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죽 절하는 자세로 잠든 고양이 고양이는 가끔 앞발에 머리를 고이고 잠을 잡니다. 절을 하듯 두 앞발로 머리를 곱게 감싼 모습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이불이라도 덮어주고 싶어집니다. 노트북 위에 뽁뽁이를 깔아두었는데,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책상 위로 훌쩍 뛰어올라 몸을 도사리고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고양이의 잠은 얕디얕은 토끼잠. 자다가도 실눈을 뜨고, 깬듯 실눈을 떴다가도 까무룩 잠이 듭니다. 입술과 앞발이 방금 먹은 밥의 흔적으로 노릇하게 물들어 마음이 짠합니다. 신부전 진단을 받은 이후로 식욕이 많이 떨어진 스밀라에게 강제급여를 시작한지 어느덧 석 달이 되어갑니다. 밥을 먹는 스밀라도, 강제급여를 하는 사람도 둘 다 힘이 드니, 제 입으로 밥을 먹어주면 가장 좋겠지만 가뜩이나 입이 짧은데다 몸도 좋지 않으.. 2009. 10. 6. 폐가를 지키는 길고양이 두목냥 얼굴이 후덕한 길고양이가 가을볕을 쬐며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돌보는 사람 하나 없어 잡초가 무성해진 폐가를 지키는 문지기라도 된 듯합니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습니다. 코 밑 얼룩무늬 때문에 면도 안 한 아저씨 같다 여겼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초록색 눈망울이 천진합니다. 몸은 피폐한 땅에 의지하고 있지만, 고양이의 마음은 아득히 먼 어딘가를 향해 있습니다. 고양이가 인도하듯 낡은 폐가 안으로 들어섭니다. 오래된 나무 문을 경계로 공기의 냄새가 달라집니다. 나달거리는 벽지에서 스며나오는 곰팡이 냄새가 스멀스멀 코끝을 찌릅니다. 이 집에 살던 이는 세탁기며 그릇이며 낡은 살림살이들을 그대로 두고 집을 떠났습니다. 낡은 집에 켜켜이 내려앉은 시간만큼 오래된 물건들입니다... 2009. 10. 5. 아기 지키는 엄마 길고양이의 모정 천방지축으로 뛰어놀던 아기 길고양이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낯선 제 얼굴에 겁먹은 고양이는 순간 멈칫하더니, 잽싸게 몸을 날려 달아납니다. 가느다랗던 꼬리를 한껏 부풀려 너구리처럼 만들고 줄행랑을 칩니다. 겁먹은 마음은 꼬리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고양이는 겁을 먹으면 털을 부풀리거든요. 조금이나마 몸집이 커 보이게 하려는 것이겠지요. "엄마, 엄마!" 꼬리를 통통하게 만들어가지고, 치타 같은 자세로 잽싸게 내달리며 엄마를 찾습니다. 새끼는 엄마 품에 폭 뛰어들어 머리를 쏙 감추고 등을 보입니다. 엄마만 있으면 이제 무서울 게 없습니다. "우리 애를 겁준 인간이 너냐?" 엄마 고양이가 매서운 눈길로 올려다봅니다. 엄마라기엔 너무나 작고 여린 모습. 하지만 저 매서운 눈초리를 보아하니, 잘못하면 한 대 .. 2009. 10. 3. "사랑해" 꼬리로 말하는 아기고양이 엄마가 마냥 좋기만 한 아기 길고양이는 꼬리를 한껏 세워 엄마에게 부비부비 인사를 합니다. 엄마 길고양이는 새끼 고양이의 애정표현에 살짝 한짝 눈을 찡그리지만, 싫지 않은 표정입니다. 사람들의 눈이 뜸한 지붕 위로 자리를 옮긴 길고양이 모자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잠시 엄마가 한눈을 판 사이, 새끼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립니다. "아니, 저 녀석이? 어디 갈 때는 엄마랑 꼭 같이 가야 한다고 했잖아!" 혼자 놀러나가는 아기 고양이를 돌아보는 엄마 길고양이의 눈빛이 걱정으로 가득합니다. 지붕 위에서 혹시라도 새끼가 발을 헛디디면, 2미터가 넘는 땅바닥으로 떨어질까 걱정스런 것이지요. "좀 쉬어보려 했는데 어쩔 수 없군" 하는 표정으로 엄마 고양이가 앞장섭니다. 아기 고양.. 2009. 10. 1. 비쩍 마른 길고양이, 뒷이야기 길고양이를 만나러 가면, 항상 먼저 마중 오는 녀석이 있고, 한 시간쯤 지난 다음에야 "저 인간 이제는 갔나..." 하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는 '뒷북 고양이'가 있습니다. 왜 한 시간이냐면, 그때쯤 카메라의 메모리가 90% 이상 차거든요. 메모리 공간 확보도 할 겸 가만히 앉아 사진을 정리하고 있으면, 아까는 안 보이던 녀석이 슬금슬금 눈치 보며 나타납니다. 우엥 울며 걸어오다가, 눈이 마주치자 '너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주저앉아 딴청을 부립니다. 어딘가 불리할 것 같으면 모른척 하는 게 고양이의 특징. 저도 덩달아 모른척하고 가만히 있으면, 슬며시 가까이 옵니다. 석 달 전에 만났을 때와 다를바 없이 홀쭉한 얼굴이지만, 건강상태는 그리 나빠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름 없는 고양이로 남는 .. 2009. 9. 28. 새 이불을 좋아하는 고양이 스밀라가 안 보여서 찾아보니, 이불 끼우려고 빨아놓은 호청 위에 뒹굴뒹굴하고 있더군요. 고양이가 원래 맨바닥에는 잘 앉지 않지만, 아직 개시도 안 한 이불을 제 거라고 주장하고 있네요. 고양이도 새것이 뭔지 알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뭔가 새로운 '깔개'(가방, 수건, 종이 등 납작한 모든 것)가 등장하면 어김없이 코를 들이미는 걸 보면 말이에요. 새것에는 고양이를 홀릴 만한 어떤 냄새가 나는 걸까요? 스밀라가 귀여워서 어머니와 함께 바로 앞에 앉아 지켜보고 있으니 스밀라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쳐다봅니다. 어머니와 나를 올려다보는 표정이 "나 여기 누우면 안되는 거야?" 하고 묻는 것 같네요. 금방이라도 말을 건넬 것처럼 살짝 벌린 입술이 좋아요. 이거야말로 ㅅ자 입술의 전형. 저런 얼굴로 쳐다보는데 뭐.. 2009. 9. 26. 이전 1 ··· 41 42 43 44 45 46 47 ··· 1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