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발을 한 길고양이, 쓸쓸한 뒷모습 골목을 걷다보면 문을 열어둔 집이 간혹 눈에 띈다. 이중 삼중으로 걸쇠를 걸고, 그것도 모자라 번호자물쇠며 현관 출입제어장치까지 갖춘 아파트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나,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문이란 집에 형식적으로 딸린 부속일 뿐이다. 그 문조차 활짝 열린 부엌 앞에, 종종걸음으로 갈 길을 가던 길고양이가 문득 멈춰선다. 열린 부엌 문 너머로 무엇을 본 것일까. 아마도 눈보다 코가 먼저 반응했을 것이다. 고양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계단 너머로 몸을 내민다. 안이 잘 보이지 않자,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쭉 내민다. 가벼운 섀시문 한짝 달린 문턱 너머로, 인간의 영역과 고양이의 영역이 그렇게 나뉜다. 한 걸음 안으로 내딛으면,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도 맛보고, 귀여워해주는 .. 2010. 5. 6. 어린이날 생각나는 아기 길냥이들 날이 포근해지는 5월이 오면 길고양이 세계에서도 '아깽이 대란'이 일어난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어린 새끼들을 키울 자신이 없는 고양이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양육하기 좋은 때에 새끼를 낳게 되는데 그 시점이 1년 중에서도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5월이다. 5월이 돌아오면 문득 떠오르는 마음속의 아기 길냥이들을 돌이켜본다. 2002년에 처음 만난 행운의 삼색고양이가 1년 후에 낳은 새끼들의 모습. 이제 막 젖을 뗀 새끼들은 엄마가 맛있는 먹을 것을 구해오길 기다리며 곤히 잠들었다. 그간 만났던 어린 길고양이들 중에는 무사히 자라서 그 동네의 터줏대감이 된 경우도 있지만 다음해, 그 다음해에도 같은 자리에서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 한번뿐인 만남이어도 쉽게 잊을 수 없는 고양이가 있다. 뼈만 남은.. 2010. 5. 5. 길고양이 코점이, 코가 닮았네 디스크 파열 후유증으로 한동안 뻣뻣했던 허리도 좀 나아질 기미가 보여서, 슬슬 길고양이 마실을 다닌다. 병원에서는 걷기 운동을 많이 하라고 했는데, 고양이의 동선을 따라다니는 동안 꽤 쏠쏠하게 운동이 된다. 반나절 걷고 나면 허리가 뻑뻑해지고 마는 저질 체력이 됐지만, 꾸준히 무리하지 않게 운동을 하다보면 허리 근력도 생기고 몸도 좋아질 거라는 기대로... 혼자 아무 일 없이 걸으면 심심하니까, 길고양이와 함께 하는 재활운동인 셈이다. 이날의 걷기운동 중에 만난 고양이는 콧잔등에 점이 2개 있어 '코점이'로 이름붙인 길고양이. 무심한 척하며 뒤따라가 본다. 뒤를 밟히고 있다는 걸 눈치 챈 코점이가 홱 돌아보는데, 벽에 그려진 낙서와 코 모양이 똑같다. 코의 솜털이 벗겨져 빨갛게 변한 색깔까지도 같다. 다.. 2010. 5. 4. 겨울을 무사히 넘긴 새끼 길고양이, 어른되다 사고사와 병사로 짧게 끝나기 쉬운 길고양이의 삶이지만, 힘든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살아남은 모습을 보면 내가 키운 고양이는 아니어도 대견한 마음에 어쩐지 뿌듯하다. 작년 10월 초 처음 만난 어린 길고양이도 그랬다. 겨우내 드문드문 얼굴을 보았지만 제대로 찍을 수 없었는데, 그 사이에 부쩍 자라 어른이 다 됐다. 몸매는 여리여리하고 얼굴에는 약간 앳된 기운이 남았지만, 청소년 고양이의 단계는 넘어섰다. 보무도 당당히 걸음을 옮기는 모습.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쪽을 향해, 음식쓰레기 봉지로 다가간다. 고양이 은신처 근처에는 주기적으로 밥을 챙겨주는 어르신이 계신다. 3마리 일가족이 이 영역을 지키고 있는지라 먹을 것이 확보되지만, 다른 고양이들도 드나드는 터라 아주 만족스럽지는 못한 듯. 허기가 지면.. 2010. 5. 4.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 액자 올해 하반기에 열릴 동물보호전 기획모임에 갔다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길고양이 액자를 발견했습니다. 지난 2월 146Market갤러리에서 했던 길고양이 기금마련 소품판매전의 길고양이 액자 2점이 나란히 놓여있더라구요. 한번 떠나보내면 다시 보기 어려운 녀석들이라, 보내면서도 시원섭섭했는데 그 액자들이 어딘가에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낼까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드네요. 진짜 내가 알던 고양이를 입양보낸 것 같은 마음도 들고... 반가운 마음에 인증샷을 남깁니다. 실내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이에요. 근처를 지나던 꼬마들이 유리창에 찰싹 달라붙어 인사를 하네요. 길고양이 액자들이 얼마나 저 자리에 머물러 있을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에는 동네 사람들과 자연스레 눈맞춤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 2010. 4. 27. 길고양이들의 '식빵굽기 대결' 길을 걷다보면 안전한 곳에서 식빵 굽는 길고양이를 만납니다. 무심한 얼굴로 날아가는 새를 지켜보는 모습에서 긴장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덩치며 인상이며, 이래저래 왕초의 기운이 느껴지는 길고양이입니다. 그런데 고양이의 얼굴에 순간 긴장이 감돕니다. 뭔가 위협적인 상대를 만났기 때문일까요? 두 앞발에 힘이 들어갑니다. "응? 내가 뭘요?" 5m쯤 떨어진 눈앞에, 젖소무늬 고양이가 의아한 눈으로 왕초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네요. 온몸으로 동그랗게 표현한 식빵 자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왕초 고양이의 눈이 경쟁심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듯합니다. "감히 네 녀석 따위가 내 앞에서 식빵 자세를 자랑하다니...질 수 없어!" 뭐 이런 대사가 머릿속에 자동재생되는군요; "훗! 하지만 나를 이길 순 없을걸요. 난 엉덩.. 2010. 4. 16. 이전 1 ··· 29 30 31 32 33 34 35 ··· 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