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숲고양이 다른 길고양이들이 사료 냄새를 맡고 달려들 때, 이 녀석은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쭈뼛쭈뼛 걸어나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길고양이도 성격이 달라서, 같은 지역에 살아도 유독 조심스런 녀석이 있다. 이 고양이도 그런 '소심파'인 모양이다. 제대로 먹지 못해 그런지 몸도 여리여리하다. 길고양이 동료들이 찹찹거리며, 때로는 서로 하악거리며 밥먹기에 열중할 때도, 오도카니 앉아 거리를 둔다. 코는 벌름벌름 사료 무더기 쪽을 향했지만, 눈은 나를 경계하며 동그랗게 뜬 채 버티고 있다. 고양이의 머리 근처로 늘어져 바람에 흔들리는 연녹색 나뭇가지와 고양이 눈동자의 색깔이 같다. 도심 속에서 만나는 숲고양이다. 소심한 고양이는 나를 한번, 사료 무더기를 또 한번 번갈아 바라본다. 내가 짐짓 무심한 듯 자리를 비켜주고.. 2008. 9. 16. 꽃고양이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 맨땅에서 잎이 자라고 꽃이 핀다. 네가 태어난 곳은 화사한 꽃 흐드러지게 핀 화원이 아니라,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헐벗은 땅이다. 그러나 너를 품고 키워준 땅이 초라하기에, 역설적으로 네가 더 빛난다. 허리 끊겨 죽을 날만 기다리는 꽃들이 빼곡하게 꽂힌 꽃가게에서 널 봤다면, 난 네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살겠다고, 기왕 태어난 목숨이니 한번 살아보겠다고 팍팍한 땅에 뿌리내린 네가, 땅의 육즙을 쭉쭉 빨아마셨다가 붉은 꽃으로 토해낸 네가, 기특하고 대견해서 한번 더 눈길이 간다. 홀로 꿋꿋하게 살아남았기에 더 귀하고 소중한 너를 안아주고 싶어진다. 어수룩한 얼굴로 고개를 기우뚱 숙이는 네게 정이 간다. 너는 내게 꽃이다. 꽃고양이다. 2008. 9. 14. 해초로 그린 고양이그림 '신기해' 바닷속 해초로 고양이를 그린다면 어떤 모양일까요? 일본 요코하마의 한 전철역 지하도에서 열린 게릴라 전시회에서 이색적인 해초 그림을 구경해보았습니다. 전시된 작품 중에서도 압권은 고양이 그림이었는데요, 상상력을 한껏 발휘해 만든 유쾌한 그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Japan Seaborn Art Association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해초 그림 외에도 조개로 만든 다채로운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번에 소개하는 것은 해초로 그림을 그린 토미코 씨의 작품입니다. 잎사귀가 풍성하게 매달린 거대한 나무에 매달려 노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앙증맞네요. 고양이 털코트를 표현하는 데 쓴 갈색 해조류와 적갈색 해조류의 미묘한 차이를 느껴보세요. 색칠한 게 아니라 전부 해초를 얇게 펴서 말려 붙인 것.. 2008. 9. 13. 산비탈에 사는 아기 길고양이 산비탈 따라 나지막한 단층주택이 다닥다닥 어깨 붙인 산동네에는 길고양이가 많습니다. 도심 속 골목보다 숨을 곳이 많아서 무심코 걷다보면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지만, 그 길에서 우연히 길고양이를 만나게 되면 그만큼 반가움도 커지지요. 고양이 레이더를 켜고 타박타박 걷는데, 저 멀리 뭔가 움직이는 털뭉치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직 어린 길고양이네요. 인적이 드물어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방심한 얼굴로 나무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제가 머리 위에서 부시럭거리며 소리를 내니 귀를 쫑긋하며 위를 바라봅니다. 눈동자 색이 회색인 걸로 봐서, 아직 어린 고양이네요. 좀 더 어른이 되면 초록색이나, 갈색이나, 호박색으로 바뀐답니다. 어린 고양이의 눈동자 색깔은 정말 신비로워요. 저를 호기심어린 .. 2008. 9. 12. 길고양이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올 때 늘어진 나뭇잎 사이로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앉을 만한 공간이 비어있다. 길고양이가 오지 않았다면 눈에 띄지도 않았을 회색 타일벽은, 길고양이의 몸을 품어 안고서야 비로소 의미있는 공간이 된다. 고양이의 눈동자처럼 푸른 잎이 후광처럼 고양이의 몸을 감쌀 때,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를 손에 들면, 세상이 수많은 프레임으로 이뤄진 공간 같다. 평소에는 투명해서 보이지 않지만, 길고양이가 나타나면 비로소 뚜렷해지는 프레임. 2008. 9. 12. 지붕 위 숨바꼭질하는 길고양이들 도시에서 길고양이가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지붕 위가 바로 그들의 소중한 아지트입니다. 하루에 한번 하늘 보기도 힘든 사람들이 지붕 위까지 시선을 돌릴 리 없기 때문이죠. 골목길 한구석조차 길고양이에게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도, 지붕 위로 돌을 던지지는 않으니까요. 길고양이는 지붕 위에서 잠을 자고, 숨바꼭질을 하고, 때론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명상에 잠깁니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 모든 것을 초월한 달인의 풍모가 느껴져요. 도심 속의 작은 쉼터, 지붕 위 아지트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만 모아보았습니다. 빨간 지붕위로 얼굴만 내민 고양이 얼굴. 저 사람이 안전한지 아닌지 재 보는 것 같아요. 몸은 기와지붕 뒤에 숨긴 채 뾰.. 2008. 9. 8. 이전 1 ··· 101 102 103 104 105 106 107 ··· 14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