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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켄지의 단편 <고양이 사무소>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미야자와 겐지의 단편 는, 함께 일하던 잡지사에서 물고기 기자로 불렸던 이윤주 씨 소개로 접한 책이다. 글 분량이 짧아서 10분이면 다 읽을 정도인데, 별것 아닌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가마솥 고양이(문맥상으로는 부뚜막 고양이)의 괴로움과 슬픔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 가마솥 고양이는 정상적인 고양이가 되려고 수도 없이 창 밖에서 자 보았지만, 아무래도 한밤중에 추워서 재채기가 나와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역시 어쩔 수 없이 부뚜막 속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왜 그렇게 추위를 느끼는가 하면 가죽이 얇기 때문이었는데, 또 왜 가죽이 얇은가 하면 그것은 여름 한철에 태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마솥 고양이는 역시 내가 잘못되었구나, 어쩔 수 없구나아-하고 .. 2008. 2. 28.
CCL로 저작물 사용범위를 표시할 때 어느 블로그를 들어갔다가, 글 마지막에 붙은 공지를 읽었다. "이 글은 허락 없이 퍼 가면 안 되고, 저작권은 저에게 있고, 상업적인 용도로 쓰시면 절대 안되고..." 등등.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공지 바로 아래 이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Creative Commons License, 이하 CCL)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초가집(집+집), 역전앞(앞+앞) 같은 동어반복에 해당하지만, 이런 경우를 종종 본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건 플러그인 설정을 하면 글을 쓸 때마다 자동으로 붙는 CCL이다. 그런데 CCL로 글의 사용 범위를 명시했을 때 효과를 거두려면, 역설적이기.. 2008. 2. 27.
15만 원짜리 비닐 수십 만 대가 팔린 '대박 상품'이라는 음식물쓰레기 건조기를 샀다. 축축하고 퀴퀴한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게 유쾌한 일도 아니고, 말려서 버리면 간편하고 좋을 것 같았다. 물건은 주문한 지 이틀만에 도착했다. 온라인 숍 고객 후기에는 배송이 늦다는 불평이 가득했는데 의외였다. 기대하면서 페트병에 모아 둔 음식물쓰레기를 붓고 건조기를 작동시키는데, 동생이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부른다. 1회 건조할 때마다 19시간을 연속 가동해야 한단다. 처음 듣는 얘기다. 사이트에 접속해 광고 페이지를 읽어보니 과연 '19시간 사용 시 한 달 전기료 2천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말은 '한 달 동안 배출된 음식물쓰레기의 총량을 건조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 내내 모두 더해서) 19시간' 정도이고, 전기료의 총합도 .. 2008. 2. 24.
사회적기업 '희망블로거' 신청서, 개인정보 요구가 지나칩니다. 사회적기업네트워크의 '희망블로거' 모집공고를 읽고, 평소 관심있던 분야여서 참가신청서를 다운로드해 읽어보다가 답답한 마음이 들어 글을 씁니다. 명시된 사회적기업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골라 쓰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개인정보 요구사항이 지나칩니다. 지원자가 미혼인지 기혼인지, 어느 학교 무슨 과를 나왔는지가 꼭 필요한가요? 게다가 직장은 어디인지, 심지어 주민번호까지 요구하네요. 다른 일도 아니고 "블로그를 통하여 조금 더 의미있는 일들, 멋진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에 동참"하기를 권하는 목적이라면 참가신청서 양식부터 수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블로그 운영 경험을 살려 활동하고 싶은 블로거들도 이런 신청서를 보면 머뭇거리지 않겠어요? 만약 좀 더 자세한 신상정보가 필요하다면, 선발된 후에 '해.. 2008. 2. 22.
당신을 성장시키는 방향을 선택하세요 라모 님의 선물이 도착했다. 봉투를 열어보니 '삶여행 人연 캘린더'와 고양이 걸개 그림, 편지가 한 세트로 들어 있다. '삶여행 人연 캘린더'는, 1년 동안 나의 삶에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기록한 다음, 1년 뒤에 그 만남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는 용도로 쓴다. 달력이 아닌 연력 같은 개념이지만, 일정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을 기록하는 용도라는 점이 다르다. 1년 뒤에 참여자들의 피드백을 모아 정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유롭게 뒹굴거리는 고양이 그림이 프린트된 골판지 액자를 보고 있으니, 재활용을 하기 위해 작업실에 모아둔 골판지 상자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던 라모 님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짓게 된다. 상자 모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니. 빈 상자를 좋아하는 건 '고.. 2008. 2. 16.
이야기가 있는 그림 검색창을 열었더니, 해질녘에 물가를 걷는 노인 한 쌍이 보인다. 노부부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부부가 아닐 수도 있으니 '나이 든 연인'이라고 해 두자. 두 사람의 발걸음은 왠지 즐거워 보인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걸음을 내딛는 순서도 맞춘 듯이 똑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팡이에 온몸의 체중을 싣고 구부정한 허리로 걸었을 할아버지는, 오늘만큼은 지팡이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기운차게 걷는다. 그런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할머니도 빨간 하트 풍선을 손에 쥐고 마냥 즐겁다. '오늘이 노인과 관련된 무슨 날인가?' 싶어 마우스를 구글 로고에 갖다대 본다. '발렌타인데이'라고 적힌 글 상자가 뜬다. 이 말 하나로 위의 모든 상황이 이해된다. 초콜릿 상자 그림보다도, 사람 마음을 애틋하게 만들어버리는.. 2008. 2. 14.