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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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어지간한 장난감에는 반응이 시원찮아진다. 물론 개묘차는 있지만, 대개 오뎅꼬치나 낚싯대, 레이저포인터에 열렬히 반응하는 것도 아직 어린 풋고양이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다. 움직이는 저 물건이 진짜 사냥감이 아니라, 사람이 조작해서 놀아주는 거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고양이도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는 모양이다.

 

스밀라도 어지간한 장난감은 이미 지난 세월 숱하게 보아온지라, 예전만큼 반응이 바로바로 오지 않는다. 하지만 고양이 놀이텐트를 만들어주면 바로 반응이 있는 편. 권태기에 빠진 고양이를 위한 놀이텐트 만들기는 생각보다 쉽다. 얇은 홑이불을 의자에 걸쳐주는 것만으로 끝. 정말 1초면 뚝딱 완성된다.  

 스밀라와 함께한 시간 동안 식탁 의자, 사무용 의자, 화장대 의자 등 여러 의자를 실험해보았는데,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화장대 의자를 활용한 놀이텐트였던 것 같다. 협소한 공간에 숨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의 성향 때문이다. 화장대 의자라면 일반 종이박스 크기와 비슷해서 한층 더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만족스러운 얼굴의 스밀라다.

 

 밖에서 본 고양이 놀이텐트의 모습. 화장대 의자는 고양이 키와 비슷해서 고양이가 놀이하기에도 적당하다. 

 

홑이불을 이용한 고양이 놀이텐트는 두 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 고양이는 은신처로 쓰는 걸 좋아하지만, 사냥놀이 장소로도 만들 수 있다. 홑이불 뒤편으로 손가락을 스치면서 지나가면, 고양이가 사냥감인 줄 알고 민접한 반응을 보인다. 고양이가 사람과 장난을 칠 때는 발톱을 집어넣고 앞발질을 하지만, 사냥놀이를 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흥분해서 발톱을 꺼낼 수 있으니 장갑을 끼고 장난을 거는 게 안전하다.

 

고양이는 사냥감을 상상하면서 반응하지만, 반려인 입장에서는 "응?" 하고 물어보는 듯한 귀여운 모습도 포착할 수 있어 일석이조.

 

 하지만 홑이불 너머로 손이 움직이는 모습을 들키게 되면 시큰둥한 고양이의 얼굴을 볼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고양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사냥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놀이텐트로 제 기능을 하게 하려면, 고양이에게 장난을 거는 사람의 손은 가능한 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 따로 제작비용도 들지 않고, 홑이불 하나와 의자만 있으면 금세 만들어지는 놀이텐트.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휴일 하루쯤 시간 내어 무료한 고양이를 위해 만들어주면 어떨까. 놀이가 끝나면 홑이불 빨래는 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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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 포장할 때 쓰려고 버리지 않고 옷장 위에 올려둔 상자가 하나 있다. '궁중후라이팬'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적힌 초록색 상자인데, 요즘 제품 포장디자인에는 어지간하면 쓰지 않는 서체인 휴먼옛체를 쓴 데다 '프라이팬'도 아니고 '후라이팬'이라고 버젓이 인쇄해놓은 것을 보면 꽤나 오래된 물건인 듯하다.

 

원래 옷장 위에 둔 상자인데, 전시 준비하면서 액자 포장할 때 쓰려고 잠시 내려놓았다가  크기가 안 맞아 다시 올려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스밀라가 그 기회를 놓칠 리 있나. 기어코 책상으로 폴짝 뛰어올라가더니 조심스레 냄새를 맡고는 상자 위로 올라간다. 오래간만에 얻은 새 상자를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옷장 꼭대기에서 책상 쪽으로 뛰어내릴 때면 높이 차이가 제법 나서 완충장치 역할이나 하라고 한동안 책꽂이 위에 깔아놓았더니 뛰어내릴 때마다 발판으로 써서 북처럼 퉁 소리가 난다. 속이 텅 빈 상자라서 그런 듯. 급기야 상자 한가운데가 우묵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덕분에 스밀라는 신이 났다. 상자는 평평한 것보다 우묵한 게 좋으니까. 미묘하게 우묵해진 상자 위에 몸을 누이고 제 침대로 쓰고 있다. 궁중의 분위기와는 별 상관없는 상자지만 스밀라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 누워있다. 만족스러워진 스밀라가 내게 고양이 키스를 보낸다. 꿈-뻑, 하고 느릿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는 것인데, 사진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고양이 키스를 동영상으로도 찍어보았다.

(총 38초짜리 동영상이지만 처음에는 스밀라가 꼬리를 흔들흔들하는 모습만 나오니 25초부터 봐도 상관없음)

 

아침이 되면 저렇게 옷장 위로 올라가 턱을 괴고 이쪽을 내려다보거나 낮잠을 잔다. 옷장 위에 잡동사니를 두는 게 그닥 보기 좋진 않지만 벽과 옷장 사이의 간격이 10cm 정도 되는지라, 옷장 위를 비워두면 틈새로 빠질 우려가 있어서 물건을 두는 게 안전하다. 스밀라와 함께 한가롭게 아침 햇빛을 맞이하는 시간이 좋다.

 

 

베란다문 열어달라는 스밀라를 데리고 햇살바라기 하러 간다. 어린이집에서 쓰다 버린 조그만 나무의자가 귀여워서 분리수거일 때 주워다가 베란다에 보관해 둔 것이 꽤 오래 전 일인데, 그 의자가 어느새 스밀라의 전용석이 되었다. 타일 맨바닥에 그냥 앉으면 아직까지는 엉덩이가 시리기도 하고, 베란다 턱 때문에 창밖 풍경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전망대 높이를 약간 높여주고 싶었는데 어린이집 의자 높이면 딱 알맞다.

 

한 달 전쯤 비오던 날 비슷한 각도에서 사진 찍었을 때는 아직까지 나뭇가지가 앙상했는데, 어느새 꽃이 지고 새 잎이 풍성하게 돋아 여름 분위기가 난다. 스밀라도 그윽한 얼굴이 되어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복슬복슬 따뜻하고 부드러운 봄고양이 스밀라. 

그렇게 창밖을 보다가도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나면 "응?" 하고 고개를 휙 돌리며 딴청을 부리기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는, 창밖을 구경하는 스밀라의 옆얼굴을 곁에서 보고 있을 때다. 어린아이 얼굴 같은 앞짱구 이마에,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 참 좋아서. 열 살이 다 되어가지만 고양이의 미모는 빛바래는 일이 없구나. 오히려 농익은 모습을 보여줄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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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가 안 보여서 또 어디로 갔나 하고 집을 헤매다 보니, 방바닥에 널어놓은 양말 사이로 슬그머니 찾아와

몸을 누이고 있습니다. 짧은 양말을 빨래건조대에 하나하나 널려니 영 번거롭고, 방바닥에 말리면 빨리 마르기도 해서

안방 바닥에 양말을 줄줄이 깔아놓았더니 어떻게 알고 그 사이로 드러누운 것이죠.


다른 좋은 방석류도 많은데 굳이 빨랫감 위로 몸을 누이는 고양이의 심리는 왜 그럴까 고민해보았는데요.

1. 갓 빨아놓아 세제 냄새가 아직 남아있는 빨랫감의 냄새가 좋다. 킁킁~

2. 꼬들꼬들 말라가는 빨랫감의 까슬까슬한 감촉이 기분좋다. 부비부비~

3. 빨랫감에 털을 묻혀놓으면 사람이 하나하나 떼어내는 걸 구경하는 게 재미있다. 뒹굴뒹굴~

뭐 이 중에 하나 아닐까 합니다.

저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밀라는 '어허 좋구나~'하는 표정으로 하늘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스밀라가 집에 들어오면서 가족들이 신는 양말 색깔도 대부분 회색으로 고르게 되었네요. 짙은 색 양말도 있지만

 

예전에 신던 것이 대부분... 신발을 벗을 때 흰 털이 군데군데 붙어있으면 좀 민망하거든요. 하지만 스밀라 털옷과

 

비슷한 색깔의 회색 양말은 털이 붙어있어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답니다. 

 

 

양말을 빼앗길까 걱정이 되었는지, 스밀라는 '앞으로 나란히' 자세에서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몸을 바꿉니다. 

아예 양말 사이로 몸을 던져 드러눕는 것이죠. 모처럼 새 놀잇감을 찾아냈는데 인간에게 뺏기고 싶지 않겠지요.

 

혹시 눈이 마주치면 양말을 달라고 할까봐,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넙죽 드러누워 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으로 스밀라 모습을 계속 찍다가

'아, 이 모습을 얼른 카메라로 남겨둬야지' 하고 얼른 제 방에 갔다왔더니, 그 사이에 마음이 바뀌었는지

안방에서 슬금슬금 나와버리는 스밀라. 아마 양말밭 속에서 혼자 고즈넉히 뒹굴고 싶었을 텐데, 그 앞에서 

제가 앉았다 누웠다가 부산을 떨며 사진을 찍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입니다.  

고양이 나이를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저보다 더 연장자가 된 스밀라이지만, 귀염도가 날로 더해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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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 되면 스밀라가 "앵" 하고 울면서 저를 불러서 베란다 유리문으로 데리고 갑니다. 베란다 산책을 나가겠다는 뜻이죠.

 데리고 갔는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저렇게 한번 힐끗 올려다보며 얼른 문을 열라고 신호를 줍니다. 이렇게 했는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애앵~"하고 꾸지람하는 어조로 길게 울며 창문 한번 보고, 다시 저를 올려다보지요.

하지만 약을 아직 먹이지 못해서 베란다문은 나중에 열어주기로 합니다. 스밀라는 베란다에 쌓아놓은 종이상자 위로 단번에 달음박질해서 그 위에서 식빵 굽고 있거나 낮잠자기를 좋아하는데, 일단 그 위로 도망가버리면 데려오기가 여간 함들지 않거든요. 약 먹는 건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그 전에 달아나려고 합니다.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자, 스밀라의 얼굴에도 불만이 서립니다.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건가' 하는 얼굴로 베란다 문앞에 털썩 눕더니 침묵시위에 들어갑니다. 언젠가 열어주겠지 하는 얼굴입니다.
 

불만 어린 얼굴로는 호소력이 없을 것을 알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떠서 최대한 청순함을 강조하면서 베란다 유리문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전을 바꾼다해도 스밀라가 원하는대로 문을 열어주기는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처방받은 노령묘를 위한 보조제와 함께 밥을 먹여야 하기 때문이지요. 좀 안됐기는 하지만 떼를 쓴다고 해서 다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특히 스밀라의 건강과 관련된 일이라면요.

 

'쳇, 이것도 통하지 않는 건가...' 하는 표정을 지어보입니다. 얼른 보조제와 밥을 먹이고 베란다 산책을 내보내주어야겠네요.

며칠 전 병원에 갔다가 "스밀라도 벌써 10살이네요"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2006년 여름 처음으로 우리 집에 올 때가 '추정 2살'이었으니 만으로 따지면  9년이어도 햇수로 따지면 10년이네요. 태어난 건 10년 전, 함께한 건 8년.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을까요. 중간에 많이 아프기도 했었지만, 더이상 나빠지지 않고 건강을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스밀라 입양 7주년이 되는 올해 7월에는 뭔가 특별한 기념을 해주고 싶네요.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출간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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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오전 9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