,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뽀샤시 사진'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결점을 흐리고 뭉갠 다음, 환영처럼 모호한 이미지만 남긴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그 사진에 대한 판단은 엇갈린다. 하얀 얼굴에 구슬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만 남은 얼굴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겐 사진 속의 모습만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뽀샤시 사진'에서 지워진 것들(얼굴의 잡티나, 비뚤비뚤하게 자란 눈썹이나, 눈가의 잔주름 같은)이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김빠진 맥주처럼 닝닝한 느낌밖엔 나지 않을 것이다. '뽀샤시 사진'을 거북하게 느꼈던 건, 결점은 없지만 인간미는 결.. 2008. 9. 20.
단잠 자는 길고양이 '행복해' 토실토실한 앞발을 베게 삼아 잠든 길고양이들. 길에서 살아가는 고단한 삶이지만, 안전한 곳에서 단꿈을 꾸는 순간만큼은 더없이 평안해 보입니다. 햇살이 어린 고양이의 등을 따뜻하게 쓰다듬으면 솔솔 졸음이 오지요.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이 사람을 경계하고 달아나지만, 유독 여유로운 심성을 가진 녀석들도 있습니다. 숨을 곳이 많고, 먹을 것이 넉넉한 곳을 근거지로 삼아 살아가는 고양이들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비닐장판 조각을 깔고 누운 녀석을 보니, 집에 있는 스밀라가 생각났습니다. 종이 한 조각이라도 바닥에 깔려있으면 기어이 깔고앉기를 좋아하는 고양이의 습성은 길고양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이, 너만 좋은데 앉지 말고 나도 좀 앉아보자." 밀크티가 슬며시 끼어듭니다. 졸지에 명당자리를 뺏긴 오렌지티지만, 하악거리.. 2008. 9. 19.
딴짓하는 카오스무늬 길고양이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다들 '줄을 서시오' 하면서 서 있는데, 카오스무늬 길고양이만 혼자 한발짝 떨어져 있다가 날 휙 돌아본다. "너는 왜 줄을 안 서냐옹?" 하는 표정이다. 만약 카오스무늬 고양이가 날 돌아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네 마리가 모두 등을 돌리고 한 줄로 선 모습도 흥미로웠겠지만, 역시 지금보단 밋밋하다. 딴짓하는 녀석들 때문에 사진 찍기가 재밌어진다. 딴짓하지 않는 인생이 재미없듯이, 사진도 그렇다. 2008. 9. 18.
가을을 맞이하는 길고양이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사람들이 긴팔 옷차림을 하기도 전에 가을이 오는 것을 잽싸게 알아채는 길고양이들이 나무 둥치에 기대어 바람을 맞는다. 바람 소리를 들으며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2008. 9. 17.
소심한 숲고양이 다른 길고양이들이 사료 냄새를 맡고 달려들 때, 이 녀석은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쭈뼛쭈뼛 걸어나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길고양이도 성격이 달라서, 같은 지역에 살아도 유독 조심스런 녀석이 있다. 이 고양이도 그런 '소심파'인 모양이다. 제대로 먹지 못해 그런지 몸도 여리여리하다. 길고양이 동료들이 찹찹거리며, 때로는 서로 하악거리며 밥먹기에 열중할 때도, 오도카니 앉아 거리를 둔다. 코는 벌름벌름 사료 무더기 쪽을 향했지만, 눈은 나를 경계하며 동그랗게 뜬 채 버티고 있다. 고양이의 머리 근처로 늘어져 바람에 흔들리는 연녹색 나뭇가지와 고양이 눈동자의 색깔이 같다. 도심 속에서 만나는 숲고양이다. 소심한 고양이는 나를 한번, 사료 무더기를 또 한번 번갈아 바라본다. 내가 짐짓 무심한 듯 자리를 비켜주고.. 2008. 9. 16.
꽃고양이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 맨땅에서 잎이 자라고 꽃이 핀다. 네가 태어난 곳은 화사한 꽃 흐드러지게 핀 화원이 아니라,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헐벗은 땅이다. 그러나 너를 품고 키워준 땅이 초라하기에, 역설적으로 네가 더 빛난다. 허리 끊겨 죽을 날만 기다리는 꽃들이 빼곡하게 꽂힌 꽃가게에서 널 봤다면, 난 네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살겠다고, 기왕 태어난 목숨이니 한번 살아보겠다고 팍팍한 땅에 뿌리내린 네가, 땅의 육즙을 쭉쭉 빨아마셨다가 붉은 꽃으로 토해낸 네가, 기특하고 대견해서 한번 더 눈길이 간다. 홀로 꿋꿋하게 살아남았기에 더 귀하고 소중한 너를 안아주고 싶어진다. 어수룩한 얼굴로 고개를 기우뚱 숙이는 네게 정이 간다. 너는 내게 꽃이다. 꽃고양이다. 2008.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