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옷 정리를 방해하는 고양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대청소의 날이 돌아옵니다. 두꺼운 겨울옷을 한 군데 모아 쌓아놓고 큰 종이박스를 구해와서 차곡차곡 집어넣을 준비를 합니다. 한데 스밀라는 집안에 옷더미든 빈 박스든, 올라갈 만한 새로운 장소가 생기면 등산하듯 꼭대기에 반드시 등정하는 버릇이 있어서, 어머니와 제가 아침을 먹는 사이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올라와 있더군요. 저렇게 앞발을 내지 않고 고개만 쭉 내민 채 누워있으면 꼭 거대한 망토로 온 몸을 두른 아저씨 같아서 익살스럽습니다.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어보지만, 쏟아지는 하품을 못 이겨 결국 몸 아래 숨겼던 앞발을 내놓고 맙니다. 하품과 기지개는 역시 떼놓을 수 없는 한 쌍이거든요. 스밀라의 자세를 가만히 보니, 하품하는 척 하면서 옷가지를 못 치우게 온 몸으로 막고 있는 건가 싶.. 2010. 4. 30. 5초만에 고양이를 황홀하게 하는 법 어른 고양이는 쉽게 권태로움을 느끼는 듯 보입니다. 스밀라 역시 예외는 아닌데요. 평소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은신처에서 만사가 귀찮은 얼굴로 누워있곤 합니다. 하지만 권태기에 빠진 고양이도 5초만 투자하면 황홀경에 빠뜨릴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특별한 도구나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집에서 한번 시도해 보세요. "응? 지금 뭐하는 짓이냐옹?" 가만히 누워있던 고양이라면 뜨악하게 여기겠지만, 일단은 목에 손가락을 스윽 갖다댑니다. 목에서 턱 사이를 손가락으로 오르락내리락, 왔다갔다 하면서 살살 긁어줍니다. "그래그래, 좀 더 구석구석 긁어보게나." 고양이가 살며시 실눈을 뜨고 턱을 위로 쳐들면, 시원하니 더 긁어달라는 신호입니다. "음... 바로 이 맛이야~" 스밀라는 무아지경에 빠지다못해 거의 유체이탈.. 2010. 4. 29. 유치해도 재미있는 '고양이 손' 놀이 요즘 새로 만들어준 전망대 위를 떠나지 않는 스밀라. 꼬리만 탁탁 치며 저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어쩐지 "뭔가 재미있는 걸 좀 내놓지 그러나?" 하고 내심 요구하는 것 같아서, 슬며시 손가락을 들이대 봅니다. 손을 들이댈 때 고양이와 개의 차이를 대조해서 보여주는 gif파일을 본 적이 있어요. 개는 '손!' 훈련이 되어서 그런지 사람이 손을 내밀면 거기 맞춰 악수하듯 제 앞발을 내놓는데, 고양이는 사람이 제 앞발에 손을 얹으면 자기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깔린 앞발을 빼서 턱, 하고 사람 손 위로 올리는 모습에 웃고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손!" 하고 내밀어봤습니다. 손 전체를 덥석 올리면 무겁고 싫어할 것 같아서 소심하게 손가락 1개만^^ 스밀라는 "-ㅅ-이건 또 뭐야?" 하는 표정이더니, 발가락.. 2010. 4. 17. 감출 수 없는 것 고양이의 동공이 커질 때는 대개 두 가지 경우다. 눈앞이 온통 어둠뿐일 때와, 관심 가는 뭔가를 발견했을 때. 이 두 가지는 고양이에게 본능적인 반응이어서 감출 수가 없다. 사람들은 고양이가 의뭉스럽다 말하지만, 동물 중에 가장 명확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건 고양이가 아닌가 싶다. 어차피 어두우니 눈 떠도 소용없다고 포기하지 않기, 어둠 속에서 눈 감지 않기.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마음에 담아두기, 가지지 못해도 눈동자 속의 우물에 담아오기. 고양이가 내게 가르쳐주는 것. 2009. 5. 30. 고양이가 사람을 지키는 방법 값비싼 캣타워만 좋아할 것 같은 고양이에게도 의외로 '저렴한 취미'가 있습니다. 베란다에 대충 쌓아놓은 골판지 상자 위로 올라가 일광욕을 즐기는 일 역시, 스밀라가 즐겨하는 소일거리 중 하나입니다. 늘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집고양이들이 비타민D를 만들어내려면 일광욕은 필수라고 하네요. 하지만 스밀라가 상자 위를 고수하는 건 단순히 일광욕만을 위해서는 아닌 듯합니다. 어느 날 스밀라가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베란다에 쌓아놓은 상자와 잡동사니 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만하고 들어와라" 말해도 꼼짝도 않습니다. 청가방은 이미 스밀라의 방석이 된지 오래... 스밀라는 저기 앉아서 햇빛도 쬐고, 창밖을 지나가는 참새도 구경하고, 낮잠도 잡니다. 무엇보다 스밀라가 저 자리를 좋아하는 건, 높은 곳에 앉아 거.. 2009. 3. 18. 고양이가 좋아하는 ‘손가락 인사’ 퇴근하고 돌아오면 스밀라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스밀라가 좋아하는 ‘손가락 인사’입니다. 하루종일 저를 기다리느라 심심했던 스밀라는, 종종 현관문 바로 앞까지 뛰어나오곤 합니다. 고개를 쳐들고 저를 올려다보며 우엥 우는 스밀라를 보고 있으면, 고양이가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는 속설이 다 옳은 것만은 아니다 싶습니다. 앞의 문장 속에는 ‘비교적’이라는 수식어가 포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외로움의 차이, 반가움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고양이에게는 혼자 보낸 시간만큼의 ‘절대적인 외로움’이 있을 테니까요. 비록 낮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어린 시절 낮잠을 자다가 문득 깨어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봤을 때, 아무도 없으면 .. 2009. 3. 13.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