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앞발이 끼었어요 창문 옆 책꽂이 맨 위로 올라가 놀던 스밀라가 앞발 한쪽을 창문에 올리고선 울어댄다. ‘또 벌레 못 잡아서 안달이 났지’ 싶어 그냥 나오려는데, 가만 보니 문틈에 앞발을 붙잡힌 것처럼 꼼짝달싹 못하는 게 아닌가. 섀시 창문이라 레일을 타고 움직이는 윗부분에 작은 홈이 있는데, 그 속이 궁금해서 앞발을 넣어보다가 그만 낀 것 같았다. 혹시 문에 낀 것이 아닐 수도 있어서, 창문을 조금 앞으로 당겨 보니 팔이 매달린 채로 슬금슬금 따라온다. 스밀라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창문 한번 올려다보고, 나를 한번 돌아다보며 우엥거린다. ‘이거 왜 안 빠지는 거야’ 하고 당혹해하는 얼굴이다. 저러다 앞발이 걸린 채로 놀라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몸무게 때문에 팔을 삐거나 크게 다칠 텐데. 다급한 마음에 얼른 책꽂이를 발.. 2008. 4. 16. 고양이의 예감 스밀라는 거실에서 잠을 자고, 새벽 5시쯤 일어나 베란다방 화장실에 갔다가, 거실로 돌아와 밥을 먹는다. 오늘 새벽에도 발톱으로 방문을 긁으며 앵알거리기에, 문을 열어주고 다시 선잠이 들었다. 살짝 열어놓으면 알아서 드나들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잠든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거실에 있던 스밀라가 방문 앞에서 계속 울며 나를 불렀다. '제발로 열면 될 걸 왜 오늘따라 호들갑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문을 열어줬더니, 방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가 안절부절못하면서 울어댄다. 혹시 사료가 다 떨어졌나 싶어서 거실로 나가 봤다. 날이 궂은 건지 거실까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다. 그런데 안개 속에서 매캐한 냄새가 났다. 안개가 아니라 연기였다. 부엌에 둔 토스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까맣게 .. 2008. 4. 11. 이와고 미츠아키의 길고양이 사진집 사야 할 잡지 과월호가 있어 도쿄 진보초 헌책방 거리를 찾아갔다가, 마침 산세이도 서점이 눈에 띄어 들렀었다. 헌책방은 아니고 새책방이지만, 지금은 망해버린 종로서점 같은 고색창연한 인상이다. 건물 벽에 'SINCE 1881'이라고 적힌 동그란 로고가 붙어 있어, 나름의 연륜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이와고 미츠아키(岩合光昭)의 길고양이 사진집들을 보고 지름신 강림이 두려워서 딱 한 권만 사기로 결심했는데, 그냥 그때 확 다 사 버리는 게 나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쉽다. 그날 심사숙고 끝에 골랐던 책은 이것. 일본 뿐 아니라 세계의 길고양이들을 담았는데, 멋지고 익살스러운 사진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표지가 사랑스럽다. 콧방울 풍선을 매단 고양이라니! 판권을 보니 2005년 5월 출간된 책인.. 2008. 4. 7. 다르게 걷기 야나카 긴자가 내려다보이는 저녁놀 계단 맨 꼭대기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손목에 끼우고 걷는 동네 사람, 목에 카메라를 맨 뜨내기 관광객들, 무심히 종종걸음을 걷는 길고양이가 각자 제 갈 길을 바삐 간다. 오가던 사람들 중에, 엄마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갓길로 올라선다. 계단은 경사가 제법 있는 편이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살짝 어질어질한데도, 심심한 계단보다 비탈진 갓길을 아슬아슬하게 걷는 게 더 재미있게 느껴진 모양이다. 왜 어렸을 때는 길을 벗어나는 게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걸까? 왜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고 싶어질까? 그렇게 가다 보면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그것도 한때뿐이지. 언젠가는 억지로 시켜도 어려운.. 2008. 4. 6. 물구나무 스밀라 스밀라의 물구나무 서기(처럼 보이는 발라당) 사진들. 다리가 후들거리면 꼬리로 균형을 잡아보아요. 휙휙~ 이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다고요. 후훗~ 이렇게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힘들어서 헥헥. 그래도 귀여워요. 2008. 3. 28. 명상 고양이 일본 오다이바의 '네코타마 캣츠리빙'에 살던 명상 고양이. 파라오의 무덤에 부장된 고양이 조각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운 옆선이 단아하다. 고양이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오랫동안 앉아있다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사진을 찍느라 얼쩡거리는 내 쪽을 내려다본다. '이런 부산스러운 인간을 봤나' 하고 질책이나 하듯이. 그 시선이 예리하고도 서늘해서 정신이 번쩍 들 것 같다. 눈길로 내려치는 죽비처럼, 날카롭다. 2008. 3. 26. 이전 1 ··· 59 60 61 62 63 64 65 ··· 7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